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챌린지'는 K팝의 주요한 구성 요소가 됐다. 빼놓을 수 없는 신곡 홍보 수단으로 자리잡았음은 물론이고 묻혀 있던 곡에 새롭게 생명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아예 챌린지 맞춤용 음원인 '스페드 업' 버전을 따로 공개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댄스 챌린지'가 뭐길래 이토록 열광인지 직접 체험해보고 업계 얘기를 들어봤다.<편집자 주>
[더팩트 | 정병근 기자] 2000년대 UCC(user created contents. 유저 크리에이트 콘텐츠)가 유행이었다. 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콘텐츠를 의미하는 UCC는 당시만 해도 굉장히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 시절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가 2007년 원더걸스가 발표한 메가 히트곡 'Tell me(텔 미)'다.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의 태동기로 10대부터 50~60대까지 그리고 직업과 남녀노소 불문하고 수많은 이들이 때론 혼자서 때론 여러 명이 다 함께 'Tell me' 춤을 춘 영상을 촬영해 온라인에 공개했다. 가히 '신드롬'이었다.
2010년대 들어 성능 좋은 스마트폰이 보급화되고 영상 편집이 비교적 대중화되면서 UCC 개념은 사장되다시피 했다. 유튜브의 성장과 맞물려 너도나도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해 올리는 시대가 열렸다. 반면 가요계는 아이돌 그룹의 춤이 고난이도로 변해가면서 춤을 따라하기 어렵게 됐고 'Tell me'와 같은 현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2020년 시작과 함께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그해 1월 지코가 '아무노래'를 발표하면서 '댄스 챌린지'를 들고 나왔는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 '아무노래'는 챌린지 열풍을 타고 메가 히트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댄스 챌린지'가 K팝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영상 제작이 더 간편화되고 숏폼(짧은 영상)이 대세가 되면서 '댄스 챌린지'는 더 광범위해졌고 '아무노래'가 나온 지 4년여가 지난 지금 K팝의 중요한 한 축이 됐다. '댄스 챌린지'의 원조 격인 'Tell me' 열풍은 그렇게 진화했다.
'댄스 챌린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가수가 신곡을 들고 나오면서 아예 챌린지 구간을 만들어 다른 연예인들과 영상을 촬영해 공개하면서 퍼지는 것과 일반 대중이 특정 곡을 활용해 춤을 추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확산하는 경우다. 여전히 아이돌그룹의 안무는 어렵지만 '챌린지용 안무' 구간을 넣는 게 일반화됐다.
최근 가장 성공한 '댄스 챌린지' 사례는 엑소가 2013년 12월 발매한 겨울 스페셜 앨범에 수록된 '첫눈'이다. 당시 타이틀곡도 아닌 5번 트랙이었던 '첫눈'은 국내 최다 이용자 수를 보유한 멜론에서 지난 12월 19일부터 9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그 '역주행'의 시작에 '댄스 챌린지'가 있다. 엑소가 10년 전 곡 홍보를 위해 챌린지를 시작한 건 아니다. 지난해 11월 말 7인조 댄스 크루 깐병의 리더 황세훈이 '첫눈'을 빠른 속도로 한 뒤에 창작 안무를 넣은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황세훈은 숏폼 플랫폼 틱톡에 영상을 공개하며 '이번 겨울에 첫눈 챌린지 같이 할 사람?'이라고 글을 덧붙였는데 이후 대중은 물론이고 스트레이 키즈, 에스파, 아이브, 제로베이스원 등 수많은 글로벌 그룹까지 동참하면서 열풍으로 번졌다. '첫눈 챌린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은 3억 건에 이른다. 17년 전 'Tell me' UCC 신드롬 때처럼 홍보 목적이 아니라 대중이 즐기기 위해 시작해 열풍이 된 이례적인 경우다. '댄스 챌린지'의 영향력과 파급력을 단번에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첫눈 챌린지'를 시작한 황세훈은 <더팩트>에 "2010년대 노래를 좋아해서 평소에 많이 듣는다. '첫눈'도 예전부터 많이 듣던 곡이다. 겨울 느낌 나는 댄스 챌린지 할 게 뭐 없을까 생각하다가 '첫눈'이 떠올랐다. 따뜻한 감성에 재미있는 분위기를 내려고 했다. 친구랑 둘이 달려오면서 시작해서 팔짱을 끼고 퇴장하는 것도 즐겁게 찍으려고 하다 보니 나왔다. 노래도 스페드업 버전으로 해서 더 귀엽고 재미있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고 소개했다.
