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강일홍 기자] 박우철(본명 오영록)은 72년 불후의 명곡 '천리먼길'을 시작으로 '돌아와' '우연히 정들었네' '정답게 가는 길' 등 숱한 히트곡을 낸 가수다. 잘 생긴 외모와 매끄러운 무대 매너, 그리고 구수하고 정감어린 목소리로 수많은 여성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80년 TBC(동양방송)에서 방영돼 화제를 모았던 일본 애니메이션 '원탁의 기사'의 주제곡을 부른 주인공이기도 하다. 해남 출신으로 '아빠의 청춘' '고향무정' '영등포의 밤' 등을 불러 6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가수 오기택(2022년 3월 작고)과 인척이다.
대중이 기억하는 박우철의 대표곡은 데뷔 직후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히트한 '천리먼길' '돌아와' 등이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꼽는 인생곡은 따로 있다. 다름 아닌 김병걸 작사 이동훈 작곡의 '연모'다. 이 곡은 박우철이 30년 공백을 깨고 존재감을 알린 곡이란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도 저도 못하면서 사랑했었다 앞이 캄캄 안보이지만/ 당신과 나 약속이나 한듯 돌아가는 길을 지웠다/ 시간은 우리편이 아니라 해도 이제와 왔던 길을 바꿀수 있나/ 천번이고 만번이고 내 마음 물어보지만/ 당신을 떠나서는 나도 없다고 뜨거운 가슴이 말하네'(박우철의 '연모' 가사 1절)
'연모'는 2014년 발표됐다. 박우철은 오랜만에 복귀하면서 자신의 첫 곡은 조항조가 부른 '사나이 눈물' 스타일의 곡을 희망했다. '사나이 눈물'은 바로 김병걸 이동훈 콤비가 합작한 곡이고 '연모' 역시 애초엔 조항조를 겨냥해 이 두 사람이 만든 노래다.
가요계에서 모두가 공감하는 것 중 '최종 히트곡의 주인은 누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조항조가 99년에 리메이크해 히트한 '남자라는 이유로'는 원래 박우철이 94년에 먼저 발표했던 노래다. '남자라는 이유로'와 '연모'의 뒤바뀐 사연은 두 가수 모두에게 기묘하다.
'연모'는 조항조 외에도 강진 등 여러 가수가 퇴짜를 놓은 곡이다. 한데 마침 박우철이 원하던 스타일과 딱 맞아떨어졌다. 이미 완성된 곡이었던지라 메일로 받아 3일만에 녹음에 들어갈 수 있었고, 불과 11일만에 CD로 나오는 초스피드 진행이 가능했다.
박우철은 '남자라는 이유로'를 끝으로 30년 가까이 가요계를 떠나 있었다.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하면서 무일푼 신세를 벗어나는데만 강산이 세번 바뀌었다. 그는 "인생을 살다보면 숱한 희노애락을 겪게 마련이지만 저만큼 요철이 많은 삶도 드물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시기를 잘 만나야 히트할 수 있는 것같아요. 주목받지 못했던 '남자라는 이유로'는 몇년 뒤 IMF의 어려운 시기와 맞아떨어지며 히트곡이 됐잖아요. 당시 외면을 당한 '연모'는 지금 조항조 씨도 명곡 중의 명곡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연모'는 임영웅이 '미스터트롯의 맛'에서 부른 뒤 다시한번 리바이벌 히트곡으로 조명됐다. 최근엔 '불타는 트롯맨'에서 현역가수 한강이 불러 오디션 커버 명곡으로 자리매김했다. 2020년 3월 28일 임영웅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연모' 무대 영상은 현재 1300만 뷰를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