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는 한없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임무와 역할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치켜세운다. 하다못해 작품의 공개 소감도 '내'가 아닌 제작진과 다른 배우들의 노고를 언급하며 만족감을 드러낸다. 배우 손석구에게 'D.P.'는 단순히 '작품'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을지도 모른다.
'D.P.2'는 군무 이탈 체포조(D.P.) 요원 안준호(정해인 분)와 한호열(구교환 분)이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실과 부조리에 끊임없이 부딪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담은 시리즈다. 손석구는 극 중 103사단 헌병대 대위 임지섭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시즌1 당시 신선한 소재와 묵직한 내용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D.P.'는 인기에 힘입어 시즌2 제작이 확정됐고, 2년 만에 더 깊어지고 확장된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중에서도 입지섭은 시즌1에 비해 많이 변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와 관련해 손석구는 "어떤 변화의 계기를 보여주는 것이 안준호와 한호열의 역할이라면, 그들을 따라가면서 사건의 진행에 따라 변화하는 결괏값을 보여주는 건 입지섭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애쓴 덕분에 임지섭 같은 애도 변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며 "장교가 모범을 보여야 병사가 변하는 게 아니라 반대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사회에 던지는 '건강한 모범'이라고 생각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고 전했다.
변화의 폭이 큰 만큼 그 인물을 보여주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손석구는 "임지섭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물이다. 12개의 에피소드, 그것도 다수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에서 한 인물을 다 보여주는 건 힘들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에 그는 "다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보여줘야 한다"며 "마음을 먹고도 내심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갈팡질팡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관객들이 봤을 때 '나 또한 저래'라고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배우는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렸다고. 맞는 말이에요. 작가님이 쓰고 연출팀이 준비를 다 해놓으면 제가 하는 건 발만 올릴 뿐이에요. 준비된 것들을 결괏값만 내는 거죠. 이미 만들어진 인물을 제 경험을 토대로 표현하는 것뿐이에요. 감독님과 작가님, 스태프들이 하는 거에 비하면 별로 힘든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임지섭의 분량도 늘어났다. 이를 두고 손석구의 앞선 작품 '나의 해방일지'가 큰 화제를 모으며 그에 따른 변화가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에 손석구는 "감독님 자체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임지섭의 변화가 크게 나타나다 보니까 분량이 늘어난 것처럼 보인 것 같다. 사실 배우의 인지도에 따라서 작품의 분량을 늘리는 것을 나쁘다고 보진 않지만, 그건 한준희 감독님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감독님은 본인 콘텐츠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배우의 인지도에 영향을 받아서 분량을 늘렸나 줄였다 하진 않는다"고 짚었다.
한준희 감독에 대한 손석구의 신뢰는 엄청났다. 그도 그럴 것이 2019년 영화 '뺑반'부터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이 쌓아온 유대관계가 굳건했기 때문이다. 손석구는 "감독님과 많이 했고, 워낙 잘 맞는다"며 "'뺑반' '차이나타운'에서도 그랬지만 감독님은 소시민들이 거대한 무언가에 대항하는 한결같은 주제의식이 있다. 이번 'D.P.'도 마찬가지다. 특히 감독님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D.P.2'에서 꽃을 피운 것 같다"고 바라봤다.
한준희 감독뿐만 아니었다. 'D.P.' 출연 배우들에 대한 애정도 가득했다. 실제로 손석구는 'D.P.2' 공개 소감을 묻는 답변에서도 감독과 스태프가 만들어 낸 완성작에 대한 경외심과 그 과정에서 고생한 이들의 노고에 초점을 맞췄다. 자신의 연기에 대한 평은 일절 없었을 정도다.
"뭔가 거창한 말 같지만, 보자마자 감독님에게 '위대한 일을 해낸 것 같다'고 말했어요. 6부작 드라마지만, 회차로는 한 시즌당 120회 가까이 촬영을 해요. 보통이라면 두 팀 정도는 나뉘어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D.P.'는 오롯이 한 명의 감독님으로만 12개의 에피소드를 완성했어요. 시즌2에서 심화되는 이야기를 한다는 선택도 좋았고, 완성도 면에서도 높아졌기 때문에 만족스러웠죠. 감독님과 작가님, 스태프들까지 고민과 고생이 많았다는 게 담겼더라고요. 배우들도 마찬가지예요. 그중에서도 해인이는 많은 액션신과 준호가 겪는 어두운 서사를 그리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죠. 현장에서도 침울한 상태에서 밥도 안 먹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울 때도 많았는데 그런 모습이 작품에 담긴 것 같아 제가 다 뿌듯하죠."
시즌2 출연에 앞서 부담감은 없었냐는 질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임지섭이라는 캐릭터의 영향도 있다 보니 다른 배우들에 비해 큰 어려움은 없었단다. 그는 "원래도 눈에 보이는 숙제를 푸는 데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나보다는 정해인이나 문상훈 등 다른 배우들이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스템의 피해자로 나오는 배우들을 보면 항상 그 감정 상태로 촬영장에 와요. 특히 문상훈 배우는 촬영장에서 계속 울었을 정도예요. 그리고 그를 본 김지현 배우도 모니터하면서 같이 울었죠. 전 곁에 있는 게 힘들어서 잠깐 화장실 갔다 와요.(웃음) 배나라 배우도 마찬가지죠. 다들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전 그런 건 아니었으니 어려웠다고 말하면 안 되죠."
손석구는 'D.P.'를 "의미가 많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연기자로서 새로운 시도도 했던 데다 이번 작품을 통해 좀 더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손석구다. 무엇보다 "좋은 동료들을 정말 많이 만나 힐링이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지금도 성균형, 교환형, 해인이까지 자주 연락한다. 열정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작품이라 자극을 받이 받았다"고 전했다.
성적 면에서도 "굉장히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특히 '나의 해방일지' 때와 달리 OTT는 한 번에 풀리기 때문에 대중의 다른 반응이라는 색다른 맛도 있었다. 손석구는 "OTT의 경우 정말 어떻게 될지 더 모르겠더라. 특히 우리 작품처럼 전 시즌이 있는 경우에는 초반 일주일과 그 후가 다르고 심지어는 1년이 지나서 재평가받는 등 평가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변한다"며 "그걸 보면서 많이 배울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 안에서 가장 흡족한 건 '시즌제'를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손석구는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생각하고 만들었지만, 어찌 됐든 텀을 두고 나뉘어 나온 시즌제가 됐다. 그런데 그 안에서 시즌1을 답습한 게 아니라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걸 시간이 갈수록 알아주는 것 같아 굉장히 기분이 좋다. 시즌2를 시즌2 그 자체로 봐주는 것 같아 감사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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