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배우의 롱런 비결이란 생각보다 심플하다. 계속해서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다음에 대한 물음표를 남긴다. 수많은 배우가 바랄 정도로 확고한 방법이지만, 말이니까 쉬운 거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특히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배우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터다. 그 어려운 걸 해내는 배우가 있다. 고현정은 이번에도 기대 이상을 보여주며 '역시 고현정은 고현정이구나'를 입증했다. 동시에 또다시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고현정은 넷플릭스 새 시리즈 '마스크걸'(극본·연출 김용훈)에서 3인 1역이라는 낯설지만 신선한 소재에 도전하며 성공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마스크걸'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이한별, 나나, 고현정 분)가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던 중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작품은 공개 후 3일 만에 280만 뷰를 기록하며 글로벌 톱10(비영어) 부문 2위에 올랐다. 이에 고현정은 "아직 잘 실감을 못 하겠다. 한 번에 공개되고 바로 반응을 확인하는 작품이 처음인지라 그냥 그렇구나 싶었다. 기쁘지 않은 건 아니다. 너무 좋은데 해외 반응에 대한 체감이 안 되는 것뿐"이라고 솔직한 소감을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마스크걸'은 3인 1역이라는 신선한 접근으로 공개 전부터 이목을 끌었다. 이한별, 나나, 고현정이 각 시기를 맡아 회사원이자 인터넷 방송 BJ 마스크걸, 정체를 숨긴 쇼걸, 죄수번호 1047로 이어지는 김모미의 인생사를 그렸다.
고현정 역시 3인 1역이라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단다. 그는 "대본을 처음 받자마자 좋았다. 사실 그동안 날 드러내는 활동을 한 게 없다 보니 내가 어떤 작품을 선호하는지 이야기할 창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었던 장르물이 들어와 반가웠다"며 "심지어 3인 1역이라는 기획 자체가 재밌었다. 한 인물을 서로 협력하고 의논해서 만들며 녹아들어야 하는 작품이 하고 싶었는데 내 바람과 딱 맞는 작품이었다"고 전했다.
촬영 현장 역시 마음이 편안하고 평화로웠단다. 이를 두고 '아름다웠던 현장'이라고 표현한 고현정은 "현장이 좋으면 결과물도 좋다고 하지 않나. 작품이 공개되기 전 촬영 현장만으로도 만족도가 높았는데 역시나 그 분위기가 결과물에 담긴 것 같다"며 흡족함을 드러냈다.
그동안 원톱 주연물을 주로 더 맡았던 고현정이기에 비교적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출연했다는 점은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에 고현정은 "오히려 분량이 적어서 좋았다"며 소탈한 웃음을 보였다.
"원작을 읽어 본 건 아니지만 시나리오만으로도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겠더라고요. 때문에 분량 등은 개의치 않았어요. 이 작품은 조금 나오고 많이 나오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했거든요. 세 배우가 모미라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게 중요했어요. 특히 제 나이와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도 운이 좋았죠."
이한별, 나나, 고현정은 각각 저마다의 표현 방식으로 김모미를 그려냈다. 세 사람은 함께 리딩을 한 적도 촬영이 겹치지도 않았다. 특히 고현정은 앞선 두 배우의 연기를 일부러 확인하지 않았단다. 공개에 맞춰 두 사람을 보게 된 고현정은 후배들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먼저 이한별에 관해 "데뷔 첫 작품이 아닌 것 같았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마치 모미를 분장한 것처럼 잘 소화해 줬다. 내공이 있는 배우"라고 소개했다. 이어 "나나는 항상 모미로 예열돼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집중도가 굉장히 높았다. 연기도 세련됐다. 심플하면서도 집중해서 표현할 건 표현하고 생략한 건 덜어낼 줄 아는 장인"이라고 치켜세웠다.
고현정의 김모미는 메마르고 버석한 느낌이 강렬했다. 많지 않은 대사량인데도 불구하고 분위기만으로 해당 느낌을 전달한 고현정이었다. 비결을 묻자 고현정은 "내 삶 자체가 버석버석하기 때문"이라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안겼다.
"전 다른 모미들과 달리 '10년 동안 갇혀 있었던 김모미'라는 점에 집중했어요. 재능이 굉장히 많은 친구였지만, 외모를 콤플렉스로 느껴 성형까지 하고 결국에는 교도소에 10년 동안 갇혀 있었잖아요. 그런 모미의 현재 상태는 어떨지를 계속해서 생각했죠. 때문에 제가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도 눈에 확 튀지 않게 있으려고 노력했어요."
'마스크걸'은 파격적인 소재도 소재지만, 안재홍 염혜란 등이 살벌한 연기를 보여주며 큰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을 향한 호평에 고현정은 "당연한 결과"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염혜란 배우는 같이 붙는 장면이 꽤 있다 보니 옆에서 보며 '이번에 대단하겠다' 싶었다. (염혜란에게) ''마스크걸'은 자기 아니냐'고 농담까지 할 정도였다. 그만큼 기대가 됐던 배우"라고 말했다.
고현정을 충격받게 만든 배우도 있었으니 바로 안재홍이었다. 고현정은 "안재홍은 보면서 정말 깜짝 놀랐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목숨을 거네?'라고 말할 정도였다"며 "너무 잘하더라. 특히 '아이시떼루'라고 외칠 때는 뒤로 넘어갈 뻔했다. 미친 것 같았다. 이건 누구를 연기한 게 아니라 그냥 안재홍이지 않을까 의심까지 됐다. 그럴 정도로 안재홍 배우가 해당 캐릭터를 제대로 잡아먹었다"고 극찬했다.
'마스크걸'을 통해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고현정이다. 오랜 연기 경력을 지니고서도 매번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신기하면서도 대단했다. 비결을 묻자 고현정은 "나 역시 매 작품 새로워야 한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별거 없다. 어떻게 하면 연기를 더 잘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풀어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더 잘하기 위해 헤어스타일도 다르게 해보고 기미를 그리는 듯 분장도 세게 해보는 것처럼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 바람이 있다면 저의 쓰임이 다양했으면 해요. 평소에도 계속해서 연기를 생각해요.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연기를 떠올리죠. 이제는 제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어요. 제가 선택했고 그래서 고맙고 소중한 연기와 앞으로도 함께 나아가보겠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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