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비슷한 캐릭터여도 그 안에는 각각의 차이점이 있다. 정경호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병약미'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굳이 '병약미'라는 이미지를 버리려 하지 않고, 대신 다른 표현 방식을 찾아내 보여준다. 긴 시간 정경호라는 배우가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경호는 최근 <더팩트>와 만나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극본 양희승, 연출 유제원) 종영 기념 인터뷰를 진행,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작품은 사교육 전쟁터에서 펼쳐지는 국가대표 반찬가게 열혈 사장 남행선(전도연 분)과 대한민국 수학 일타 강사 최치열(정경호 분)의 달콤하고 쌉싸름한 로맨스를 담았다.
정경호는 1조 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타 수학 강사 최치열로 분해 섭식 장애와 트라우마로 인한 예민하고 까칠한 모습부터 내면은 정 많고 따듯한 모습까지 섬세하게 그려내며 극의 몰입을 도왔다.
전작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에 이어 이번 작품 또한 호평과 함께 좋은 성적표를 받은 정경호다. 이에 그는 "많은 작품들이 나오고 있는 환경 속에서 우리 작품은 1월 시작과 함께 첫 새해를 알리며 시청자들에게 따뜻한 이야기가 됐으면 했다.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다짐하면서 촬영한 작품인데, 다행히 관심도 사랑도 많이 받아 너무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시청해줘서 감사드리고, 우리 작품이 좋은 기억이 됐으면 한다"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정경호에게 '일타 스캔들'은 출연을 고민할 이유가 없었던 작품이었다. 제작진과 전도연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타 스캔들'은 양희승 작가와 유제원 감독의 세 번째 호흡인 데다 전도연의 출연만으로 제작 전부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정경호는 "개인적으로 양 작가님의 작품을 다 봤을 정도로 팬이었다. 유 감독과는 사석에서 두어 번 정도 만나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며 "무엇보다 전도연 선배님과 연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기회였다. 선택을 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고 전했다.
심지어 캐릭터는 이미 정경호와 찰떡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청자들도 좋아해 주는 익숙한 '병약미'에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예민하고 까칠한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를 것이 있다면 '일타 강사'라는 직업이었는데 이는 캐릭터 구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전까지 '일타'가 뭔지도 몰랐다는 정경호는 가장 먼저 일타 강사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일타는커녕 수학에 대해서도 잘 몰랐던 상태였어요. 때문에 가장 중점적으로 연구했던 건 강사들이 어떻게 수업을 준비하고 하는지 등 그들의 삶과 배경이었죠. 유명한 분들의 영상도 많이 봤지만, 수업을 참관도 해보고 이 직업에 관해 이야기도 나눠보는 등 직접 겪어보려 했어요. 새로운 세계였죠. 특히 판서는 어려워서 두 달간 정말 열심히 연습했던 부분 중 하나예요. 집에 칠판까지 사두고 연습했을 정도예요(웃음)."
일타 강사와 연예인의 삶 사이에 비슷한 점도 발견하며 공감이 됐을 때도 많았단다. 정경호는 "배우들도 자신에 대한 혹은 작품이 끝나면 그에 대한 후기를 찾아보지 않나.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더라. 수업이 끝나고 나면 게시판부터 확인한다. 수백 개의 글이 올라오는데 그중에는 '말이 빠르다' '이번 강의는 어떤 것 같다' 등 피드백이 많더라. 내심 우리와 비슷한 삶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극 중 최치열은 학생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발차기'를 사용하는데 이 부분 또한 현실감을 높이며 호평을 이끌었다. 정경호는 "실제 일타 선생님들의 주목시킬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더라. 욕하는 것도 있고 소리치는 것도 있었는데, 최치열은 발차기와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이를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를 새각했다. 특히 말투가 고민이었는데, 이는 저희 자문 선생님의 억양을 참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발차기에 대해 해명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발차기도 못하면서 왜 하냐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사실 더 높이 올라가는데 정장 바지를 입고 있다 보니 많이 안 올라간 것뿐이에요. 조금 억울했던 장면이에요. 실제로는 더 잘 올라가고 잘합니다(웃음)."
전도연과 함께 호흡을 맞춘 소감도 궁금했다. 정경호는 곧바로 "당연히 너무나도 좋았다"고 돌이켰다. 특히 그는 이번 호흡으로 느낀 바가 많아 보였다. 정경호는 "전도연 선배님은 오랜 기간 연기를 했다 보니 카메라 앞에서 떨지 않을 법도 한데, 선배님은 늘 긴장하고 설레 한다. 그런 모습이 매 연기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져 좋았다"며 "특히 선배님은 거짓말을 안 하는 분이다. 나는 가끔 원하지는 않지만 치열로서 이해가 안 된 부분을 연기해야 할 때가 있다. 반면 선배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행선으로서 말을 하려고 한다. 그런 점들이 너무 좋았다"고 전했다.
"저도 현장에 빨리 나오는 편인데 선배님은 저보다도 빨리 나와서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또 제가 연기할 때 자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대사를 잘 안 틀릴 정도로 대본을 외운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웬걸, 선배님은 저보다도 더 안 틀리더라고요. 정말 대단하죠."
어느덧 40대에 접어든 정경호다. 경험이 축적된 만큼 이제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게 편안해진 그였지만,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하진 않는다. 다음 스을 계속해서 세워두며 변화에 대해서도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정경호는 "비슷한 역할을 8년 정도 계속하고 있다. 예전에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지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까칠하고 병약미 등의 역할을 굳이 완전히 버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미 표현의 방식을 다르게 해서 연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0대 때 내 연기 방식과 지금의 내 방식은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캐릭터마다의 농도도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보니 나 역시 다른 표현을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끝으로 당분간은 쉼표를 찍을 생각은 있었다. 작품도 지금까지의 캐릭터도 잠시 멈출 계획이다. 정경호는 "4월 말부터 영화가 들어가는데 이후 여름이 끝난 뒤에는 휴식을 조금 취할까 싶다. 물론 그때 돼서 또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계획은 그렇다. 동시에 살도 찌우고 몸도 키우고 싶다"고 밝혔다.
"20대 때는 제멋에 취해 연기를 하지 않았나 싶어요. 30대는 군대 갔다 온 뒤 내가 제대로 못 한다면 좋아하는 일을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이상한 압박감과 책임감에 사로잡혀 연기라는 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현재는 기대되는 사람이 그리고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 배우가 뭘 한다면 어떨까'라는 기대감을 심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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