[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배우 최영준이 '경성크리처'를 통해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손에 쉽게 잡히는 인물은 분명 아니었다. 이에 최영준도 정동윤 감독도 촬영 내내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다.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캐릭터를 함께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가토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최영준은 이 여정을 "힘들고 어렵고 재밌었다"고 돌이켰다.
한소희는 최근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각본 강은경, 연출 정동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경성크리처'는 시대의 어둠이 가장 짙었던 1945년 봄, 생존이 전부였던 두 청춘이 탐욕 위에 탄생한 괴물과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10부작 시리즈인 '경성크리처'는 지난달 파트 1(1~7화)에 이어 최근 파트 2(8~10화)가 차례대로 공개됐다. 최영준은 "나 역시 공개된 후에야 완성본을 봤다. 때문에 시청자 입장으로 재밌게 봤다"며 "아쉬운 부분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어떤 작품이든 아쉬운 부분은 늘 있다. 이번 작품은 감독님과 이야기했던 부분이 어떻게 담겼는지를 공부하면서 볼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극 중 최영준은 나진을 이용해 경성의 괴물 '경성크리처'를 탄생시킨 가토 중좌 역을 맡았다. 가토 중좌는 의학부 출신의 군인이자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옹성병원의 실질적 책임자로 자신의 탐욕만을 쫓는 인물이다. 특히 그는 괴물이 된 사람의 고통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괴물을 자신의 피조물로 여기며 집착과 광기를 보여준다.
가토는 마에다 유키코(수현 분)과 함께 작품의 악역으로 활약한다. '경성크리처' 악역들의 특징이 있다면 '우아한 빌런'이라는 점이다. 가토의 경우 촬영 전부터 행위가 어떻든 사람 자체는 우아했으면 좋겠다'는 작가와 감독의 주문이 있었다. 이에 최영준은 "감정을 자제하되 감정이 아예 없는 사이코패스는 아니어야 했다. 때문에 표정을 지을 때나 어떤 행동을 할 때 늘 조심스러웠다"고 설명했다.
"가토는 본인 스스로 고결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에요. 세상에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마인드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잘못됐다는 생각조차 못 하죠. 그런 가토의 마인드를 겉으로 어떻게 보여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정제된 모습'이 가장 적합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가토는 '목표지향적 인물'이었다. 다만 자신의, 자신에 의한, 자신만을 위한 목표여서 문제였다. 이러한 가토의 태도는 최영준이 작품 출연을 결심하는 데 있어 부담감을 덜게 해줬다. 사실 작품이 일제강점기를 다루고, 캐릭터가 일본군이라는 설정 때문에 배우로서는 부담이 따를 수 있었다. 이에 최영준은 "가토는 주체적인 사람이다. 그렇기에 체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일본이 전쟁에서 이겨야 하는 것에도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자기 일만 좇는 사람이다 보니 일본군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어는 꽤 힘들었다. 특히 최영준은 일본인 역을 맡은 배우들 중 유일하게 모든 대사를 일본어로 소화해야 했다. 그는 "처음에는 부담이 없었다. 만만하게 봤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운 언어였다"며 "촬영 두 달 전부터 공부하기 시작해서 촬영 내내 일주일에 두세 번씩 수업했다"고 말했다.
비주얼적으로도 변화를 줬다. 특히 체중만 무려 15kg 감량했다고 밝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만주에서 첫 촬영을 한 뒤 내 분량까지 시간이 있었다. 그 사이 '살을 좀 빼야 할 것 같다'는 감독님의 요청이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인물을 원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얼마나 급한 상황이면 명절에 전화를 했을까 싶었죠. 원래도 다이어트할 때는 디톡스라고 생각해 2~3일을 굶는데, 그때는 8일을 굶었어요. 6~7kg가 빠지더라고요. 이후에는 조금씩 운동이랑 식단을 하면서 뺐어요. 사실 감량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다만 워낙 먹는 것도 음주도 좋아하다 보니 유지하는 게 힘들었죠. 저체중으로 1년을 살다 지금은 다시 8kg 정도 찌웠어요."
그래서일까. '경성크리처' 속 모습을 보고 못 알아본 사람이 많았다. 사실 배우로서는 또 한 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이미지 변신에 제대로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정작 최영준은 "'저 사람 누구야'라는 말을 그만 듣고 싶었다. 최영준처럼 보였으면 했는데 아쉬웠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모순적'이라고 표현했다. 최영준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연기 변신을 위해 이 작품을 선택했다. 보고 놀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막상 정말 몰라보면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서운하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스펙트럼이 넓다는 건 분명 배우에게 있어 중요하고 좋은 자질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가수를 예로 들어 노래만 들어도 '이건 누구 곡이겠다' 싶을 때가 있잖아요. 배우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그런 시그니처가 아직 없나 싶죠. 사실 실생활에서도 저를 잘 몰라봐요. 저만의 특색이 없는 건가 싶어 고민이죠."
최영준을 '경성크리처' 촬영 기간을 돌이키며 "가토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쉽지 않았던 가토 캐릭터를 최영준과 정 감독은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에 최영준은 "마지막까지도 '가토는 어떻다'는 규정을 못 내렸던 것 같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뻔한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뻔한 악역이었으면 이전의 캐릭터들을 답습하듯이 연기했을 것"이라며 "손에 쉽게 잡히지 않는 캐릭터를 연기했기 때문에 지금의 가토가 탄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경성크리처'는 최영준에게 '새롭게 쓴 책 한 권'이 되기도 했다. 매체 데뷔 전 최영준은 연극과 공연 무대에 주로 올랐었다. 그는 "당시에는 마음속에 책꽂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연극을 할 때마다 책 한 권씩 꽂아 넣었다. 이후 드라마와 영화를 할 때는 빨리 보여드려야 하니까 책꽂이에 있던 책들을 꺼내 연기했었다"고 전했다.
"반면 '경성크리처'는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제가 공들여 쓴 책 한 권이 새로 생긴 기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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