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정병근 기자] 가수 현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가운데, 사흘 만에 마련된 빈소는 애도와 추모가 가득하다.
서울 중앙대학교 장례식장 특실 1호에 현미의 빈소가 마련돼 7일 오전 10시부터 조문이 시작됐다. 빈소에는 근조화환이 빼곡히 들어찼고, 윤석열 대통령이 애도의 마음을 담아 보낸 조화가 현미의 영정사진 옆에 놓였다. 가수 현숙 정훈희 하춘화 설운도 쟈니 리 등 동료 가수들이 빈소를 찾아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현미는 지난 4일 숨을 거뒀지만, 미국에서 체류 중이던 현미의 두 아들의 귀국 일정으로 인해 별세 3일 만인 이날 빈소가 마련됐다. 장례위원장은 대한가수협회 감사 서수남이, 장례위원은 협회 임원 이사진이 맡았다. 조카 한상진은 빈소에서 고인의 아들을 끌어안고 슬픔을 참지 못해 오열했다.
현숙 정훈희 하춘화가 오전부터 빈소를 찾았고 한참 동안 현미의 옆을 지켰다. 오후엔 설운도를 비롯해 장미화, 고인과 절친한 사이로 잘 알려진 쟈니 리 등이 빈소에 들어섰다. 하춘화는 취재진 앞에서 현미와의 인연을 돌이키며 울컥하기도 했다.
하춘화는 "제가 여섯살 때 가수로 데뷔했을 때 같이 한 무대에 섰고, 이미자 선배님이나 현미 선배님, 패티킴 선배님 이런 분들은 제가 다 엄마, 아줌마라고 부르던 대선배님이셨다"며 "제게 '춘화야'라고 부르는 유일하신 분이셨다. 굉장히 마음이 허전하고 이제 누가 나를 '춘화야'라고 불러주실까 싶다"고 비통한 마음을 전했다.
더불어 "정말 활발하셨던 분이고 건강을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도 실감이 안 난다. 정말 100살 이상은 사실 걸로 후배들은 생각해서 너무 아쉽다"며 "좋은 곳에 가셔서 이승에서 노래 건강하게 불렀던 모습으로 하늘나라에서도 편히 계시기를 빌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애도하며 울먹였다.
빈소를 찾은 팬들도 있었다. 조문을 하지는 못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상주가 허용해 잠시나마 조문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장례위원은 이날 오전 10시 55분경 기다리는 한 팬에게 "상주가 조문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오랜 시간은 안 된다"며 빈소로 안내했다.
강서구에서 온 박씨(61.여)는 <더팩트>에 "20여 년 전 현미 선생님이 영등포에서 노래 강사를 하실 때 뵀었다.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랐다. 항상 당당하시고 우리들 건강까지 챙기셨다. 꼭 조문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다림 끝에 빈소로 입장하게 된 그는 상기된 얼굴로 "가까이서 인사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고 말했다.
현미는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팬클럽 회장 김 모씨의 신고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향년 85세. 장례는 오는 11일까지 5일간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대한가수협회 이자연 회장은 "고인께서 치열한 삶을 통해 불멸의 작품을 남기고 영면에 드는 이 시점에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자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고 전하며 "국민들의 애도와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후배 가수들과 함께 장례 절차를 무사히 마치겠다"고 말했다.
8일 오후 1시 30분 입관하고 영결식은 11일 오전 9시 진행된다. 영결식은 코미디언 이용식이 사회를, 가수 박상민과 알리가 추도사를 할 예정이다. 발인은 10시 엄수된다.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고인은 1938년생으로 평양이 고향이다. 1950년까지 평양에 거주하다가 1.4 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 과정에서 북쪽에 남은 어린 동생들과 이별한 현미는 50여년 만인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당시 동생과 잠시 재회했다. 2020년엔 이산 가족 고향 체험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현미는 1957년 19살의 나이로 미8군 쇼단 무대에 서며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지만 한 여성 가수의 대타로 마이크를 잡았고 이후 3인조 여성보컬 그룹 '현시스터즈'로 활동했다. 그러다 당대 최고 작곡가 손석우의 눈에 띄어 정식 데뷔했다.
손 작곡가의 주선으로 영화 '동경에서 온 사나이' 주제가를 취입했고, 62년 독집 데뷔 음반으로 발매했다. 이 음반에 당시 떠오르던 작곡가이던 이봉조가 편곡한 '밤안개'와 인기 작곡가 길옥윤의 '내 사랑아' 등이 실렸다. 현미는 후에 음악으로 인연을 맺은 이봉조 작곡가와 결혼했다.
'밤안개'는 미국 스타 재즈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와 냇 킹 콜 등이 불러 유명한 'It's A Lonesome Old Town(잇츠 어 론섬 올드 타운)'의 번안곡으로 현미가 직접 쓴 가사를 입혔다. '밤안개'는 타이틀곡보다 인기가 많아 뒤늦게 곡을 교체해 음반을 재발매했다. 현미는 '밤안개'의 히트와 함께 60년대 최고의 가수로 등극했다.
'밤안개' 외에도 '떠날때는 말없이', '보고 싶은 얼굴', '무작정 좋았어요', '몽땅 내 사랑', '바람' 등 많은 히트곡을 쏟아내며 이미자, 패티김과 함께 1960년대를 대표하는 '3대 디바'로 평가 받았다. 1981년에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 취임 파티에 초청받아 한국 대표 가수로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음악 활동을 했고 2017년 80세 기념 신곡 '내 걱정은 하지마'를 발표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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