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한림 기자] 배우 라미란이 이 정도까지 시청자의 마음을 울린 역할이 있었을까. 그간 여러 작품에서 엄마 역할을 소화했지만 드라마 '나쁜엄마'의 진영순은 자식을 향한 모성애가 지나칠 정도로 강한 역할이었다. 그리고 아들을 위해 나쁜엄마가 될 수밖에 없던 모습과 세상 온갖 박복함을 떠안는 짠한 연기로 시청자의 '눈물 버튼'을 자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미란은 JTBC 수목드라마 '나쁜엄마'(극본 배세영, 연출 심나연)를 통해 연기적 호평뿐만 아니라 JTBC 역대 수목극 중 최초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돌파하면서 성적까지 증명해 냈다. 베테랑 배우지만 미니시리즈 연속극에서 타이틀롤을 처음 맡아 훌륭한 성적표를 받아 낸 라미란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엿들었다.
8일 서울 강남구 소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라미란은 머리에 은빛 브릿지를 넣은 파격적인 헤어스타일로 취재진을 반겼다. '응답하라 1988'(2015) 이후 드라마 인터뷰가 8년 만이라는 그는 대중이 기억하는 코믹한 감초 연기의 대가처럼 유쾌하고 재치 있게 답변을 이어갔다.
"역시 14부는 조금 짧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마무리를 급하게 하는 건 싫다고 했는데 그래도 잘 마무리된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죠. 예전에 공연할 때처럼, '응답하라 1988' 때처럼 많은 분이 알아봐 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라미란은 연극계에서 활동하다가 서른 살에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통해 미디어 연기자로 데뷔했다. 데뷔만 따지면 남들보다 늦었지만, 내년이면 어느덧 데뷔 20년 차를 맞는다. 영화 '정직한 후보'(2020)를 통해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는 등 영화계에서는 알아주는 연기파 배우이기도 하다.
그러나 TV 드라마 연속극 주연은 이번 '나쁜엄마'가 처음. 아무래도 처음이다 보니 타이틀롤을 맡은 부담감은 물론, 작품이 잘돼서 뿌듯함도 공존할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라미란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작품이 좋았던 게 주인공 혼자서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모든 분 함께 가는 드라마였기 때문이에요. 사실 부담이나 이런 것들을 느낄 필요가 없었죠. 아들 강호(이도현 분) 말고는 대부분 한 번쯤은 작품을 같이 해봤던 분들이었거든요. 편하고 좋았어요. 내가 오롯이 끌고 간다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뿌듯함이요?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웃음) 사실 그런 생각들은 몇 작품 전부터 안 가지고 있어요. 모든 작품이 다 잘되진 않잖아요. 대본이 잘 쓰여 있으면 제가 막 뭘 하지 않아도 감정 같은 게 잘 생겨나는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딱히 그런 생각은 안 드네요."
라미란은 '나쁜엄마'에서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엄마 진영순으로 분해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역할을 돋보이게 만든 것은 본인의 열연도 있겠으나, 아들 강호로 분한 배우 이도현의 몫도 컸다. 엄마는 아들을 향한 칭찬을 이어갔다.
"강호 역이 정말 어려운 역할이었어요. 완벽한 타이틀롤도 아니고 배우 캐스팅하는 것도 힘들었다고 들었어요. 저는 사실 도현이의 전작들을 거의 다 봤거든요. 연기 폭이 되게 넓다고 생각했고 잘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죠. 실제로 촬영을 해보니까 훨씬 좋았고 연기를 하는 거 보니 '잘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중간에 '더 글로리'가 대박이 나면서 난리가 나지 않았나요. 작품이 잘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나이를 떠나서 그런 감정들을 주고받는 배우들이 많진 않아요. 저희는 주고받고를 다 했죠. 연기하는 입장에서 너무 신나는 일이에요. 그런 면에서 되게 좋았어요. 도현이가 살가운 편은 아니에요. 그냥 조금 낯을 가리고 선배들한테 깍듯한 스타일? 그런데 제가 가만히 안 놓아두니깐 금방 깨졌죠. (웃음)"
그런가 하면 라미란은 영순을 연기하면서 역대 이렇게까지 눈물을 많이 흘려본 역할이 있나 싶을 정도로 많은 눈물 장면을 선보였다. 시청자들은 라미란이 만들어 낸 눈물 연기에 크게 공감했고, 애절한 모성애가 마음을 울려 시청률을 수직 상승시키는 비결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라미란은 "(눈물 장면은)그게 오히려 줄인 거다"고 의외의 답을 내놨다.
"맞아요. 눈물을 이렇게 많이 흘린 배역은 그간 없었죠. 그런데 오히려 눈물 빈도를 줄인 거예요. 시청자분들도 보다가 지칠 것 같고, 저도 지칠 것 같아서 오히려 많이 닫아놓고 했어요. 워낙 잘 쓰인 대본이었고, 대본에 연기를 얹다 보면 그 신들이 눈물 연기라는 생각이 들진 않아요. 생각하지도 않은 곳에서 눈물이 나거나 그런 게 더욱 많았거든요. 그래서 신을 더욱 슬림하게 하는 쪽으로 힘을 더 쓴 것 같아요."
끝으로 라미란은 '나쁜엄마' 결말을 만족해하며 진영순의 행복을 바랐다. 실제로 배세영 작가에게 "저 혹시라도 가게 되면 곱게 보내달라"고도 했다는 그다. 라미란이 인생 캐릭터가 된 영순에게 해주고 싶은 것을 묻는 말에는 "돼지 엉덩이에 도장 찍어 주듯이 '참 잘했어요'라고 해주고 싶네요"라며 웃었다.
"너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해서 좋아요. 잘 짜였다고 해야 하나. 영순이 그런 박복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죠. 영순의 상황이 버겁긴 하잖아요. 그래서 작가님께 부탁을 드리기도 했어요. "저 혹시라도 가게 되면 곱게 보내달라"고. 힘들게 살아왔던 영순이 마지막까지 너무 아프거나 괴롭게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행복하게 가는 모습을 저도 보여주고 싶었죠."
"'나쁜엄마'는 복수가 주된 의미가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과정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오는 감정들이 중요한 거죠. 보시는 분들이 흔히 바라는 복수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겠죠.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복수를 하긴 하잖아요? (웃음) 좋았던 시간이에요. 배우라는 직업이 참 재미있어요. 작품은 뭐가 터질지 알 수 없으니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배우만큼 재미있는 직업이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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