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멋있는 대사도 재치 있는 표현도 아니다. 그저 극 중 캐릭터, 심지어는 주인공과 대적하는 악역의 이름이다. 그런데 2023년 들어 가장 많이 외치고 가장 많이 듣는 명대사가 됐다. 어쩌면 이날이 오기까지, 박연진을 연기하기까지 차근차근 걸어온 임지연에 대한 찬사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더 글로리'와 박연진을 떠나보내며 마지막으로 불러본다. "연진아."
임지연은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극본 김은숙, 연출 안길호)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작품은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문동은(송혜교 분)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학교 폭력(학폭) 가해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작품은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TV(비영어) 부문 1위뿐 아니라 영어와 비영어, TV와 영화 부문을 통틀어서도 전체 1위에 오르는 등 세계적인 인기를 자랑했다.
파트1에 비해서도 압도적인 파급력이었다. 지난해 12월 30일 첫 공개 후 두 달간을 기다렸던 시청자들의 관심은 그만큼 폭발적이었다. 신드롬의 중심에 선 임지연은 파트1 공개 직후가 더 기분이 좋았다. 그는 "파트1 때 생각보다 더 화제가 돼 놀랐다. 우린 아직 파트2가 남았는데, 아직 시작도 안 한 건데 벌써부터 반응이 뜨거우니 파트2를 보여드릴 생각에 설렜다"고 돌이켰다.
이어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랑받았는데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한편으로는 종영이 아쉽기도 한데 시원섭섭한 느낌"이라며 "사람들이 나를 많이 미워해 주고 싫어해 주는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하다"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임지연은 극 중 문동은에게 학교폭력이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가해자 박연진을 연기했다. 김은숙 작가는 박연진에 대해 '천사 같은 얼굴에 악마 같은 심장'이라 표현했다. 임지연은 글뿐인 소개글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연진아"가 최고의 명대사가 된 건 임지연에 대한 찬사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연진이가 많이 불릴지는 몰랐어요. 주변에서 자꾸 이름을 '연진'으로 바꾸라고 할 정도예요. 엄마도 '연진아, 오늘 저녁은 된장찌개야'라는 등 계속 연진이라고 부르세요. 또 뭐만 하면 '멋지다. 연진아'라고도 해요.(웃음) 그렇지만 캐릭터로 이름이 많이 불린다는 건 그만큼 제가 잘했다는 거니까 뿌듯해요. 더 많이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악역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임지연에게 '더 글로리'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는 "여자 악역이 많지 않기도 하고 들어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던 찰나 연진이가 찾아왔다. 욕심이 많이 났고 당연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나만의 제대로 된 악역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감독님과 작가님이 내게 왜 연진이를 맡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제가 잘할 것 같았어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만큼 정말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이기도 했죠. 그런 저의 가능성을 봐주고 봐주고 믿어주신 것 같아요."
물론 자신감으로만 가득한 건 아니었다. '처음'에 대한 불안감과 캐릭터 구축에 대한 고민 또한 이어졌다. 이에 임지연은 "촬영 때보다 준비 기간이 오히려 더 바빴고 힘들었다"고 돌이켰다. 덕분에 첫 촬영 때는 확신을 갖고 연기에 임할 수 있었다.
극 중에는 박연진의 욕 하는 장면과 흡연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임지연은 "욕이나 담배 등은 어색할 바에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무조건 잘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현장에서 최대한 다 질러보고 눌러보고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표현했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남편 앞에서 열받아서 피울 때, 초조한 감정을 애써 누르기 위해 피울 때 등 다양한 상황과 감정들을 디테일하게 잡으면서 피우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원했던 악역을 그것도 성공적으로 해낸 임지연이다. 경험해보고 나니 느낀 악역의 매력이 있을까. 임지연은 "어떤 캐릭터를 하든 사랑받고 공감받으려고 하지 않나. 그런데 이번 작품은 세상 사람들이 다 날 미워했으면 했다. 미움받으려고 노력하면서 캐릭터를 준비한 게 처음이었는데, 여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있더라. 또 정말로 미움받을 때 느끼는 성취감도 좋았다"고 전했다.
반대로 한 번 악역을 소화해내고 나면 그 이미지가 고착화될 우려도 있었다. 배우로서는 모험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나 임지연은 이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오히려 악역만큼 색깔 있는 역할을 많이 도전하고 싶다. 연진이를 잊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싶지는 않다. 다음 작품에서도 주어진 캐릭터로서 분명한 노력을 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더 글로리'는 임지연에게 용기와 도전으로 남았다. 가장 큰 용기가 필요했던 작품이었고, 그만큼 두려움이 몰려왔었지만 마음 굳게 먹고 잘 이겨냈기 때문이다. 이는 임지연이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더 오래 '연진아'를 외쳐줬으면 해요. 너무 빨리 없어진다면 아쉬울 것 같아요. 항상 다짐하는 게 있어요. 제가 유일하게 갖고 있는 집요함과 도전 정신으로 열정 있는 배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더 글로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항상 성장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임지연에게 이런 얼굴이 있다는 것을, 이런 역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또 보여드릴 테니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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