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글을 쓴 감독이 배우에게 '어려운 걸 줘서 미안하다'며 시나리오를 건넸단다. 구태여 그럴싸한 말로 작품과 캐릭터를 포장하지 않았다. 이를 받아 든 조진웅은 '알면서 왜 주냐'고 맞받아졌지만, 감독이 보여준 믿음에 연기력으로 보답했다. 그가 가진 저력을 새삼 확인하게 만든 '대외비'다.
지난달 20일 열린 언론 시사회때 작품을 보고 배우들의 열연에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조진웅을 만났다. 10명의 취재진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잠시 어수선한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조진웅은 '식사들 하셨습니까. 시작해보시죠'라고 먼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1일 개봉한 '대외비'(감독 이원태)는 1992년 부산, 만년 국회의원 후보 해웅(조진웅 분)과 정치판의 숨은 실세 순태(이성민 분), 행동파 조폭 필도(김무열 분)가 대한민국을 뒤흔들 비밀문서를 손에 쥐고 판을 뒤집기 위한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는 범죄 드라마다.
작품은 2021년 크랭크업했지만, 코로나19로 개봉을 미루다가 2년 만에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그렇기에 이날 만난 조진웅은 작품 속과 사뭇 달랐다. 취재진이 '살이 더 빠진 것 같다'고 하자 "영화에서는 증량하라는 얘기도 없었는데 왜 증량했는지..."라고 말끝을 흐려 웃음을 안겼다.
하지만 이 또한 조진웅의 계산이었다. 딱 떨어지는 수트핏의 댄디함보단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풍채가 좋다고 판단한 것. 그는 "잘못 걸리면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할 것 같은 사람들을 추상적으로 떠올렸어요. 연설 장면이 있어서 든든하면 좋겠다고 판단했어요"라고 설명하다가 "배가 살짝 나와서 귀엽던데요. 필도는 살찌는 게 힘들었다는데 믿을 수 없는 이야기죠"라고 웃음을 안겼다.
조진웅은 밑바닥 정치 인생을 끝내고 싶은 만년 국회의원 후보 해웅으로 분했다.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일념 하나만 품었던 해웅은 욕망에 눈뜨고 자신의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점점 변해간다. 이를 시간의 흐름에 따르지 않고, 현장 상황에 맞춰 연기하고 표현하는 건 꽤 까다로운 작업이다.
글로 적힌 단순한 논리를 연기로 그리며 관객들을 납득시키는 건 조진웅의 몫이고, 그는 충분히 해냈다. 그럼에도 궁금했다. 어떤 지점에 끌려 어려운 길을 택했는지. 그는 "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이자 관객들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고 운을 뗐다.
"물론 '굳이 들여다봐야 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살고 있을 수 있고, 스스로 중간 점검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해웅이는 옳지 않은 걸 인정하면서도 계속 갈 수밖에 없었어요. 한편으로는 그걸 원했고요. 이런 걸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연기하면서 해웅이가 안타까웠어요. '나는 저렇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고요. 이번 작품이 관객들을 너무나 아프게 꼬집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진하게 들었죠. 쫀득쫀득하게 작업할 수밖에 없었어요. 꼬집히면 너무 아픈데, 아프다고 말도 못 하고 버티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진웅은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 '보안관' '공작' 등 여러 차례 호흡을 맞췄던 이성민과 재회했다. 두 사람은 이번에도 숨 막히는 열연을 펼치며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한다. 조진웅은 이성민과 연기를 맞췄던 때를 떠올리며 "(이성민과) 같이 연기 해보시면 알 텐데"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현장에서 판을 잘 깔아주시고, 편하게 해주시는 거에 특화되셨어요. 이성민 선배님하고는 꽤 오래됐어요. 둘 다 조연이었을 때 드라마에서 만나고, 잘 되고 나서도 여러 번 했어요. 앞으로 이성민 선배님이 출연한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할 거예요."
특히 조진웅과 이성민은 극 후반 국밥집 독대 장면에서 떨리는 안면근육부터 얼굴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까지, 무엇하나 놓칠 수 없는 극강의 디테일함을 보여준다. 이들은 작품을 스크린으로 봐야 하는 이유를 오롯이 연기력으로 증명하며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한다.
"더웠고, 긴장감이 흐르면 좋겠다고 판단했는데 땀이 흐르더라고요. 분장이 아니었어요. 식은땀이 난 거죠. 그 정도로 긴장감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땀을 닦으러 오는 분장팀에게 '이거 살리자'고 했죠."
'대외비'로 관객들을 아프게 꼬집어보고자 했던 조진웅은 작품에 참여한 배우로서, 이를 본 관객으로서 어떤 변화를 맞이했을까. 배우로서 "만족할 수 없지만 의도한 지점은 잘 찾아갔다"고, 사람으로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어두운 이야기고, 완전 끝까지 내려가 보는 영화에요. 정치 직업군을 끌어왔지만, 정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삶을 그려냈죠. 깊이 들여다보면서 뭔가를 진하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저도 메시지를 공감하고 체험할 수 있었어요. 각자가 생각하는 옳음이 있기 때문에 작품을 보면서 본인이 해석하는 위치나 시간도 다 다를 거예요. 저는 삶에 적용시키는 시간이 단축됐어요. '대외비' 하기를 참 잘했죠."
조진웅과 보낸 1시간은 유쾌하다가도 진지하게 흘러갔다. 연설 장면을 준비했던 방법을 설명하면서 다시금 목소리를 높일 때는 영화를 다시 보는 듯했다. 또 가벼운 농담을 툭툭 내뱉다가도 작품과 관련된 질문을 받으면 담담하면서도 묵직하게 본인이 느낀 바를 진솔하게 전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1시간이 정말 짧다'며 아쉬움을 내비친 조진웅의 말에 '격한 공감'을 하면서 자리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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