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이렇게 매번 '얼굴을 갈아 끼우는' 배우가 또 있을까. 유연석은 '운수 오진 날'로 점점 더 높아지는 대중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면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또 입증했다. 더 나아가 데뷔 20주년에도 여전히 보지 못한 그의 얼굴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심어줬다.
유연석은 최근 전 회차가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운수 오진 날'(극본 김민성·송하나 연출 필감성)에서 연쇄살인마 금혁수 역을 맡아 대중들을 놀라게 하는 연기 변신을 펼쳤다. 그리고 그는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유연석은 "작품 보고 '섬뜩하다'고 해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했어요(웃음). 지인들도 '왜 어울리는지 모르겠는데 잘 어울린다. 연기 좋다'고 해줬어요. 사악한 인물이다 보니까 어떻게 보셨을지 궁금했는데 연기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서 뿌듯해요. 이런 캐릭터를 잘 만들었을 때 얻는 쾌감이 있죠"라고 소감을 전했다.
작품은 평범한 택시 기사 오택(이성민 분)이 고액을 제시하는 묵포행 손님을 태우고 가다 그가 연쇄살인마임을 깨닫게 되면서 공포의 주행을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11월 24일 파트1(1~6화)이 지난 8일 파트2(7~10화)가 공개됐다.
유연석은 파트 1에서 연쇄살인마 금혁수 역을 맡아 파마머리와 주근깨로 외적 비주얼을 완성하며 개구리를 닮은 듯한 원작 캐릭터의 기괴함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이어 파트 2에서 연쇄살인의 공범 금혁수를 죽이고 그의 신분을 도용한 채 살아가는 이병민으로 분해 올백 머리에 화려한 스리피스 정장을 입은 채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해 반전을 선사했다.
극 중 금혁수는 사고 후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됐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는 인물이다. 이를 만난 유연석은 인물의 천진난만함에 집중했고 사이코패스부터 무통각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찾아보면서 여러 설정을 추가해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보통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면서 접근하는데 혁수는 저로부터 시작하면 해답이 안 나왔어요. 관련 영상을 많이 찾아봤죠. 혁수는 통증을 못 느껴서 슈퍼맨인 것처럼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조심해야돼요. 통증은 몸의 경고인데 무통증은 알람이 꺼진 상태라고 보면 되거든요. 보는데 매운맛을 못 느끼더라고요. 재밌는 설정이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이에 유연석은 극초반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선한 이미지를 내세우며 택시 기사에게 고액의 장거리 주행을 제시하고, 고속도로를 타면서 살인을 저지르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극의 분위기를 180도 반전시켰다. 이를 회상한 그는 "사이코패스나 연쇄살인마는 이럴 때 극도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이를 매운 핫바를 먹으면서 인물의 신남과 흥분을 나타냈어요"라고 설명했다.
또한 유연석은 이번 작품으로 첫 연기 호흡을 맞춘 이성민에 관한 두터운 신뢰를 드러냈다. 극 초반 금혁수는 오택과 택시라는 좁고 밀폐된 공간 안에서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며 살벌한 신경전을 벌인다. 이후 피해자이자 목격자가 된 오택은 금혁수인 척했던 이병민을 집요하게 쫓으며 팽팽한 몸싸움까지 벌인다. 이를 연기한 두 사람은 탄탄한 연기력과 안정적인 호흡으로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농담으로 말하자면 (이성민 선배님과) 지겹도록 붙어있었어요. 그 정도로 정이 많이 쌓였죠. 특별한 말을 나누지 않아도 호흡이 너무 좋았어요. 선배님에 관한 좋은 말을 많이 들어서 기대했는데 역시 좋은 선배님이셨죠. 옆에서 연기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웠어요. 제가 특별한 액션을 취하지 않더라도 오택의 긴장감과 공포감이 있었기에 혁수의 공포스러움이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최근 유연석은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영화 '멍뭉이' 등 부드럽고 선한 이미지의 캐릭터와 작품으로 대중들과 만났다. 그렇기에 '운수 오진 날'에서 그가 펼친 연기 변신이 더욱 놀랍고 강렬하게 다가왔다. 유연석은 이 같은 행보를 보여준 이유에 관해 "(변신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근래 부드러운 이미지의 캐릭터들을 하다 보니까 연기 변신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부드러운 이미지를 탈피하고 다른 얼굴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도 있었고요. 이러한 타이밍에 그동안 했던 캐릭터와 상반된 캐릭터인 금혁수를 만났어요. 자연스럽게 관심이 더 갔죠."
유연석의 필모그래피를 천천히 훑어보면 그동안 늘 자신의 무기인 '선과 악이 공존하는 마스크'를 완벽하게 활용하며 꾸준한 연기 변주를 펼쳐왔다.
'건축학개론'(2012)에서 첫사랑을 가로챈 나쁜 선배로 관객들의 분노를 유발했던 유연석은 '늑대소년'(2012)으로 악역 이미지를 굳히는 듯했지만 '응답하라 1994' 칠봉이로 모든 여성을 설레게 하며 반전 매력을 선사했다. 이후 '미스터 션샤인' 구동매로 비극적이면서도 애절한 짝사랑을 보여준 그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안정원으로 분해 따뜻한 이미지를 구축하며 또 하나의 '인생캐'를 추가했다.
이렇게 유연석은 끊임없이 새로운 얼굴을 꺼냈고 이를 마주한 대중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연기 변신에 의구심이 아닌 기대감만 갖게 됐다.
"제가 안 보여줬던 얼굴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워요. 보는 분들이 '이 사람은 이 역할을 어떻게 소화할까? 다음에는 무엇을 보여줄까?'라는 기대감과 바람을 가졌으면 좋겠고요. 유연석이라는 배우가 살아남는 법이죠. 낙차가 큰 연기를 하는 게 저도 재밌고 보시는 분들도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까 수식어처럼 기억되는 캐릭터도 여러 개 생겼죠. 배우로서 너무 좋아요."
2003년 영화 '올드보이'에서 유지태 아역을 연기하며 연예계에 발을 내디딘 유연석은 어느덧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이했다. 그는 지난 2월 종영한 JTBC '사랑의 이해'를 시작으로 '멍뭉이'와 '운수 오진 날'까지 전혀 다른 결의 세 작품을 연달아 선보였다. 또한 유연석은 팬미팅을 개최해 팬들과 특별한 추억을 쌓는 등 다채로운 활동으로 의미 있는 20주년을 완성했다.
바쁘게 달려온 한 해를 돌이켜본 유연석은 "올해 다양한 활동을 보여드린 것 같아서 뿌듯해요. 코로나19가 끝나고 올해 기자분들과 세 번이나 인터뷰를 했더라고요. 다양한 활동으로 대중과 만나서 뿌듯하고 좋은 결과들이 따라와서 기분도 좋아요. 뜻깊게 20주년을 맞이한 것 같아요"라고 뿌듯한 마음을 드러냈다.
끝으로 유연석은 "내년은 아직 디테일하게 결정된 건 없어요. 그렇지만 혁수와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라고 귀띔하며 또 다른 얼굴을 기대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