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예능처럼 봐주세요. 홈쇼핑도 예능 시대가 오면 안 되나." (쇼호스트 정윤정)
최근 인기 쇼호스트 정윤정이 현대홈쇼핑 방송 중 욕설을 내뱉어 도마 위에 올랐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만큼 현장에 있던 제작진이 곧바로 정정을 요청했지만, 정윤정은 "방송 부적절 언어 뭐 했죠? 까먹었다. 방송하다 보면 가끔 부적절한 언어를 사용해 죄송하지만 예능처럼 봐 달라"며 가벼운 태도로 넘겼다.
이후에도 정중하거나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 특히 정윤정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마냥 어떤 제재도 받지 않은 채 한 달 넘게 방송을 계속했다. 오히려 자신의 욕설을 지적한 누리꾼들과 SNS에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정말 무엇이 잘못됐는지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듯한 정윤정의 행보는 직업의식과 책임감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욕설을 내뱉었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정윤정은 판매 제품이 매진됐음에도 정해진 방송 시간으로 인해 조기 종료가 불가능하자 짜증을 내며 욕을 했다. 또한 "놀러 가려고 했는데. 나 안 해"라며 언성을 높여 20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프로'가 보여줄 자세는 아니라고 지적받았다.
결국 정윤정은 제기된 민원으로 인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회부됐다. 논란이 커지고 나서야 정윤정은 지난 17일 지각 사과문을 내놓았다. 그는 "욕설을 인정하고, 이로 인해 상처받으셨을 소중한 고객 여러분과 모든 방송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로 인해 홈쇼핑과 쇼호스트에 관련된 여러 문제들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 홈쇼핑과 쇼호스트에 대한 규제
정윤정의 욕설이 이슈가 되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집중한 건 홈쇼핑과 쇼호스트에 대한 법정제재였다. 베테랑의 가벼운 언행과 그 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 그리고 지난 1월에 발생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민원이 제기될 때까지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었던 현대홈쇼핑이었기 때문이다.
홈쇼핑 방송은 지상파 방송에 비해 제약이 적을 것이라는 편견도 있었다. 이에 21년 차 쇼호스트 A 씨는 <더팩트>에 "오히려 반대다. 홈쇼핑만큼 심의가 타이트한 채널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미묘하지만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자유롭지 못한 채널이 홈쇼핑이다. 생방송 때도 곧바로 피드백이 오기 때문에 신경을 바짝 쓰고 있어야 하며, 즉각 정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방심위는 홈쇼핑 방송에서 쇼호스트 멘트, 자막 등 방송 내용이 '상품소개 및 판매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을 위반하는 것으로 판단되면 방송법 제100조에 따라 해당 방송사에 대해 적절한 제재 등을 결정할 수 있다. 문제의 심각성에 따라 '문제없음', 행정지도 단계인 '의견제시'와 '권고', 법정 제재인 '주의' '경고' '프로그램 정정·수정·중지나 관계자 징계' '과징금'으로 구분된다. 특히 법정 제재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시 감점 사유가 된다는 점에서 중징계로 분류된다.
정윤정의 안건은 '상품 소개 및 판매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 제37조(언어) 제2항을 위반한다고 판단됐다. 해당 조항은 '상품소개 및 판매방송은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비속어·은어·저속한 조어를 사용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한다.
다만 쇼호스트에 대한 방심위의 직접적인 제재는 불가능하다. 제재 대상이 방송사업자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방심위 광고심의소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문제의 방송분에 관해 현대홈쇼핑에만 법정제재인 '경고'와 '관계자 징계'를 의결했다. 제재 결정은 4월 전체 회의에서 최종 확정된다.
문제는 쇼호스트가 일으켰는데, 제재와 징계는 방송사가 받는 셈이다. 물론 이번 사태는 방송사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다만 홈쇼핑은 생방송인 만큼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경우가 높고 그때마다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자칫 방송사가 피해자가 될 가능성도 존재했다.
이에 쇼호스트를 직접 제재할 방법 등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 욕설 등 심의에 대한 규정을 몰랐나
쇼호스트와 방송사가 심의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몰랐을 경우는 없을까. 이에 현직 쇼호스트와 방송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그럴 일은 없다"고 밝혔다.
A 씨는 "미묘한 부분까지 심의가 있기 때문에 쇼호스트 등 게스트들도 실제로 심의 교육도 오랫동안 정말 많이 받고, 그만큼 준수하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이어 "방송사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심의 팀이 따로 있다. 한 상품을 론칭할 때는 PD, 쇼호스트, 스태프, 심의팀 등 모든 관계자들이 다 모여서 멘트 하나하나까지도 심의 정도를 체크한다. 이를 통과한 것들만 갖고 들어가는 것이 홈쇼핑이다. 그 정도로 타이트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난 수십 년간 이런 일이 없었기에 안일해진 관계자들의 태도를 꼬집었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일부 쇼호스트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들은 고객에게 상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은커녕 일명 '완판'에만 열을 올리며 시청자들을 기만하고 있다"며 "방송의 신뢰성을 무기 삼아 막대한 수입을 쌓아 올리는 쇼호스트들의 일탈에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방송사에서는 쇼호스트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한가
그렇다면 현대홈쇼핑은 정윤정에게 어떤 조치를 내렸을까. 현대홈쇼핑 관계자는 <더팩트>에 "광고소위 결정 전에 한 차례 조치를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본부장급의 고위관계자가 정윤정에게 구두로 경고했으며, 그와 계약한 협력사 상품 등은 3주간 방송 중단 결정했다"고 전했다.
다만 이미 늦었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해당 사건이 논란이 되고 방심위에 상정되자 그제서야 눈치 보듯 결정한 조치가 무슨 의미냐는 지적이다. 강력한 조치도 아니었다. 방심위 위원들 역시 '구두 경고'와 '3주 방송 중단'을 비롯한 현대홈쇼핑의 미흡한 사후 조치를 꼬집으며 '관계자 징계'라는 결정까지 내렸다.
결국 현대홈쇼핑 측은 칼을 빼들었다. 지난 4일 정윤정에 대한 무기한 출연 정지를 통보했다. 관계자는 "방송 사업자로서 공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의 일환으로 무기한 출연 정지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례적인 결단이었다. 홈쇼핑 업계에서 특정 쇼호스트의 방송 출연 정지를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이목이 집중됐다.
사후 조치는 물론이고 문제가 일어나기 전, 출연진에 대한 사전 통제가 미흡했던 점도 의문이다. 이에 한 홈쇼핑사 관계자는 <더팩트>에 "'쇼호스트의 계약 형태'에 주목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일반적으로 한 홈쇼핑사와 계약을 맺는 것과 달리 정윤정과 같은 업계 톱 혹은 스타 쇼호스트들은 프리랜서로서 '상품' 판매사와 계약을 체결한다. 즉 해당 상품을 다루는 홈쇼핑 방송이라면 어디든 출연할 수 있다. 반면 방송사 입장에서는 이러한 쇼호스트들을 강하게 통제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는 설명이다.
이에 홈쇼핑사 관계자는 "인기 제품을 판매하는 쇼호스트일수록 어려울 것"이라며 "지금이야 사건이 커져 몇몇 방송사에서도 정윤정의 방송을 내보낼 계획이 없다지만, 보통은 한 방송사가 방송을 중단해도 쇼호스트는 다른 방송사를 돌면 그만이다. 심지어 '완판'으로 유명한 톱 쇼호스트라면 방송 중단으로 상품을 팔지 못하는 방송사만 손해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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