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실화의 힘은 강했고, 배우 임시완의 열연은 더욱 빛났다. 다만 작품과 상관없는 현실 속 논란이 예상대로 큰 진입장벽이 됐다. '1947 보스톤'이 3년의 기다림 끝에 추석 극장가에 걸리는 가운데, 관객들은 둘 중 어디에 더 무게를 실을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27일 개봉하는 영화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다. 광복 이후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딛고 보스턴 대회에 대한민국 최초로 참가한 손기정 감독과 서윤복, 남승룡 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마라토너 손기정(하정우 분)은 2시간 29분 19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건다. 하지만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시상대에 오른 그는 월계수 화분으로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가렸고, 민족의 영웅이 됐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달릴 기회를 잃게 된다.
광복 이후 1947년 서울, 손기정은 11년 전 빼앗긴 영광을 되찾기 위해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감독을 맡는다. 그러던 중 악과 깡으로 각종 대회를 휩쓸던 서윤복(임시완 분)을 만난다. 서윤복은 제2의 손기정으로 불릴 정도로 촉망받는 실력을 갖고 있지만, 어머니의 병원비와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로 인해 손기정과 서윤복은 마라톤을 대하는 진심을 두고 충돌하기도 하지만, 서윤복은 어릴 적 영웅이었던 손기정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국가대표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손기정 감독과 서윤복, 남승룡의 여정이 그려진다. 이들은 해방의 기쁨도 잠시, 조선이 난민국이라는 이유로 보증인과 보증금이 없으면 미국에 입국할 수 없다는 미군정부터 성조기를 달고 뛰어야 된다는 주최 측 등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대회에 참가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계속 마주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태극마크가 그려진 옷을 받은 서윤복은 42.195km를 감동으로 물들인다. 역사가 곧 스포일러지만 서윤복의 마지막 스퍼트는 알고도 당하는,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가슴 뭉클해지는 순간이다.
'1947 보스톤'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았던 강제규 감독이 '장수상회'(2015) 이후 8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작품은 스포츠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데, 일명 '신파' '국뽕'로 표현되는 국수주의나 민주주의적 감성에 호소하는 요소를 너무 덜어내면서 담백함을 넘어 밋밋하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억지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지만, 실화가 가진 힘에 조금 더 기댔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임시완의 눈부신 활약이 작품을 힘 있게 끌고 간다. 그는 촬영에 돌입하기 전부터 전문 훈련을 받고, 체지방을 6%대까지 낮추며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국가를 대표하는 마음으로 임했다는 임시완의 진심은 스크린을 넘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실존 인물과 싱크로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임시완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울 땐 숨소리마저 참으며 그를 응원하게 된다.
하정우는 때로는 묵직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변주하며 극을 이끈다. 다만 음주 운전 물의를 빚은 배성우가 불편 요소가 된다. 강제규 감독은 작품의 방향성을 고려했다면서 "특정한 일 때문에 선생님들의 삶의 궤적을 변형시키거나 축소시킬 수 없었다"고 전한 바 있다.
극 중 서윤복의 페이스 메이커가 되는 남승룡, 그리고 이를 연기한 배성우의 현실이 자꾸 충돌한다. 또한 소소하게 터질 수 있었던 하정우와 배성우의 티키타카도 진부하게 느껴진다. 캐릭터 그 자체보다 배우가 먼저 보이니 몰입도가 깨질 수밖에 없다.
'1947 보스톤'은 같은 날 개봉하는 '거미집'(감독 김지운), '천박사 비밀 연구소: 설경의 비밀'(감독 김성식)에 비해 가족 단위로 관람하기에 적합한 영화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세 작품 중 가장 많은 제작비(210억 원)가 들어간 만큼, 손익분기점(약 450만 명)을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2세 이상 관람가이며 러닝 타임은 108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