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강일홍 기자] 혼혈가수 인순이가 가수로 인연을 맺은 것은 김완선의 이모이자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한백희의 눈에 들면서다. 어려서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터라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한 채 생계 활동을 시작해야 했던 그에게는 한줄기 빛이었다.
인순이는 2000년대 초반 조PD의 '친구여'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면서 전기를 맞는다. 유일하게 차트제를 운영한 '음악캠프'에서 3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뒤 마치 그의 노래로 착각할만큼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기성 세대들에게도 큰 인상을 남긴다.
대중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가수로서 존재감을 한층 업그레드시킨 계기는 2005년 리메이크곡 '거위의 꿈'이 폭발하면서다. 그는 이 곡을 불러 리메이크곡을 연달아 활동곡으로 히트시켰다. 덕분에 그의 인생곡으로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 날을 위해/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인순이 '거위의 꿈' 가사 일부)
원래 이 곡은 카니발(이적 김동률)의 프로젝트 명으로 97년 발표된 노래다. 인순이가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다시 불러 뜨거운 대중적 공감을 일으켰다. 비슷한 시기에 선보인 KTF(현 KT) 이미지 광고(인순이 버전)로 더 유명해졌다.
가사는 '지치고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리라'고 다짐하는 내용이다. 가사의 본래 의미와 다르게 마치 혼혈아로 태어난 뒤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인기 정상가수로 우뚝 선 인순이의 인생역정을 상징하는 노래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인순이는 자타가 공인할 만큼 성량이 깊은 가수로 평가를 받는다. '거위의 꿈' 등 그가 부른 거의 모든 노래에서 드러나지만 인순이의 발성은 음역대가 넓다. 단순히 폭이 넓은 정도가 아니라 저음, 고음 모두 꽉 차있고 매우 안정적이다.
가요계에서 차지하는 무게감이나 위상도 크다. 리메이크곡 '거위의 꿈'이나 그가 피처링을 맡은 조PD의 '친구여' 등은 인순이의 상징이라할만한 곡으로 각인돼 있다. '밤이면 밤마다' 세대뿐만 아니라 10대와 20대들도 좋아하는 비결이다.
인순이는 78년 3인조 희자매로 데뷔했다. 이른바 원조 걸그룹 출신으로 '바니걸스', '숙자매'와 함께 걸그룹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희자매 첫 앨범 타이틀곡 '실버들'로 가요차트 7주간 1위를 지킨 바 있다.
인기 바람몰이에도 불구하고 당시 소속사의 부실한 관리 등으로 멤버들간 유대가 깨지면서 희자매는 불과 3년만에 해체된다. 다른 멤버들이 탈퇴한 뒤에도 인순이는 한백희를 따라 솔로 가수로 변신한 지 2년만인 83년 '밤이면 밤마다'로 주목을 받았다.
90년대 초 KBS '열린음악회'에 자주 출연하며 댄스, 트로트, 재즈, 민요까지 다양한 장르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박진영과 작업한 '또(1996)'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3년 재즈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