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배우 구교환이 또 하나의 비밀일기를 완성했다. 후일에 꺼내 다시 마주할 때를 기약하며 이제는 암호를 걸어두려고 한다. "또 봐"라는 인사와 함께 일기장을 덮은 구교환이다.
'D.P.2'(각본 김보통, 연출 한준희)는 군무 이탈 체포조(D.P.) 요원 안준호(정해인 분)와 한호열(구교환 분)이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실과 부조리에 끊임없이 부딪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담은 시리즈다.
'D.P.' 시리즈는 당초 시즌2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작품은 아니었다. 지난 2021년 공개된 시즌1이 큰 인기를 얻으며 이에 힘입어 시즌2 제작이 확정됐고, 2년 만에 새로운 에피소드들로 돌아왔다.
시즌1 마지막 회인 6회는 조석봉(조현철 분)이 스스로 총구를 겨누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시즌2는 앞선 사건을 겪은 이들이 어떤 심리로 그 후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중 한호열은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채 등장해 시즌1과는 상반된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안겼다.
구교환은 '실어증'에 걸린 인물의 모습을 연구하기보다는 '말을 못 하게 된' 호열의 내면 상태에 집중했다. 그는 "신체적인 표현은 문장이나 단어가 입안에만 있다는 식으로만 표현했다. 움직임에 초점을 두고 연기하진 않았다. 오히려 집중했던 한호열이 '왜' 말을 못 하는지였다. 호열이가 김루리(문상훈 분)를 마주하기 전까지 대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 내겐 중요한 포인트였다"고 설명했다.
비극적인 상황을 겪고 또 다른 비극적인 사건으로 시작하게 된 시즌2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유지됐다. 이 과정에서 '준호열(안준호+한호열) 콤비'의 티키타카도, 호열의 분량도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케미'를 좋아했던 시청자들로서는 아쉬운 지점이었다. 이에 구교환은 자신 역시 사적으로는 아쉽지만, 작품으로서는 "당연한 변화"였다고 말했다.
"극 흐름상 일련의 사건을 겪은 준호와 호열의 변화는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어요. 또한 시즌2에는 새로운 인물이 많이 등장했잖아요. 시즌1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팀플레이였죠. 새 캐릭터들이 있는 만큼 그들의 이야기도 중심이 돼야 했기 때문에 분량에 대해서는 아쉽지 않아요. 원래도 분량을 보고 작품에 출연하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분량을 신경 썼다면 100부작이나 대하드라마에 출연해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달라진 한호열도 한호열이지만 시즌1과 시즌2를 준비할 때의 마음가짐도 달랐을 터다. 이미 한 번 만났던 한호열에게 다시 다가가기 위해 구교환은 어떻게 접근했을지 궁금했다. 그는 "시즌2의 목적은 '보통 청년 한호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구교환은 "시즌1 호열의 모습은 판타지스러운 면이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들로서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을 테다. 반면 시즌2에서는 그동안 참아왔던 호열의 감정이 터진 것 같다. 사실 호열은 위트 뒤에 숨어있던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동안 나름 엄청난 용기를 내고 있었던 것"이라며 "이것마저 무너져 내리고 그 과정을 통과하는 보통 청년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일까. 일각에서는 시즌1이 '안준호의 성장물'이라면, 시즌2는 '한호열의 성장기'라는 감상평도 존재했다. 그러나 구교환은 "'D.P.'는 모두 안준호의 성장담이 맞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한호열은 안준호가 만났던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다만 준호에게 영감을 준 인물일 뿐"이라며 "난 사실 호열의 전사나 전역 후 미래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이게 당연한 것 같다. 호열이는 여백이 있을 때 호열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자신만의 견해를 전했다.
"'D.P.'의 시작도 마지막도 준호의 얼굴이에요. 시즌1 오프닝과 시즌2 엔딩을 보면 준호의 얼굴이 변해 있어요. 준호의 그 표정을 만든 여러 요소 중 하나가 호열이란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때문에 전 이 작품은 준호가 마지막 미소를 짓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도 생각했어요. 한호열은 그 인물들 중 하나이고, 당연히 한호열의 시각은 안준호에게만 향해 있을 수밖에 없죠."
작품의 시간이 영원하지 않고, 군대 안에서의 시간도 끝이 있는 만큼 한호열 역시 제대를 하며 시즌2는 막을 내린다. 시즌3의 가능성은 아직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호열을 떠나보내야 하는 시청자들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특히 한호열이 안준호에게 "또 봐"라고 인사하는 장면은 뭉클함까지 안겼다.
구교환의 애드리브가 빛을 발한 장면이었다. 시즌1과 달리 시즌2에서는 애드리브 줄이고자 했던 구교환이지만, 이 장면에서만큼은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온 대사가 "또 봐"였다. 구교환은 "궁상맞아 보일 수도 있지만, 작품에 전하는 내 인사이기도 했다. 중요한 건 절대 웃기려고 한 대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말 또 못 볼 것 같아서 인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저는 이제 많이 늙었어요. 극 중에서 이미 전역을 하기도 했고요.(웃음) 이 캐릭터와 이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해요."
독립영화부터 상업영화, 시리즈물까지 다양한 작품에 도전하며 관객과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는 구교환이다. 그는 자신의 연기를 두고 '넷플리스적 허용'이라는 참신한 표현으로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구교환은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표현들이 내가 좋아하는 연기 방식이다. 어떤 장면은 현실과 비슷하게 연기하지만 어떤 장면은 내가 봐도 너무 멀리 가 있다. 이런 지점을 잘 섞어서 전달하는 게 목표다. 그리고 이를 확장해서 표현한 게 '넷플리스적 허용'"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와 드라마 등 콘텐츠들은 제 '비밀일기'라고 할 수 있죠. 암호처럼 그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거든요. 직업적으로 배우의 인물을 잘 표현하는 건 당연하고, 나중에 꺼내봤을 때 그때의 저를 다시 마주하게 돼요. 그래서 암호를 건, 누가 훔쳐봐도 안 들키는 '비밀일기'라고 생각해요. 'D.P.'도 마찬가지예요.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며 그 안에서 표현되는 제 모습을 음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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