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지금껏 본 적 없는 신선한 영화의 등장이다. 분명 한 장의 티켓을 들고 영화관에 입장했는데, 두 개의 작품을 보는 듯한 기분을 안겨 준다. 배우들의 열연과 앙상블, 그리고 종합선물 세트같은 다채로운 장르가 쉴 새 없이 휘몰아치니 몸을 맡기면 132분이 금세 지나가는 '거미집'이다.
27일 개봉하는 영화 '거미집'(감독 김지운)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감독(송강호 분)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작품 속 김감독은 제작사 신성필림을 이끌었던 당대 최고의 거장 신감독(정우성 분)의 제자로, 성공적이었던 데뷔작 이후 줄곧 악평과 조롱에 시달려 온 인물이다. 그러던 중 김 감독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새로운 결말에 영감을 주는 꿈을 반복해서 꾸고, '이걸 그대로 찍으면 걸작이 되지만 알고도 무서워 그대로 둔다면 평생을 후회 속에 살 거야'라고 결심하며 재촬영을 감행한다.
하지만 다 찍은 영화를 다시 찍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970년대라면 더더욱 말이다. 현실적인 비용 문제부터 배우들의 촬영 스케줄을 맞추고 제작사와 나라의 허락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본은 심의에 걸리고, 제작자 백회장(장영남 분)은 재촬영을 극구 반대한다.
김 감독은 백회장이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신성필림의 후계자 신미도(전여빈 분)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재촬영을 시작한다. 딱 이틀 간의 추가 촬영과 다시 모인 '거미집'의 주역들, 김 감독은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걸작을 탄생시킬 수 있을까.
'거미집'은 김 감독의 영화 촬영 현장과 그가 찍는 흑백 영화 '거미집'이 교차되며 이중 전개된다. 특히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의 주인공들은 당시 말투로 대사를 처리하는데, 어색함이나 과장스러움보다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한다. 또한 치정과 스릴러를 넘어 호러와 괴기로 치닫는 거침없는 전개가 펼쳐지니 지루할 틈이 없다.
또한 배우들의 눈부신 열연과 신선한 앙상블도 돋보인다. 화려한 멀티 캐스팅을 이룬 배우들은 밀거나 밀리지 않으면서 모두가 그 자리에서 빛을 낸다.
우선 송강호는 영화를 향한 열망과 집착, 광기 등 많은 감정에 사로잡힌 인물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특히 완성된 '거미집'을 본 김 감독의 오묘한 표정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가 느낀 감정을 계속 곱씹게 만든다. 여기에 오정세는 코믹과 인간미, 그리고 송강호와 티키타카로 극에 활력을 더한다.
전여빈과 정수정은 자신들에게 딱 맞는 새로운 옷을 발견한 느낌이다. 두 사람의 대립도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또한 영화 속 영화 '거미집' 주역들과 촬영 현장에 있는 배우들 모두가 저마다의 욕망에 사로잡힌 만큼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는 재미가 있다.
'거미집'은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가 다섯 번째로 협업했고,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12분간 기립박수를 받으며 국내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김지운 감독은 코로나19로 한국 영화에 위기가 도래했을 때,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영화의 의미를 되새겼다고 밝혔다. 그렇기에 '거미집'의 주인공 김 감독의 대사는 김지운 감독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만 추석 연휴 기간 가족 단위로 극장을 방문하는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묻는다면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제작을 향한 영화인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긴 만큼, 대중적인 맛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 마음으로 티켓을 구입한다면, 지금껏 보지 못한 걸작을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32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