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BTS) 등 K팝 아티스트를 향한 전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엔 이들이 설 무대가 없다. 한국 음악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전 세계 7위에 해당하지만, 이에 걸맞는 공연장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다행인 점은 최근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 건립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상황. 이에 국내 공연장 인프라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주>
[더팩트 | 공미나 기자] 지난 8월 그룹 2PM 팬덤 핫티스트는 서울 성내동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 사옥 주변에서 트럭 시위를 펼쳤다. 15주년 콘서트가 열리는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이 팬덤 규모에 비해 너무 작은 공간이라는 이유에서다.
앞서 지난 5월 그룹 샤이니 팬덤 샤이니월드도 서울 성수동 SM엔터테인먼트 사옥 주변에서 15주년 팬미팅 대관 장소가 적절하지 않다며 트럭 시위를 했다. 팬미팅 장소로 공지된 경기 일산 킨텍스는 시야 제한이 심하고, 공연을 할 장소로 적합하지 않다는 평을 받는다. 결국 소속사는 급히 잠실 실내체육관으로 팬미팅 장소를 변경했다.
공연장 부족 문제로 팬덤이 분노하고, 대중음악업계는 곤란한 상황의 연속이다. K팝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며 공연장 수요도 늘어나고 있지만, 국내 공연장 인프라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중음악 공연 대관 수요가 폭발하며 공연장 부족 문제는 더욱 심화되는 분위기다.
이는 팝스타들의 '한국 패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최근 내년 월드투어의 아시아·오세아니아 일정을 발표했는데, 한국은 투어 지역에서 제외됐다. 밴드 콜드플레이도 아시아·호주 투어를 예고했지만, 공연지 목록에 한국은 없었다. 두 팀 모두 옆나라인 일본에서 각각 2회, 4회씩 공연을 펼치는 것과 대비된다.
내한을 한다 한들, 공연장 문제로 골머리를 앓긴 마찬가지다. 지난 9월 미국 팝스타 포스트 말론이 내한 공연을 열 당시 장소를 경기 일산 킨텍스로 선정해 관객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킨텍스는 전문 공연장이 아닌 박람회장으로, 단차가 없고 돌출 무대 사용이 제한적이다. 이곳에서 공연을 할 경우 관객 시야나 음향 등에 잦은 문제가 발생한다. 페스티벌 업계에서는 킨텍스를 '페스티벌의 무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서 공연을 열었다가 성공한 사례가 없어서다. 포스트 말론의 내한 공연을 주최한 라이브네이션코리아도 당시 마땅한 공연장이 없어서 이곳을 선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내 공연장 부족 현상은 최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의 올림픽주경기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가며 심화됐다. 올림픽주경기장은 6만5599개의 좌석이 있는 국내 최대 규모 공연장이다. 지난 8월 공사를 시작했으며, 2026년 12월 준공 예정이다.
5만명 이상 수용한 또 다른 곳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월드컵경기장이다. 이곳은 잔디 훼손을 우려해 대중음악 가수들에게 쉽사리 문을 열어주지 않지만, 지난 8월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가 위급한 상황 속 개최된 바 있다. 그 탓에 10억원 가까이 들여 가꾼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가 망가지며 많은 축구팬들의 원성을 자아냈다.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서울 고척돔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구 체조경기장)이다. 그러나 고척돔은 프로야구가 진행되는 4~10월 대관이 어렵고, KSPO돔 대관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 특히 올림픽주경기장이 리모델링을 시작한 뒤, 대형 가수들이 KSPO돔에서 쪼개기 공연을 하며 이곳의 대관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최근 가수 김동률과 임영웅이 이곳에서 각각 2주에 걸쳐 6회 공연을 열었는데, 10월 한 달간 KSPO돔에서 딱 두 팀의 가수가 공연할 수 있었던 셈이다. 또 이러한 대형 가수들이 KSPO돔으로 시선을 돌리며, 도미노현상처럼 이곳을 대관하지 못 한 다른 가수들은 공연 규모를 축소 시켜 작은 공연장으로 발길을 옮길 수 밖에 없게 됐다.
거론된 공간들 역시 전문 공연장이 아닌 체육시설이기 때문에 공연을 열기에 애로사항이 적지 않다. 더 많은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이 생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팝스타들의 내한 공연을 추진해 온 공연 업계 관계자 A씨는 "과거엔 3~4개월 전에 대관이 가능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은 최소 6개월 전에 연락해도 대관이 어렵다"며 "톱급 해외 뮤지션이 내한 의사를 밝혀도 수용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림픽공원에 위치한 KSPO돔, 올림픽홀, 핸드볼경기장 등은 대관 가능 시기가 정해져 있어 이를 맞추기 어렵다고 한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관리·운영하는 이 공연장들은 상반기, 하반기, 연말로 구분해 정기대관을 공모 접수받는다. A씨는 "1년~2년 일찍 내한 계획을 밝힌 팝스타는 공연장 대관 신청을 미리 할 수 없어, 불확실한 상황에 내한을 추진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대형 공연장뿐만 아니라 중소형 공연장 부족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2022 등록공연장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공연장 수는 1300여 개다. 언뜻 많아 보이지만, 이 역시 대부분 구민회관 같은 시설 혹은 연극 및 뮤지컬 공연장이다.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또 대부분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또 다른 공연업계 관계자 B씨는 "공연장 숫자가 K팝을 비롯해 우리나라 대중음악 시장 규모에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라며 "수도권은 물론 전국적으로 공연장이 많이 생겨야 대중음악 시장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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