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하이브는 전 세계 최대 연예기획사지만 10년 전만 해도 소형 기획사였다. 2013년 6월 13일 데뷔한 방탄소년단(BTS)을 두고 '흙수저돌'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렇게 5년이 흐른 2018년 '21세기 비틀즈'로 위상이 달라졌다. 비틀즈의 고향 영국의 최대 공영 방송 BBC의 평가라 더 묵직했다. 이후 5년은 전 세계 음악 시장을 폭격했고 K팝의 역사를 썼고 글로벌 K팝을 이끌었다. 챕터2를 시작하며 데뷔 10주년을 맞은 방탄소년단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건 그래서 유의미한 일이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정병근 기자] 평범한 단어도 소통하는 이들이 의미를 부여하면 그순간부터 특별한 단어가 된다. 방탄소년단(BTS)과 아미(ARMY. 팬덤명)에게 무지개의 마지막 빛깔 보라가 그렇다. '보라해(BORAHAE)', 'I purple you(아이 퍼플 유)'는 방탄소년과 아미의 언어고 보라색은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색이다.
방탄소년단은 놀라운 성과들로 K팝 역사를 새로 쓰고, 꿈과 희망 그리고 사회 통합의 메시지를 전하며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가장 놀라운 지점은 또 있는데 바로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끈끈한 유대감과 결속력이다. 이를 상징하는 게 바로 '보라'다.
방탄소년단 데뷔 10주년을 맞아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에서 'BTS 10th Anniversary FESTA(애니버서리 페스타) @여의도(Yeouido)'가 열렸다. 이 일대는 각종 안내판부터 전시와 체험 부스 그리고 라이브스크린과 아미라운지 등 모든 곳이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불꽃놀이로 하늘까지 보랏빛이었다.
보랏빛 페스타를 더 의미 있게 채운 건 팬들이다. 수많은 팬들이 아미봉은 물론이고 티셔츠, 바지, 치마, 원피스, 모자, 손수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보라색 아이템을 착용하거나 들고 현장을 찾았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십여 명에게 '페스타를 위해 특별히 보라색 아이템을 선택했냐'고 물었는데 모두 "당연하다"고 입을 모았다.
오사카에서 왔다는 30대 중반의 일본인 히로에 씨는 연한 보랏빛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는 "휴가 겸 해서 서울에 왔다. 휴가 장소를 서울로 정한 건 전적으로 방탄소년단 페스타에 오기 위해서"라며 "이 치마도 페스타에 올 때 입으려고 특별히 샀다. 보라색은 특별한 의미고 이것만으로도 BTS와 좀 더 가깝게 연결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과 아미에게 보라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건 누군가의 의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고 그 역사도 꽤 길어 더 가치가 있다.
때는 2016년 팬클럽 3기 팬미팅. 팬들은 응원봉에 보라색 봉투를 씌워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이를 본 뷔가 "빨주노초파남보에서 보라색이 마지막 색깔이다. 보라색은 서로를 믿고 오랫동안 사랑하자는 의미다. 제가 방금 지었다"며 "보라해"라고 말했다. 보라가 방탄소년단과 아미를 더 끈끈하게 연결해주는 단어가 된 순간이다.
이후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 어디에서 공연을 하건 보랏빛으로 물들었고 방탄소년단 관련 이벤트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보라색으로 채워졌다. 특히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콘서트 당시엔 도시 전체가 보랏빛의 '보라해가스(BORAHAEGAS)', '보라해' 전광판으로 채워졌고 팬들은 '보라해'라고 적힌 카드를 들고 축제를 즐겼다.
여의도에서 열린 10주년 페스타에 앞서 전야제 격으로 잠실 롯데월드타워, 남산 서울타워, 동대문 디지털 플라자, 반포대교, 월드컵대교, 서울시청, 세빛섬 등 서울 곳곳에서 진행된 보랏빛 조명들도 누군가에겐 그저 예쁜 조명 쇼에 그쳤겠지만, 방탄소년단과 아미에게는 긴 말 없이도 가장 특별한 시그널일 수 있었던 이유다.
'보라해'는 '사랑한다'는 의미에 가깝지만 그 안에 신뢰와 믿음의 의미까지 포함된다. 그렇게 방탄소년단과 연결된 아미는 성숙한 팬문화를 이끌고 있다. 일례로 진과 제이홉이 훈련소 입소를 앞두고 현장 상황이 혼잡해질 것을 우려해 팬들에게 오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는데 아미는 이 약속을 지켜 당시 현장엔 경찰과 취재진이 대부분이었다.
10주년 페스타가 열린 여의도 일대에서도 아미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여러 부스마다 수백 명이 대기하는 건 기본이었는데 팬들은 흐트러짐 없이 줄을 서서 질서를 지키고 스태프들의 안내에 따랐다. 특히 이날 행사가 끝난 뒤 현장은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했다.
페스타는 'BTS 히스토리 월', '달려라 방탄 무대 의상 전시', '10주년 FESTA 기념 조형물', 포토존으로 완성된 '방탄 가족사진전', 인터랙티브 이벤트 '브링 더 송 : 나만의 BTS 플레이리스트', '타투 스티커 체험 부스', 대형 스크린으로 함께 관람하는 'BTS 라이브 스크린', '댄스 챌린지' 등 여러 부스가 마련됐다.
현장에 많은 인력이 배치됐다고 해도, 약 40만 명의 팬들이 찾은 것으로 잠정 집계된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 질서 있고 깔끔한 축제는 놀라운 일이다. '아미의 품격'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지난 10년간 쌓아 올린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관계는 더 끈끈하게 맺어졌다. 멤버 RM(알엠)은 17일 오후 5시부터 아미라운지에서 '오후 5시, 김남준입니다'를 진행하면서 아미들의 여러 사연을 소개했는데, 이들은 단순히 아티스트와 팬을 넘어 동반자라는 것을 더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사회 생활을 하며 힘들었던 시기에 방탄소년단의 앨범 '화양연화' 시리즈를 듣고 내면의 아픔을 달래고 또 거짓 웃음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자신을 찾았다는 팬, 학생 때부터 방탄소년단을 좋아했고 이젠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는 팬 등이 방탄소년단의 10주년을 함께 했고 감동을 줬다.
RM은 "시간은 참 빠르고 모든 건 변하고 저도 많이 변했다. 10주년으로 여러분을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15주년 20주년에 무슨 감정으로 어떤 일을 할지 장담은 못해도 늘 여러분 사랑하고 생각하고 있을 건 변함 없을 거다. 모든 아미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자. 세상 속에서 우리 존재 화이팅"이라고 외쳤다.
방탄소년단 10주년 페스타는 오후 8시 30분부터 30분간 펼쳐진 'BTS 10주년 기념 불꽃쇼'에서 숫자 '10' 형상의 불꽃이 터질 때 정점을 이뤘다. 멤버 정국은 녹음된 내레이션으로 "까만 밤을 아름답게 빛내는 불꽃처럼 아무것도 없었던 저희를 빛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팬들에게 인사했다.
주최 측 집계에 따르면 이날 여의도 한강공원엔 약 35만 명, 주변엔 5만여 명이 운집해 총 40만 명이 일대를 방문했다. 그중 외국인 수는 무려 12만 명에 달한다. 그렇게 여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아미와 방탄소년단의 마음도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더불어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챕터2가 더 찬란해진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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