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강일홍 기자] 싱어송라이터 이혜민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뮤지션이다. 강은철이 불러 히트한 '삼포가는 길'은 그가 고교시절에 작사 작곡한 노래다. 김흥국의 '호랑나비' '59년 왕십리', 김재희의 '애증의 강', 이예린의 '포플러 나무 아래' 등 숱한 히트곡의 작곡자이기도 하다.
1983년 '은지' '비와 찻잔 사이' 등의 곡을 발표하면서 양현경과 배따라기로 정규 1집을 냈다. 객원싱어로 참여한 양현경과 활동하며 '내 마음은 외로운 풍차' '그대 작은 화분에 비가 내리네' 등 감성 충만한 곡들을 다수 선보인다.
양현경과 함께한 혼성듀엣 배따라기는 당시 남성 2인조 해바라기와 함께 감미로온 멜로디와 가사, 서정적 노래로 가요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았다. 특히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와 그의 자전적 노래로 알려진 아빠와 크레파스' 등 배따라기의 주요 히트곡 대부분은 이혜민이 작사 작곡했다.
배따라기는 81년 '연포가요제'에서 이혜민 노근식이 듀엣을 이뤄 '첫사랑은 다 그래요'라는 곡으로 우수상을 차지하며 데뷔했다. 여타 그룹처럼 둘이 번갈아 부르는 형식이 아니고, 이혜민이 주로 가창을 했다. 양현경이 참여하면서부터 여성 보컬 색깔이 곡들이 차츰 짙어진다.
이후 듀엣활동을 하며 히트곡이 주로 양산됐지만, 이혜민에게는 역시 배따라기 1집 수록곡 '비와 찻잔 사이'를 빼놓을 수 없다. 데뷔 초창기 가수로서 작곡자로서 그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준 노래이기 때문이다.
'지금 창밖엔 비가 내리죠 그대와 난 또 이렇게 둘이고요/ 비와 찻잔을 사이에 두고 할 말을 잃어묵묵히 앉았네요/ 지금 창밖엔 낙엽이 져요 그대 모습은 낙엽 속에 잠들고/ 비와 찻잔을 사이에 두고 할 말을 잃어 묵묵히 앉았네요/ 그대 모습은 낙엽 속에 있고 내 모습은 찻잔 속에 잠겼네/ 그대 모습 낙엽속에 낙엽속에 낙엽속에 잠겼어요'(이혜민 '비와 찻잔 사이' 가사 1절)
가사에서부터 와닿는 느낌은 애틋한 사랑과 추억과 그리움이다. 비의 정서는 봄비든 여름비든 가을비, 겨울비든 계절과도 무관하다. 비와 찻잔, 비가 내리면 왠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커피 한잔이 생각나는 센치함에 물든다.
이혜민은 88년 배따라기 7집 '희에게' '그때의 이야기 처럼' 등을 발표하기까지 양현경과 듀엣으로 활동하다 결별했다. 90년 지구레코드에서 배따라기 Best 음반에 보사노바 풍의 쎄미 퓨전 재즈 풍의 '추억속의 해변' '믿어 주오'를 객원 가수 없이 원맨 밴드로 내 호평을 받았다.
이후에도 끝없이 주옥같은 노래들을 발표했다. 2011년 도레미 미디어에서 '내 사랑 이해해요'와 '벚꽃 날리면'을 '배따라기 약속'이란 이름으로 출반했고, 2019년 9월엔 고양 아람누리 극장에서 자신의 자전적 노래 '아빠와 크레파스'를 가족 뮤지컬로 초연했다.
59년 동갑내기인 가수 김흥국과도 각별한 사이로 지냈다. '호랑나비'는 이혜민의 곡이다. 이동기 김홍경 등이 먼저 불렀지만 히트하지 못했다. 당초엔 코믹한 노래가 아니었지만 김흥국이 콧수염을 기르고 '앗싸' 추임새를 넣어 변화를 시도한 게 주효했다.
둘의 기묘한 인연은 또 있다. 이혜민은 김남화에게 '왕십리'라는 곡을 줬는데 반응을 얻지 못했다. 노래는 김흥국에게 넘어갔다. 공교롭게 김흥국과 이혜민 모두 어린 시절을 왕십리에서 보냈고 나이도 1959년생 동갑이다. 91년 히트곡 '59년 왕십리'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