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강일홍 기자] 조경수는 '아니야' '아쉬움' '돌려줄 수 없나요' '행복이란' '머물고 싶지만'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낸 뮤지션이다. KBS-TBC의 가수왕을 차지하며 80년대 초반까지 화려한 전성기를 열었다. 훗날 배우 조승우 아버지로도 더 많이 알려지게 됐다.
75년 서울 명동의 쎄시봉에서 '정성조와 메신저스'의 멤버로 음악활동을 시작해 가수 장욱조의 도움을 받아 솔로가수 데뷔했다. 79년에 발표한 디스코 풍의 번안곡 '징기스칸' 'Y.M.C.A'가 연달아 히트하면서 가수로 존재감을 알렸다.
그의 인지도는 앞서 발표한 '행복이란'이 히트하면서 더욱 확고해진다. 특히 가사에 담긴 '당신없는 행복이란 없다, 이 생명 다바쳐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이 대중적 공감대를 얻었다. 번안곡이 아닌 그의 첫 히트곡이자 인생곡이 됐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잖아요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이 생명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하리 이 목숨 다 바쳐서 영원히 사랑하리/ 이별만은 말아줘요 내 곁에 있어줘요/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조경수 '행복이란' 가사)
이 곡은 78년 발표된 조경수의 다섯번째 독집 타이틀곡이다. 그는 시중에 구전가요로 떠돌던 이 곡을 채집해 작자 미상으로 발표하려다 음반사의 권유로 딸 이름을 작사 작곡자로 등록했다. 이후 노래가 대중에 알려진 뒤에야 원곡자가 밝혀진다.
이 노래는 이미 71년 MBC 전 모 PD가 악보에 옮기고 가수 조미미의 가창으로 '토요일 토요일밤에'에서 소개된 적이 있다. 조경수가 발표해 인기를 얻자 이준례 씨가 자신의 곡이라며 직접 작곡한 친필 악보를 제시해 저작권을 둘러싼 다툼이 생기기도 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인기가수로 한창 승승장구하던 중 불행의 암초에 걸린다. 사업을 하는 선배의 보증을 선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80년대 초 도피하다시피 미국으로 떠난다. 당시 딸 조서연은 여섯 살이었고 아들 조승우는 세 살이었다.
훗날 미국에서 돌아온 뒤 뮤지컬 배우로 성장한 두 자녀로부터 냉대를 받은 건 이 때문이었다. 금전문제에 얽혀 어쩔수 없이 어린 자녀들을 두고 떠나는 아버지의 마음도 아팠겠지만, 가장을 잃은 가족들 역시 버림받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조경수의 미국생활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현지에서 음반제작, 보험회사 대리점, 일식집 주방장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90년대 중반 귀국한 뒤 서울 강남에서 라이브 카페 '랑데뷰'를 운영했고, 대장암 수술(3기)을 받기도 했다.
조경수는 48년 경기도 양주 출생으로 66년에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활동했다. 76년 솔로 정규 1집 '아니야'를 발표했고, 78년에는 '행복이란'과 '돌려줄 수 없나요'가 연이어 크게 히트하면서 가요계 '꽃미남 인기가수'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