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정병근 기자] 볼빨간사춘기가 다소 어두웠던 길을 지나 다시 발랄한 볼빨간사춘기로 완전히 돌아왔다.
2016년 발표한 '우주를 줄게'를 기점으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볼빨간사춘기는 2020년 우지윤의 탈퇴와 함께 안지영 1인 체제로 바뀐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상의 문제로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2021년 10월 발표한 싱글 'Butterfly Effect(버터플라이 이펙트)'와 2022년 4월 발매한 앨범 'Seoul(서울)'은 이전과는 달리 다소 어둡고 차분했다.
'Butterfly Effect'를 발매하기 전 안지영은 자신의 SNS에 "부끄럽고 민망하긴 하지만 한동안은 잘 지내진 못했다. 많이 지쳐있기도 했고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다", "지금까지 병원 꾸준히 다니고 약도 꼬박꼬박 먹으면서 여러분들 곁에 다가가려고 애를 쓰고 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도와준 덕분에 다시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고 적었다.
당시 "캄캄한 어둠 속"이라고 표현했던 마음은 'Butterfly Effect'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후 'Seoul' 앨범은 밝은 곡들이 전반부를 장식하지만 마지막 두 개의 트랙 'In the mirror(인 더 미러)'와 '별'은 '거울 속에 혼자 있는 나를 봐', '방 문을 잠궈 주저앉아 두 눈을 가려' 등의 가사처럼 여전히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냈다.
그리고 딱 1년이 더 지난 4월 16일 발매한 새 앨범 '사랑.zip'. 볼빨간사춘기는 마침내 터널을 온전히 빠져나온 모습이다. 그는 작년 하반기 활동을 끝내고 맞이한 휴식 동안에 자신이 겪은 감정들, 즉 편안한 일상에서 찾은 안정, 지인과의 만남, TV와 책, 단독 콘서트에서 느낀 전율과 같은 일상과 보고 들은 것들의 감상을 앨범에 담았다.
신인 때부터 볼빨간사춘기는 줄곧 사랑을 노래했다. 풋풋한 사랑의 설렘 내지는 서툰 관계로 쩔쩔매는 여러 단상들을 아기자기한 음률들에 얹어내곤 했다. 볼빨간사춘기 음악에서 사랑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이자, 안지영에 의하면 "위로이자 공감"이다.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을 따라가다보니 사랑으로 더 큰 사랑을 낳은 볼빨간사춘기표 음악. 때문에 안지영은 "볼빨간사춘기는 사랑을 더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한다. 그래서 볼빨간사춘기의 '사랑.zip'은 단순히 '사랑의 집약'으로 보기보다는 '볼빨간사춘기의 집약'으로 볼 수 있다.
'사랑.zip'에는 총 다섯 트랙이 담겼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중 'Chase Love Hard(체이스 러브 하드)' 'FRIEND THE END(프렌드 디 엔드)' '사랑이 이별이 돼 가는 모습이'까지 무려 3곡이 타이틀곡이라는 점이다.
같은 주제를 놓고 다른 감성을 파고든 세 타이틀곡은 사랑이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지, 또 사랑 앞에 볼빨간사춘기가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봄의 간질거림과 가을의 쓸쓸함, 겨울의 시림까지. 앨범명을 다시 붙여주자면 '사랑의 사계'라 써도 좋을 듯하다.
앨범의 첫 곡은 사랑에 깊이 발을 담그는 'Chase Love Hard'다. 청량한 느낌의 신스 사운드와 그루브 감이 가득한 베이스 기타 라인이 '이 밤을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 네 맘에 안착'과 같은 재치있는 가사와 만나고, 황민현의 담백한 목소리까지 곁들여져 산뜻하면서도 달콤하다.
뒤따르는 2번 트랙 'FRIEND THE END'는 친구로라도 옆에 있고 싶던 그 간절함이 결실이 되는 만개의 순간을 담는다. 팝 느낌의 도입부와 록 느낌의 후렴구 구성으로 볼빨간사춘기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뮤트 기타 리프와 디스토션 기타 라인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고조되는 사운드가 경쾌한 감상을 안긴다.
4번 트랙 '사랑이 이별이 돼 가는 모습이'는 제목처럼 이별의 절절함을 녹여냈다. 무반주 보컬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먹먹하게 이별의 아픔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어쿠스틱 기타가 사운드를 끌고가며 애절함 속에 리듬감을 얹어낸다. 안지영의 허스키한 보이스 컬러는 좋은 조미료가 되어 소리의 깊이를 더한다.
무형한 사랑은 볼빨간사춘기의 음률 속에서 흐릿함을 걷어낸다. 안지영이 "사랑이라는 주제로 여러분들의 옅어지고 희미해진 부분을 꼼꼼히 채워드리겠다"고 약속했던 다짐처럼, 곧 서른을 앞둔 안지영의 사랑을 향한 분주한 담금질은 또 한발 완전함에 다가섰다. 순수하고 솔직한 볼빨간사춘기 본연의 모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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