순수하게 같이 즐기자는 취지로 촬영한 이 영상은 공교롭게도 최근 가장 인기를 끈 댄스 챌린지였다. 황세훈은 "요즘 챌린지가 워낙 많아서 쉽게 지나치지 않나. 유명 가수 분들을 비롯해서 이렇게까지 많은 분들이 해주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SNS 팔로우도 엄청 늘었도 특히 엑소 팬 분들이 많이 좋아해 주신다"고 말했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스페드 업(Sped up)'이다. 황세훈은 '첫 눈 챌린지'를 하면서 곡을 빠르게 돌렸는데 그게 스페드 업이다. 숏폼이 유행하면서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원곡의 스페드 업 버전이 인기를 끄는 경우가 많다. 피프티 피프티를 전 세계에 알린 'Cupid(큐피드)'도 틱톡에서 스페드 업 버전으로 먼저 알려지기 시작했다. 스페드 업 버전은 댄스 챌린지 뿐만 아니라 각종 숏폼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스페드 업은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지난해 유행했던 일명 '나문희의 첫사랑'이 대표적이다. 수년 전 한 틱톡커가 원맨 밴드 허밍어반스테레오의 2004년 곡 '바나나 쉐이크'를 빠르게 돌려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는데 가사 중 '너무 휘어졌어'가 '나문희의 첫사랑'으로 들린다. 이 대목에서 또 'Tell me'가 등장한다. 뉴진스가 2022년 연말 가요무대에서 'Tell me' 무대를 했는데 이 영상에 '바나나 쉐이크' 스페드 업 버전이 얹어지면서 '나문희의 첫사랑 챌린지'가 시작됐고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해당 음원의 유통사인 워너뮤직 코리아는 지난해 3월 아예 '바나나 쉐이크'의 스페드 업 버전을 공식 발매했다. 스페드 업 버전은 대성공이었다. 특히 글로벌 톱스타 카일리 제너가 틱톡에 영상을 올리면서 '바나나 쉐이크' 스페드 업 버전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해 정점을 찍었다. 스페드 업 버전의 인기는 원곡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발빠르게 허밍어반스테레오와 논의해 '바나나 쉐이크' 스페드 업 버전을 유통한 워너뮤직 코리아 담당자는 "당시 해외에서 프로모션 용으로 스페드 업 버전을 내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드물었다. 그런데 수요가 있으니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했다"며 "스페드 업 버전은 감상용이라기보다 콘텐츠 소스처럼 활용되는 거지만 스포티파이 차트에도 올라오고 상당히 반응이 괜찮았다. 원곡도 동반해서 같이 올라왔는데 그런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스페드 업 버전 음원은 이제 낯선 것이 아니다. 방탄소년단 정국은 지난해 9월 싱글 '3D'를 발표한 지 3일 만에 리믹스 시리즈를 공개하면서 스페드 업 버전을 포함했고 르세라핌은 지난해 10월 'Perfect Night(퍼펙트 나이트)' 발매와 더불어 스페드 업 버전을 추가 공개했다. 에스파는 지난해 11월 'Drama(드라마)'와 'Jingle Bell Rock(징글 벨 록)'을 발표했는데 12월에 곧바로 스페드 업 버전 음원을 내놨다. 다이나믹 듀오는 2014년 발표한 곡 'AEAO'를 지난해 8월 스페드 업 버전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색다른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댄스 챌린지와 스페드 업은 해외에서도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특히 국내에서 성행하며 K팝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계속>
<관련 기사>
[댄스 챌린지②] 정세운 "제 건 해볼 만하다?"…'춤알못'의 도전기(영상)
[댄스 챌린지③] "과하고 식상하다"는 아쉬움 왜 나오나
kafka@tf.co.kr
[연예부 | 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