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문화영 기자] 배인혁의 성장세가 무섭다. 시작은 웹드라마였다. 네이버TV와 유튜브에서 주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3년 만에 드라마 주연을 꿰차더니 이제 당당히 지상파 흥행까지 이뤘다. 최근엔 연기대상에서 우수상도 받았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굳히고 있는 그다.
MBC 금토드라마 '열녀박씨 계약결혼뎐'(극본 고남정, 연출 박상훈, 이하 ‘열녀박씨’)은 죽음을 뛰어넘어 2023년 대한민국에 당도한 19세기 욕망 유교걸 박연우(이세영 분)와 21세기 무감정 끝판왕 강태하(배인혁 분)의 금쪽같은 계약결혼 스토리를 담은 드라마다. 동명의 웹소설이 원작이다.
배인혁은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열녀박씨'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작품 속 차가운 캐릭터와 달리 오직 20대만이 가질 수 있는 풋풋함과 장난기를 품고 있었다.
'열녀박씨'는 시청률 5.6%로 시작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지만 당시 승승장구 중이던 '연인'의 바통을 이어받았고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흥행한 이세영이 주연을 맡아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이에 배인혁은 다소 부담감이 있었을 터다. 그러나 보란 듯이 최종 시청률 9.3%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극 중 배인혁은 감정보다 논리를 우선시하는 철벽남이자 SH그룹 부대표 강태하 역을 맡았다. 또 조선시대 박연우의 남편을 연기했다. 현대극과 사극을 넘나들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그는 철저하게 다른 캐릭터라고 설명하면서도 조선 태하가 자신과 더 비슷하다고 밝혔다.
"연우는 조선의 생각과 영혼이 현대에 그대로 오지만 태하는 조선 태하와 현대 태하로 나눠져 있어요. 현대 태하는 차갑고 냉정한 '강드로이드(강태하+안드로이드)'에 맞췄고 조선 태하는 연우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어요. 또 회사라는 시스템을 이해하려고 유튜브와 다큐멘터리를 찾아봤어요. 직책이 갖는 무게감과 책임감에 대해 생각했죠. 조선 태하와 현대 태하를 같은 인물이라 생각하지 않아 다른 캐릭터로 접근했어요. 실제 성격은 현대 태하보다 조선 태하예요."
작품은 총 12회로 구성됐다. 그 때문에 전개가 빠르게 진행됐지만 그만큼 내용이 짧아 아쉽다는 평도 이어졌다. 배인혁은 이에 공감하면서도 작품 흥행 이유로 빠른 전개를 꼽았다.
"12부라 아쉬운 마음이 커요. 감정적인 장면도 갈등도 많았고 특히 조선에 넘어간 태하와 연우의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래도 '예쁘게 마무리했구나' 생각하며 마지막 방송을 봤어요. 이 작품은 소재가 신선하고 내용이 단순해요. 무엇보다 전개가 빠르죠. 한 회 안에서 사이좋고 나쁨이 반복되고 갈등과 소재가 많으니 그만큼 볼거리도 많았어요. 요즘은 정주행의 시대라 기다림이 답답할 수 있는데 빠르게 흘러가서 좋았어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바로 이세영과 '케미'다. 우연히 입맞춤으로 시작했지만 후반엔 진한 애정 연기로 발전한다. 이들의 '케미'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고 '2023 MBC 연기대상'에선 잠시나마 열애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배인혁은 열애설이 난지도 몰랐다고 한다.
"넘어졌다 겹쳐있고 뭔가 할듯 말듯 하는 장면이 많아 답답하더라고요. 그런데 태하는 첫 연애고 연우는 조선의 '유교걸'이잖아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부턴 둘 다 자유로워졌죠. 전 열애설 난지도 몰랐고 그렇게 많은 기사 '좋아요'는 처음이에요. 저희를 좋게 봐주시고 '케미'가 너무 좋아서 난 해프닝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열녀박씨'를 통해 또래 배우이자 선배인 이세영에게 많은 걸 배웠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시점에 시작한 동료 배우를 주목할만한데 오히려 아역배우로 성장한 배우들에게 눈길이 간다고 한다.
