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최근 출연하는 작품마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배우 이준영이 악의 정점을 찍고 돌아왔다. 전사도, 서사도 없는 악역에 용기를 낸 그는 이번에도 제대로 돌아버린 눈을 장착한 채 스크린에서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이준영은 25일 스크린에 걸린 영화 '용감한 시민'(감독 박진표)에서 힘도 세고 친구들을 괴롭히는 게 일상인 한수강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는 데뷔 첫 상업영화 개봉을 앞둔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언론 시사회와 VIP 쇼케이스 등을 통해 작품을 선보인 이준영은 주변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많이 들었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2년 전에 찍은 거라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있었죠. 그런데 좋은 반응을 보내 주셔서 좋았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세게 나왔더라고요. 이제 맛있게 욕먹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작품은 불의는 못 본 척, 성질은 없는 척, 주먹은 약한 척 살아온 기간제 교사 소시민(신혜선 분)이 선을 넘어버린 안하무인 절대권력 한수강의 악행을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통쾌한 이야기를 그린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극 중 한수강은 빽만 믿고 학교 폭력을 일상처럼 휘두르는 인물이다. 이준영은 그동안 봐왔던 악역들과 달리 전사나 서사가 전혀 없었던 한수강을 별개의 인격을 가진 다른 차원의 인물로 보고 접근했다고. 그리고 이를 잘 표현하기 위해 '나쁜 눈 뜨기' 연습에 돌입했고, 한수강만의 습관을 만들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다가 혓바닥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성경에서 사탄은 뱀이라고 설명해요. 한수강이랑 잘 어울릴 것 같더라고요. 괴롭히는 학생을 가운데에 두고 아나콘다가 사냥하는 것처럼, 점점 조여가는 걸 떠올렸어요. 감독님께 의견을 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해주셨어요. 나중에는 감독님께서 부족하다 싶으면 '수강이 혀'라고 주문하셨어요."
이준영은 고진형(박정우 분)에게 검은 봉지를 씌우고 폭력을 가하는가 하면, 그의 할머니(손숙 분)까지 괴롭히는 한수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어떠한 정당성도 부여하지 않으며 이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기에 촬영하면서 인간 이준영과 배우 이준영의 감정이 충돌하는 일이 잦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을 편하게 찍지 못했다는 그는 오케이 사인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촬영 후에도 감정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친할머니가 편찮으셨는데 할머니를 괴롭히는 신을 찍었어야 했어요. 손숙 선생님께서 '많이 힘들지? 난 괜찮으니까 편하게 해'라고 해주셔서 울컥했어요. 너무 죄송스러웠고, 더 집중해서 한 번에 찍으려고 했죠. 원래는 캐릭터에 빠져나오기 위해 혼자 시간을 보내는 편이에요. 그런데 너무 외로워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혼자서 감당하기 벅찬 감정이어서 주변 스태프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2014년 그룹 유키스로 데뷔한 이준영은 2017년 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온 그는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D.P.'서 탈영병 정현민으로 분해 정해인과 팽팽한 대결을 펼쳤고, 적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이준영은 넷플릭스 '모럴센스' '마스크걸' 등을 통해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했고,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편견을 깨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하고 있다.
실제로 'D.P.'는 이준영이라는 이름 석 자를 뚜렷하게 알리는 계기이자 배우로서 유연함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라고. 당시 한준희 감독은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고 주문하며 자율성을 부여했고, 이에 이준영은 견고했던 자신만의 틀을 깨면서 유연함을 배웠다.
특히 그는 "예전에는 여러 버전을 다 준비하고 계획했는데 이제는 같이 호흡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대사만 완벽하게 외워가죠. 리허설하면서 유연하게 해요. 피곤함이 좀 없어졌죠"라고 설명했다.
이준영의 필모그래피는 크게 두 가지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부암동 복수자들' '이미테이션' '모럴센스' '마스크걸' 등 웹툰 원작인 작품이 주를 차지하고 있고, 이 가운데 악역 캐릭터를 소화할 때 '눈이 돌았다'는 호평과 함께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덕분에 '잘생긴 쓰레기'라는 수식어까지 보유하고 있지만, 이 같은 행보에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재밌고 빨리 읽히는 시나리오가 좋아요. 여러 상상을 바로 할 수 있어야 하죠. 그게 최우선이에요. 웹툰이 원작인 작품을 할 때 부담감이 있지만 '이런 부분을 각색하려고 한다'는 설명을 듣고, 서로 약속하고 시작하잖아요. 선장을 믿고 따라가려고 해요."
"저는 모든 작품을 같은 마음으로 찍거든요. 악역으로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게 신기하고 감사하죠. 모든 작품을 똑같은 방법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시기상 악역을 맡은 작품들이 연달아 공개됐는데 또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보고 어떤 모습으로 기억해 주실지 기대가 돼요."
이준영은 현재 영화 '황야'와 드라마 '로얄로더' 촬영을 마쳤고,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촬영 중이다. 또한 표예진과 함께 티빙 '나는 대놓고 신데렐라를 꿈꾼다' 출연을 확정하고 촬영을 앞두고 있다. 입대 전까지 열심히 달리며 많은 작품으로 대중들과 만나고 싶다는 굳은 의지를 내비친 그는 "피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다 해놓고 가고 싶어요. 다양한 걸 경험하고 싶죠"라고 강조했다.
"사실 아직 어려서 사회적 경험이 편협해요. 연기하면서 여러 인물로 살아갈 수 있고, 또 새로운 감정들도 많이 공부할 수 있죠. 이게 너무 신기해요. 이런 것들을 건강하게 잘 모아보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또 이 일을 할 때까지 여러 사람을 속이고 싶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이 배우가 이 배우였어?'거든요. 연기하면서 늘 새로운 걸 만들고, 가능할 때까지 많은 분들을 속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