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배우 임시완은 차분하면서도 진중했고, 그 어떤 질문에도 조급하지 않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솔직한 대답을 내놓았다. 약 한 시간의 가량의 인터뷰에서 결코 뻔하거나 예상 가능한 답변은 없었다. 배우 이병헌의 인사치레를 곧이곧대로 듣고 집을 놀러 간 일화가 자연스레 떠오를 만큼 배우 그리고 임시완에게 '하는 척'은 없었고, 오직 순수한 매력뿐이었다.
임시완은 지난달 27일 스크린에 걸린 영화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에서 마라토너 서윤복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작품은 지난 2020년 1월 크랭크업했지만, 코로나19를 비롯해 여러 이슈로 약 3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됐다. 이 가운데 임시완은 개봉을 앞둔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파에서 <더팩트>와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약 10명이 넘는 취재진이 인터뷰가 진행되는 지하 장소에 도착해 자리를 잡자, 임시완은 간식을 준비했다며 휘낭시에를 건넸다. 덕분에 경직된 분위기가 풀렸고, 이날 임시완은 과거 군대 휴가 나왔을 당시 대본을 처음 읽었던 때를 먼저 떠올렸다. 작품을 읽고 가슴이 뭉클해졌다는 그는 "변요한 형을 만나서 '대본을 분석하기도 전에 뭉클한 느낌을 받았다'라고 했더니 '마음에 들면 해야지'라고 말하더라고요. 그걸 듣고 확신했어요"라고 출연한 이유를 밝혔다.
'1947 보스톤'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다. 이 가운데 임시완이 연기한 서윤복은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국가대표이자 제2의 손기정을 꿈꾸는 인물로,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달리기를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깡과 악으로 각종 대회를 휩쓰는 불굴의 마라토너다.
실존 인물을 연기하게 된 임시완은 마라토너의 자세와 표정이 몸에 자연스럽게 익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습했다. 또 단단하고 다부진 체구를 만들기 위해 식단 관리와 운동을 병행하는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체지방을 6%대까지 낮췄다. 이에 임시완은 "제 인생에 다시 없을 것 같은 신기한 숫자"라고 웃어 보이면서도 유독 이번 작품을 위해 영혼까지 불태운 이유를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대단한 분을 연기하는 것 자체에 큰 책임감이 따랐어요. 제가 태극 마크를 단 적은 없으니까 다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국가대표만큼의 의지를 불태우자'라는 마음이 작용했죠. 태극기를 바라봤는데 책임감과 중압감이 크게 작용하더라고요. 물론 매 작품 제 영혼을 불태워서 임하는 게 미덕이지만, 인간으로서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태극마크를 달고 뛴 임시완의 진심은 관객들에게 충분히 전달된다. 단순히 '연기를 잘한다'라는 뻔한 감상평을 넘어 마음까지 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시완은 3년 전 자신의 연기를 보는 것이 괴로웠다고 밝혀 궁금증을 안겼다. 그는 "저는 현재진행형이고, 성장 과정을 겪고 있잖아요. 3년 전의 저를 보면서 전체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더 감정을 채운다거나, 웃길 수 있었을 텐데 등 여러 생각이 들었죠"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임시완은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마라톤이 진짜 그의 취미가 됐다고. 시간이 나면 늘 달린다는 그는 "정확히 형언할 수 없지만 단순 명쾌한 목표가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마라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임시완은 "시작점과 도착점이 있다는 것이 좋아요. 도착하는 게 곧 목표가 되잖아요. 시작할 때 대단한 준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큰 신경을 쓰지 않고 목표점을 완료할 수 있죠"라고 강조했다.
2010년 보이그룹 제국의 아이들로 데뷔한 임시완은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연기를 시작했다. 이후 그는 영화 '변호인'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비상선언', 드라마 '미생' '런온'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했다. 매 작품 안주하지 않고 연기 변신을 꾀하며 새로운 얼굴을 선보였고, '연기돌'이나 '아이돌 출신 배우'에서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났다.
"작품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지점이 정말 다양해요. 지친 제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작품이 좋기도 하고 존경하는 감독님, 선배님과 같이할 수 있는 것도 좋은 기회고요. 늘 기준 자체가 달라지는데 기준을 잡는 것도 결국 어떤 게 좋은 작품이냐를 결정짓냐는 거라서 어렵고 조심스럽죠. 함부로 정의를 내리지 않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어요."
특히 임시완은 '비상선언'과 넷플릭스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를 통해 선함에서 악인의 모습을 새롭게 보여줬고,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으며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의 결을 또 하나 열었다.
이러한 연기를 할 때 공감보다 관점을 바꾼다는 그는 "살인이라고 생각하면 공감할 수 없죠. 뛰어난 예술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예술 작품을 하는 거야. 나의 숭고한 희생이야'라는 식으로 관점을 바꿔야지 제 공감을 끌어낼 수 있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렇게 임시완은 성실함과 꾸준함을 무기로 자신만의 길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매번 새로운 얼굴을 선보이는 만큼 다음 작품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하는 가운데, 그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졌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취미인 러닝과 복싱도 그렇고, 제 생활 반경들이 배우라는 중심점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지, 또 좋은 작품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이 일을 하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요"라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제껏 해왔던 방식은 저를 백지화하는 작업이었어요. 어떤 것도 다 담아낼 수 있도록 말이에요. 이런 것도 해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도전의 연속이 됐을 때 임시완 배우가 할 법한 것이다라는 게 정확하게 구체화되는, 그 중심에 서는 기둥이 되는 결과값이 나오는 때가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