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역시는 역시였다. 이번에도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매 작품 연기 변주를 꾀하며 다채로운 장르와 캐릭터에 도전했던 배우 유해진이 이번에는 코믹 로맨스를 만나 '멜로 얼굴'을 장착하고 돌아왔다.
유해진은 영화 '달짝지근해: 7510(감독 이한, 이하 '달짝지근해')에서 삼시세끼 과자만 먹는 천재 제과 연구원 치호 역을 맡았다. 작품은 과자밖에 모르는 천재적인 제과 연구원 치호가 직진밖에 모르는 세상 긍정 마인드의 일영(김희선 분)을 만나면서 인생의 맛이 버라이어티하게 바뀌는 이야기를 그린다.
유해진은 개봉을 앞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그는 "전반적으로 영화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또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아요. 사실 이때가 제일 힘들거든요"라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달짝지근해'는 유해진의 데뷔 첫 코믹 로맨스로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럭키'(2016)로 한 차례 로맨스 연기를 선보였다고 운을 뗀 그는 "첫 코믹 로맨스로 홍보하고 있는데, 양심에 찔려요(웃음). '럭키'는 코믹함이 없어서 코믹 로맨스에 처음으로 도전했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닌데, 또 로맨스 자체가 처음은 아니거든요"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해진은 코믹 로맨스라는 장르가 아닌, 작품의 이야기에 더 끌려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전 정말 이야기만 봐요. 코믹 로맨스여서 한 건 아니에요. 이야기가 좋다면 그게 사랑이든 뭐든 하죠"라고 강조했다.
극 중 치호는 정해진 일과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 MBTI 극 J(계획형)인 인물이다. 제과 연구원인 그는 과자 개발을 이유로 과자만 먹다가 영양실조에 걸리는가 하면, 도박판을 전전하는 형 석호(차인표 분)의 빚까지 대신 갚아준다. 그러다가 어떤 일을 겪어도 긍정적으로만 반응하는 일영과 만난 후 인생의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된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사랑에 설레고, 이별에 아파하면서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풋풋한 첫사랑을 떠올리게 만든다.
'올빼미'(2022)에서 인조 역을 맡아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한 유해진은 이번 작품에서 순수한 캐릭터로 변신했다. 그는 실제로 치호와 비슷한 이한 감독을 보면서 힌트를 얻었고, 잊고 살았던 순수한 시절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고. 이에 힘입어 더욱 감정을 몰입할 수 있었다는 유해진은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치호가 처음 느낀 사랑이 얼마나 크겠어요. 헤어지는 장면에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보는 감독님도, 희선 씨도 울었죠. 촬영하면서 순수한 사랑을 정말 많이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달짝지근해'는 성인판 '소나기' 같아요. 때 묻지 않은 두 사람의 사랑이 잘 그려지길 바랐죠. 치호와 일영은 저마다의 상처가 있지만, 순수한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둘의 사랑만으로 작품을 끌고 가기에는 부담이 있었어요. 그러면 정통 멜로가 되거든요. 다른 작품보다 웃음이 더 필요했어요."
유해진은 이번 작품으로 처음 연기 호흡을 맞춘 김희선과 완벽한 '케미'를 발산했다. 코믹 로맨스인 만큼, 상대 배우와 호흡이 가장 중요했던 그는 이날 김희선을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태프들이 김희선의 출근만을 기다렸을 정도라고 설명해 현장의 대략적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다들 미어캣처럼 희선 씨를 기다렸어요(웃음). 저에게도 영향을 줬고, 영화를 본 사람들도 이런 분위기가 다 느껴졌다고 하더라고요. 영화를 찍는 내내 너무 행복했어요. 그동안 많은 작품을 했는데, 행복감으로만 따지면 최고였죠. 희선 씨부터 차인표 선배, 진선규, 한선화까지 정말 호흡이 잘 맞았어요. 영화 시장이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손익분기점만 넘겼으면 좋겠고, 더 보시면 제일 행복한 작업으로 마무리가 될 것 같아요."
배우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감을 안겨 준 '달짝지근해'다. 하지만 흥행 여부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는 이날 긴장감이 가득한 얼굴로 기자들에게 솔직한 후기를 물어보기도 했다. '귀엽다' '풋풋하다' 등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루자, 유해진은 VIP 시사회를 마치고 뒤풀이에서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윤제균 감독님에게 받은 문자를 읽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윤 감독은 유해진에게 '이한 감독님의 최고의 작품인 것 같다. 완성도 면에서 최고다. 유해진 배우의 연기가 좋았다. 다음에는 정통 멜로를 해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고. 하지만 이런 좋은 반응을 반만 믿는다는 유해진이다. 기대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그 상처는 오롯이 자신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이날 유해진은 기자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달짝지근해'가 '중년 로맨스'라는 틀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그는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는 맞아요. 하지만 MZ세대가 중년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아예 접근하지 않을까 봐 걱정돼요. 새콤한 사랑 영화가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올해 '범죄도시3'(감독 이상용)을 제외하고 흥행한 작품을 찾기 어려웠던 한국 극장가였다. 이른바 '빅4'로 불리는 여름 대작들이 연이어 출격한 가운데, '밀수'(감독 류승완),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만 흥행을 거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게 된 유해진은 "대작들이 더 흥행했어야 저희 같이 예산이 적은 영화도 살아남을 수 있어요"라고 강조하며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달짝지근해'가 제 영화기 때문에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맞아요. 하지만 하나 정도는 훨씬 더 잘됐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달짝지근해'가 2등이나 3등 정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죠. 왜냐하면 큰 영화만 잘되면 우리 같은 예산의 영화에 투자가 잘 안 돼요. 중요한 부분이죠. 큰 것은 큰 것대로, 소소한 이야기는 소소한 재밌는 이야기가 또 만들어지거든요. 사실 대작 안 보고 싶은 관객들도 많아요. 정말 편하게 볼 수 있고, 보고 나서 생맥주 한 잔이 생각 나는 작품이에요. 허리급 영화가 정말 hurry(허리)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