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정병근 기자] '싱어게인3'에서 마이크마저도 신기해하던 앳된 모습의 31호 가수는 산울림의 '내게 사랑은 너무 써'를 선곡해 묵직한 한소절만으로 감탄을 자아냈고 '올어게인'을 받았다. 한창 트렌디한 음악에 빠져 지낼 Z세대가 전하는 옛 노래의 감성은 다소 낯설어서 오히려 더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의 정체는 가수 서윤혁이다.
서윤혁은 지난 8일 신곡 '7080'을 발표했다. 31호 가수에서 가수 서윤혁이 된 바로 다음날이다. 그는 7일 방송된 JTBC '싱어게인3'에서 3라운드에서 아쉽게 탈락해 자신의 이름을 공개했다. 서윤혁은 탈락의 아쉬움을 달래듯 '싱어게인3'에서 전해준 그 묵직한 울림을 담은 곡을 내놨다. 제목부터 정체성 뚜렷한 '7080'이다.
최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서윤혁의 첫인상은 '싱어게인3'에서 봤던 모습보다 더 어려보였고 음악을 대하는 자세는 마치 노래를 부를 때처럼 차분하고 진중했다. 나이에 걸맞은 해맑음도 보였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작업실을 겸한 집을 구해 독립을 한다며 설레어하는 모습은 귀한 장난감을 손에 쥔 어린아이 같았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지금 쓰는 작업실이 지하에 있는데 불편하기도 하고 목도 잘 붓고 그래서 독립을 결심했어요. 어차피 작업실에서 생활하다시피 했었고 부모님이 믿어주셔서 독립할 수 있게 됐어요. 방송 전부터 계획했던 건데 끝나자마자 운좋게 딱 타이밍 좋게 구했고 이제 죽기살기로 더 음악에 집중해야죠."
독립을 앞둔 서윤혁의 설렘은 그 무엇도 아닌 오직 음악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지만 업으로 삼을 생각까진 못했던 그는 3년 전인 중학교 3학년 때 '싱어게인' 첫 시즌을 보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 사실 그때부터 이미 음악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시즌3에 직접 참가하면서 더 간절해졌다.
"'싱어게인'을 보면서 어떤 특정 무대에 꽂힌 건 아니었어요. 이렇게 노래를 잘하고 이렇게 무대가 간절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고 난 지금 아무것도 아니지만 저런 가수가 되고싶다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시즌3에 참가하면서 좋은 자극제가 됐어요. 좋은 형 누나들을 만났고 나도 정말 죽어라 해야겠다고 느꼈어요."
"인생을 전체적으로 다듬어준 프로그램"이라고 표현할 만큼 '싱어게인'은 서윤혁에게 3년 전에도 지금도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줬다.
무대의 맛도 알았다. '올어게인'을 받았던 첫 공연은 "정신을 차려보니까 불이 다 켜져 있더라"라고 할 만큼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두 번째 라운드는 인생 무대가 됐다. 당시 서윤혁은 49호 가수(소수빈)와 팀을 이뤄 듀엣 무대를 펼쳤는데 그는 예전부터 굉장히 좋아했다는 49호 가수와 모든 걸 쏟아냈다.
"형이랑 같이 무대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는데 즐기자는 생각이었고 떨리고 흥분됐어요. 같이 무대를 하다 보니까 떨리기보다 정말 재미있어서 미치겠더라고요. 결국 상대 팀에 지긴 했지만 전혀 슬프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었어요. 지금까지 중에 압도적으로 재미있었던 무대였어요."
그때의 마음을 간진한 채 만든 곡이 '7080'이다. 추상적이면서도 서윤혁이 추구하는 7080세대 음악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제목이다. 서윤혁은 "제목에 거추장스러운 단어를 넣기 싫었다", "7080은 내게 노래만이 아니라 그 시절 자체가 크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그는 7080 음악에 진심이다.
부모님이 7080세대인 서윤혁은 그 시절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좋아하게 됐지만 그 음악을 하려고 하진 않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연말 공연 때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원하게 말아먹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 뭔가에 홀린 듯 김광석의 앨범 '인생이야기'를 찾아 쭉 듣게 됐고 엉엉 울었다.
"처음 듣는 것도 아닌데 그날따라 그 앨범을 들으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어요. 버스에서 서있었고 앞에 사람이 앉아있었는데 미친사람인 줄 알았을 거예요.(웃음) 그 노래들이 저에겐 노래가 아니라 소중한 반창고 같이 다가온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바로 저의 정체성을 깨닫고 정하게 됐어요."
서윤혁의 신곡 '7080'은 그때의 경험을 담은 곡이다. 오롯이 혼자 작사하고 작곡한 이 곡에서 서윤혁은 '내가 어렸을때 들었던 노래들은 모두 잊은 채 쉬지 않고 달렸지 /길을 잃고 해매던 날 다시 일으켜줘 / 너를 찾고난 후 나를 알게 되었지'라고 말한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끌고나가다 후반부에 고조되는 감정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노래는 기타 연주와 서윤혁의 목소리가 전부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수많은 사운드로 채워진 소위 '요즘 음악'과는 애초에 결이 다르다. 곡을 끌고 가는 건 서윤혁의 진심이 담긴 가사와 그걸 또렷이 전달하는 목소리의 힘이다. 그것만으로도 큰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서윤혁이 보여준다.
"음악 장르를 가리진 않는데 예전부터 너무 많은 게 들어간 음악을 들으면 어지러웠어요. 요즘 제 또래인 10대나 20대 분들도 이런 노래를 들어봐 주셨으면 좋겠고 이런 감성도 좋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저 옛 음악을 제가 부른다기보다는 이런 감성의 음악을 지금의 10~20대에게 대변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서윤혁은 요즘 바뀐 게 하나 있다. 예전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니까 내 이야기를 쓰고 욕심 없이 하자"였다면 지금은 "내 음악으로 대중을 설득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기 위해선 초심을 잃지 않고 우직하게 정진해야 한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옛날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백명이 듣는 한 곡보다 한 명이 듣는 백곡을 만들자. 그리고 그 한 명을 조금씩 늘려가는 게 제 목표예요. 제 바람을 이루려면 더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걸 잘 알아요. 길게 말하기보다 지금의 이 마음 변치 않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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