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강일홍 기자] 문정선은 덕성여고 2학년 때 KBS라디오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어린 나이에 그가 인기가수로 빠르게 성장한 데는 KBS악단장 김강섭 씨를 만난게 행운의 인연이 됐다. 문정선의 재능을 눈여겨 본 뒤 가수로 발탁하면서다.
김강섭이 작곡한 그의 데뷔곡 '파초의 꿈'은 KBS 드라마 주제가로 처음 선보인 뒤 빠르게 대중에 확산됐다. 당초엔 트윈폴리오(송창식 윤형주)가 부르기로 돼 있었는데 갑자기 팀이 해체되면서 행운은 어린 무명가수 문정선에게 돌아갔다.
이 곡이 폭발적으로 히트하면서 문정선은 그해 TBC 7대가수상과 신인가수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이변을 일으킨다. 이미자 최희준 패티김 김상희 등 쟁쟁한 당대 스타 가수들이 포진한 가운데 갓 신인에게 주어지기 힘든 놀라운 사건이었다.
가수 혜은이는 길옥윤과의 만남 이후 승승장구한 바 있지만, 가수와 작곡가의 만남이 줄잇는 명곡 탄생을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강섭이 작곡한 '나의 노래'(70년)나 '보리밭'(71년) 역시 '파초의 꿈' 못지 않은 히트를 기록했다.
'보리밭'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문정선의 영원한 인생곡으로 남아있다. '보리밭'(박화목 시)은 작곡가 윤용하 씨(65년 작고)가 6.25 부산 피난시절 가곡으로 작곡한 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그가 세상을 떠나고 6년이 지난 후 문정선이 부르면서 빛을 보게 됐다.
'보리밭 사이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 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문정선 '보리밭' 가사)
김강섭이 편곡하고 문정선이 부른 '보리밭'은 서정성 짙은 가사가 정겨운 멜로디에 실려 봄을 대표하는 대중 가요로 널리 전파됐다. 애초엔 '옛생각'이었으나 윤용하가 곡을 붙이면서 제목을 바꿨다. 박화목은 국민동요 '과수원길' 작사가이기도 하다.
문정선은 어린 시절 비교적 풍족한 집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아버지는 대전에서 유명한 제지공장 사장이었고, 어머니는 양조장을 운영했다. 공부도 잘해 고등학교부터 서울에서 다녔다.
"저는 노래에 관심이 많았는데 아버지 반대가 워낙 심했어요. 공부만 하라고 서울로 보내셨지만 오히려 그게 저한테는 가수 꿈을 키우는 기회가 된 셈이에요. 우연한 기회에 라디오 노래자랑대회에 나가게 됐지만, 그만큼 음악에 관심이 컸기 때문이죠."
'보리밭'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뒤 문정선은 당대 톱스타들만 출연하는 프로그램 '스타쇼'에도 얼굴을 내밀만큼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당시 히트곡이 많지 않은 신인 문정선을 끼워넣기 위해 팝송이나 가곡을 선곡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가곡 대중화에도 한몫을 한 셈이다.
'보리밭' '나의 노래' '그 얼굴에 햇살을' '꽃 이야기' 등의 히트곡을 부르며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80년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를 떠났다가 지난 2004년 24년 만에 '가요무대'에 출연하며 방송 활동을 재개했다. 요즘에도 시청자들이 부르면 종종 방송활동에 나선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늘 밝고 유쾌한 문정선은 "데뷔 직후나 지금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분에 넘치게 많은 도움을 받는다"면서 "아무래도 조상님들이 전생에 덕을 많이 쌓은 것같다"고 말했다. 올해 결혼 43년째로 슬하에 1남을 두고 있다.
"가수 길을 반대했던 아버지가 나중엔 적극 나서주셨어요. 음으로 양으로 저에게 도움 주신 분들이 많았던 건 모두 부모님 덕이라고 생각해요. 결혼 후엔 남편과 자식 덕까지 두루 받고 있으니 저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인 것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