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표, 누구냐 넌②] "수십만 원 '플미'도 이제 무뎌졌어요"


"그냥 보고싶을 뿐"..활개치는 암표상에 멍드는 팬심
과한 웃돈 붙은 암표, 얼마나 가까이 스며들었나

한 사이트에선 암표 거래가 체게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앞자리의 경우 수백만 원짜리 티켓이 흔하고 뒷자리 티켓마저도 수십만 원에 대량 거래되고 있다. /사이트 캡처

세계 팝의 중심인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 한국 가수의 이름이 매주 오르내리고 총 십만 관객이 넘는 규모의 월드투어도 비교적 흔해진(?) 요즘. 글로벌 K팝 시대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K팝 업계를 어둡게 하는 건 바로 '암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기가 많아질수록 불법거래가 더 판친다. '암표', 누구냐 넌?<편집자 주>

[더팩트 | 정병근 기자] 암표가 갑자기 생긴 새로운 건 아니다. 요즘 시대까지 개정 없이 유지되고 있어서 문제지만 50여년 전 관련 법률이 만들어졌으니 나름 오랜 역사가 있는 시장이다. 그런데 왜 요즘 이토록 시끄러운 걸까. 일부의 문제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조직화되고 광범위해져서다. 그 심각성을 인지한 업계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암표 시장은 '팬심'을 먹고 자란다. 어떻게든 좋아하는 가수를 보고 싶은 마음, 어떻게든 좀 더 가까운 곳에서 공연을 즐기고 싶은 팬들의 마음에 값을 메겨 많게는 수십 배까지 차액을 남긴다. 팬들은 또 다른 팬들과 티켓을 구하기 위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업자들의 프로그램(매크로)과 싸워야 한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A씨(여. 22)는 2018년 처음 아이돌그룹 콘서트에 간 뒤로 올해까지 20여 회 관람했다. 그가 갔던 콘서트 모두 인기 아이돌그룹이다. 코로나19로 공연 자체가 사라졌던 시기를 빼면 매년 6~7회에 이른다. A씨는 지금까지 본 공연들 중 최소 10회 이상 웃돈(프리미엄)이 붙은 암표를 구매해서 관람했다.

A씨는 "5년 전쯤 처음 콘서트를 보러 다닐 때도 프리미엄 붙은 티켓이 있긴 했다. 그런데 코로나19 끝나고 확실히 너무 심해졌더라. 가격도 그때보다 훨씬 비싸졌다. 대리 티켓팅도 있고 아예 매크로 업체에 계정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며 "전 정가에서 적게는 10만 원부터 많게는 70만 원까지 더 주고 사봤다"고 떠올렸다.

또 "티켓 예매에 성공해서 간 적도 있는데 그러기가 정말 많이 힘들다. 성공을 한 건 정말 운이 좋았을 때다. 예매할 때 앞자리가 안 되면 뒷자리를 구매해본 적도 있고 매진이 안 된 공연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럴 때도 앞자리 티켓을 계속 알아보게 된다. 주로 트OO이나 티켓OO에서 구매했다"고 말했다.

한 SNS의 한 계정에서만도 여러 콘서트들의 여러 좌석 티켓들이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100여만 원의 웃돈을 붙여 판매되고 있다. /SNS 캡처

티켓OO는 아예 암표 거래 전용 사이트다. 검색창에 가수 이름만 치면 콘서트 티켓 가격과 대략적인 좌석 위치 정보가 적힌 판매글이 쭉 나온다. 앞자리부터 뒷자리까지 없는 티켓이 없다. 인기 아이돌그룹 콘서트의 플로어석은 100만 원 정도가 흔한 수준이고 지난 24일 확인한 티켓들 중 최고가는 500만 원이었다.

이 티켓들 대부분, 어쩌면 전부 다 업자들이 매크로를 돌려서 확보한 것들이다. 팬들도 이를 잘 안다. 일부 팬들은 직O이라는 매크로를 구입해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업자들이 사용하는 매크로는 성능이 훨씬 좋다. 실제 관람을 목적으로 한 매크로 사용도 사라져야겠지만 그들 역시도 결국 더 좋은 자리를 위해 암표를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억울하지 않냐'고 묻자 A씨는 "매크로 원래 알고 있었는데 별 생각이 없어졌다. 그냥 보고싶은 마음에 사는 거다. 그게 제일 크다. 이 돈까지 주고 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 적도 있는데 무뎌진 거 같다"고 말했다. '아무도 구매를 안 하면 암표가 근절되지 않겠냐'고 물으니 "그런 생각 별로 안 해봤다. 하나의 시장으로 된 거 같다"고 답했다.

"무뎌졌다"는 말은 암표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있는지, 암표가 얼마나 심각한 사회 문제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A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B씨(남. 42)는 얼마 전 생애 처음으로 암표를 구매했다. 부모님을 위해 서툰 클릭으로 콘서트 티켓 예매를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SNS를 통해 암표를 알게 됐다. 그는 "2장에 110만 원 주고 구매했다. 큰 금액이지만 요즘 최고의 효도 선물이라기에 아깝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매크로에 대해 설명하자 B씨는 "공연 티켓을 예매해본 건 처음이라 그런 건 잘 몰랐다. 그냥 요즘엔 암표 거래가 이렇게 이뤄지는가보다 했다"고 말했는데 이 역시 암표에 둔감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는 "콘서트 티켓을 구매할 일이 또 있을까 싶기는 한데 (암표가) 그 정도면 진짜 문제 있는 거 아닌가?"라고 물었다.

한 중고거래 플랫폼에도 암표를 판매하는 게시물이 수없이 올라오고 있다. 판매 규모를 봤을 때 전문적으로 판매 행위가 이뤄지는 업자들인 것으로 보인다. /중고거래 플랫폼 캡처

사실 물을 것도 없다. 잘 모르는 사람도 단번에 느낄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암표 거래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한 SNS와 중고거래 플랫폼에 하루에도 수백 개의 판매글이 올라오고 매진된 인기 콘서트들의 티켓을 십여 장씩 파는 판매자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티켓OO은 조직화되고 체계화된 암표 시장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티켓 예매 사이트는 매크로 방지 기술을 도입했다. 로그인을 할 때마다 랜덤으로 배정되는 특정 문자나 이미지를 보여주고 쓰거나 같은 이미지를 클릭해야 하는 것. 그러나 업그레이드된 매크로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공연 현장에서 티켓 예매자 본인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물 티켓만 있으면 입장이 제한되는 경우는 드물다.

모바일 티켓의 경우 구매자의 기기로 옮기는 방식을 썼었지만 이 방법은 얼마 전부터 막혔다. 그래서 요즘은 '기기대여'를 한다. 말 그대로 모바일 티켓이 있는 기기를 대여해 입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또 '아옮(아이디옮기기)'도 있다. 판매자가 예매 티켓을 취소하는 동시에 구매자의 아이디로 구매하는 방식이다.

팬들은 '아옮'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 차를 노리고 티켓 예매를 시도하기도 한다. '아옮'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대행 업체까지 있다. 이처럼 편법들이 난무하다 보니 사기도 빈번하다. 팬들은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좋아하는 가수를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과한 웃돈을 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기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티켓OO은 거래완료를 해야 판매자에게 돈이 입금된다. 팬들은 "사기위험이 낮아서 이용한다"고 말한다. 대놓고 티켓 불법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 오히려 팬들이 안심할 수 있는 곳이 된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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