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이왕이면 각인된 이미지를 또 연기하는 쉬운 길이 있다. 신인배우가 쉬운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크게 지적할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러나 배우 채종협은 매 작품 익숙한 연기보다 새로운 변화를 선택했다. 연기하는 채종협이 '배우'라는 수식어 앞에서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빠르게 자리매김하는 건 아닐지라도 채종협의 '잠금 해제'된 열정은 그의 꾸준한 '성장 속도'를 이끌고 있다.
채종협은 최근 <더팩트>와 만나 ENA 드라마 '사장님을 잠금해제'(극본 김형민, 연출 이철하, 이하 '잠금해제') 종영 인터뷰를 진행,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수상한 사건에 휘말려 스마트폰에 갇힌 사장(박성웅 분)과 그 스마트폰을 줍고 인생이 뒤바뀐 취준생(채종협 분)의 하이브리드 공조를 다룬다.
채종협은 한때는 배우 지망생이었으나 현실적인 문제로 취준생 생활을 이어가던 중 스마트폰을 주우면서 하루아침에 실버라이닝의 사장이 되는 박인성 역을 맡아 극을 이끌었다.
제작진의 제안으로 '잠금해제'와 박인성을 만나게 된 채종협이다. 그는 "인성 역을 맡아줬으면 한다고 첫 연락을 받았다. 아무래도 '스토브리그'의 유민호 이미지가 아직도 강렬한 것 같다. 할머니밖에 모르고 야구만 하는 청년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있나 보다. 때문에 감독님이 생각하기에 민호를 소화했던 내 순박한 이미지랑 이번 작품 속 연기밖에 모르는 일차원적인 인성이의 이미지가 잘 맞다고 본 것 같다"고 밝혔다.
원작을 이미 알고 있던 채종협으로서는 제안을 받고 그저 신기했단다. 이후 원작과는 다르게 보다 더 현실적인 부분이 가미된 대본을 보고 작품 출연을 결정했다.
채종협은 "내가 박인성이란 캐릭터를 연기했을 때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물음표가 떠오르더라. 이내 그 물음표를 느낌표를 바꾸고 싶은 도전 의식이 생겼다"고 전했다.
채종협이 개인적으로 해석한 박인성이란 캐릭터는 '난해한 인물'이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취준생이지만 실제로는 어디에도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보통 취준생이라고 하면 눈치 빠르고, 남들보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잖아요. 실제로 이렇듯 취업을 위해 치열하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어요. 인성이는 취준생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두 부류 어디에도 끼지 않았으면 했어요. 현실에 없을 것 같은 동화 같은 인물인 셈이죠. 그래서 더 진실만을 좇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했으면 했어요. 그런 점이 때로는 바보처럼 보이고 어리숙해 보일 수는 있지만, 진심은 언젠가 통한다는 느낌의 인물이었으면 했죠."
작품은 박인성이 스마트폰 안에 들어간 실버라이닝 사장 김선주(박성웅 분)를 대신해 사장이 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김선주를 보호하고 그를 스마트폰에 가둔 범인을 찾기 위해 사장이 된 채 이어폰으로 김선주의 지시를 받는다. 연기지망생이었던 박인성으로서는 사장 역을 연기한다고 생각하고 소화하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채종협은 배우이기 때문에 설정의 오류가 될 수 있는 부분을 더 꼼꼼하게 찾아냈고, 이를 배제하고자 했다. 그는 "배우이기 때문에 모든 역할을 다 경험해본 것처럼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은 배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기자라고 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하지만, 이는 실질적으로 보고 겪은 것과는 다르다. 때문에 사장직을 맡아 업무를 대리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는 어리숙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이 묻어났으면 한다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채종협의 제안 덕분에 한 회사의 사장으로 완벽하게 연기 변신을 하는 게 아닌, 연기를 했지만 허점이 될 만한 어리숙함을 지닌 사장 박인성이 탄생했다.
작품의 특성상 스마트폰과 이어폰을 매개로 한 장면도 중요했다. 직접 주고받는 연기가 아닌 상상의 상대와 호흡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박성웅은 후반 녹음인지라 채종협의 연기를 보며 톤 조절을 할 수 있어 그나마 상황이 괜찮았다. 반면 채종협은 '무'의 상태에서 여러 상황을 그려가며 '유'의 연기를 만들어야 했다. 자신이 자칫 잘못하면 이에 맞춰 연기할 박성웅에게도 피해를 끼칠까 우려도 됐다.
"선배님의 연기에 실례가 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죠. 하고 난 뒤에도 이래도 될지 의문도 들었고요. 매 장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 박성웅 선배님은 경력과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해도 다 맞춰줄 거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죠. 덕분에 조금은 편하게 임할 수 있었어요."
2019년 데뷔한 채종협은 '스토브리그' '시지프스' '알고있지만' '마녀식당으로 오세요'으로 차근차근 입지를 다진 뒤 '너에게 가는 속도 493km'를 통해 주연으로 거듭났다. 여기에 '사장님을 잠금해제'를 통해 첫 코미디 연기까지 해낸 채종협이다. 최근에는 코미디 연기 경험 때문에 곤란할 때도 있다고.
"현장에서 제 연기를 보고 많은 분들이 웃어주면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인지 요즘에도 자꾸 웃기려고 해서 힘들어요. 심지어 새 작품 촬영 현장에서는 웃긴 캐릭터도 아닌데 저도 모르게 욕심이 피어올라서 곤란해요. 현장을 밝고 웃기게 하고는 싶고, 하지만 캐릭터 특성상 쉽게 애드리브와 행동을 하면 안 되고. 가끔은 답답할 때가 있어요(웃음)."
어느덧 데뷔 5년 차가 된 채종협은 비교적 이른 기간 만에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의 뇌리에는 '스토브리그' 유민호로 각인돼 있는 그다.
배우로서 대표적인 이미지가 있다는 건 장단점이 분명하다. 다만 신인배우였던 그를 생각하면 한동안은 대중에게 익숙한 유민호의 이미지를 밀고 나갈 법도 했다. 하지만 주연으로 가는 길목에서 빠르게 이미지 변신을 꾀한 그는 이후 매 작품을 통해 여러 도전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수치로만 봤을 때는 좋은 성적표를 얻진 못했다. 그럼에도 도전을 향한 '열정'은 늘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 가치는 느리든 빠르든 결과적으로 '성장'을 일궈낸다.
"'아역배우 빼고는 다 할 수 있는 나이'라는 대사가 있는데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게 겁이 나잖아요. '알고 보면 겁낼 필요가 없는데, 어떤 시도든 불가능한 게 아니라면 다 똑같은 건데' 생각에 와닿았어요."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는 채종협의 배우로서 목표도 궁금했다. 그는 "배우라는 수식어 앞에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배우라는 수식어가 여전히 제게는 높게 느껴지고 어려워요. 아직도 어디 가서 절 소개할 때면 배우라고 말하는 게 어려워서 '연기하는 채종협' 혹은 '그냥 채종협'이라고 해요. 언젠가는 배우라고 자신 있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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