"저도 오래 하고 싶어서요. '이래서 선배구나, 오랫동안 자리를 유지하고 남아있구나'를 느꼈어요. 쉽지 않은 길을 유지하는데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고 '뭐가 다를까' 호기심과 궁금증이 있었죠. 세영 선배가 가지고 있는 테크닉, 현장에서 사람들과 지내는 방식, 소통 등을 보며 궁금증이 풀렸어요."
앞서 이세영은 배인혁에 대해 "항상 컨디션이 좋은 배우"라고 설명하며 "힘들 법도 한데 힘 든 티를 안 낸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배인혁은 힘든 적이 많다고 말하면서도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했다.
"힘든 티 안 내고 싶어요. 피곤하고 힘든 적 많죠. 그런데 현장에서 티 내는 순간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도 기가 빠지잖아요. 텐션 올려서 파이팅하면 또 거기에 맞춰 힘이 나더라고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배인혁은 '병약미' 전문 배우가 됐다. tvN '슈룹'에선 단명하는 세자를 연기했고 이번 작품 역시 병을 앓고 피 토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죽음도 2번이나 맞았다. 팬들 사이에서 '피 땀 눈물'이 잘 어울리는 배우로 불리는 이유다.
"'왜 자꾸 죽지? 아파 보이나?' 이런 생각도 들고 '슈룹'과 겹칠까 봐 걱정도 됐어요. '슈룹'은 아들로서 애절함을 담았다면 '열녀박씨'에선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했지만 이혼하고 피 토하는 애절함으로 차이를 줬어요. 겉모습보다 감정적인 것을 다르게 했죠. '슈룹' 때 처음 피를 물어보고 뱉었는데 '열녀박씨' 때는 양을 조절하는 법을 알겠더라고요. 팬들이 '건강한 사극 보고싶다'고 댓글을 다는데 결국 '계속 아파라', '그런데 아팠으면 좋겠다'고 하세요.(웃음)"
배인혁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1998년생이라는 나이에 맞게 주로 학생 역할이 많다. 주요 팬층 역시 또래였다. 그러나 '열녀박씨'를 통해 팬층을 확 넓혔다. 이런 '열녀박씨'는 배인혁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제일 생각이 많았던 드라마요. 육체적으론 괜찮았는데 심적으로 마음고생도 하며 힘들었어요. 그런데 드라마가 잘 되니까 이겨지던데요.(웃음)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싶고 선배들 에너지에 지고 싶지 않았어요. 확실히 이전 작품들과 다른 부담감과 무게감이에요. 이번엔 진짜 어른의 세계를 산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고요. '연인'이 너무 잘 됐는데 격차 날까 봐 불안했죠. 지금은 부모님 또래분들에게 사랑받고 있어요. 원래 '딸이 잘 보고 있다'였는데 '본인들이 잘 보고 있다'로 바뀌었어요."
그간 쉼 없이 TV에 등장한 배인혁이지만 결정된 차기작은 아직 없다고 한다. 다양한 장르에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그가 기대되면서도 주로 드라마에서 얼굴을 비쳐왔기에 예능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도전적인 걸 하고 싶어요. 열녀박씨'도 저에게 도전이었거든요. 위험하지만 계속 부딪혀보고 싶어요. 예능은 '신서유기'에 나가고 싶은데요. 게임 벌칙에서 편안함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싶어요. 추억이 많이 쌓일 것 같아요. 영화 '동감' 때는 드라마 현장과 다름을 배웠어요. 매력 있는 작업이었죠.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고 교도소에 가는 등 감정이 극대화된 캐릭터를 하고 싶어요."
또 한 번의 성장을 이룬 그는 2024년 어떤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설까.
"겁먹기 보다 '한 번 해보고 아니면 한소리 듣고 다시 하지' 이런 초심을 가질 거예요. 막연하게 자신감만 있던 시절처럼 깡 있는 과감한 한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또 저라는 사람 자체가 조금 더 성숙해졌으면 좋겠어요. 팬분들은 너무 많은데 저는 한 사람이라 늘 고맙고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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