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다음 소희' 배두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발걸음


"기본적으로 아이들은 보호받고 행복해야하는 존재"

배두나가 영화 다음 소희로 관객들과 만난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더팩트|박지윤 기자] 어느덧 데뷔 25년 차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연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칭찬 보단 아쉬움이 먼저 나온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박한 평가를 하는 태도는 배우 배두나가 필모그래피를 더욱 다채롭게 가꿔나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대작과 저예산 영화를 모두 아우른다. 캐릭터의 분량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마음이 끌리는 대로 작품을 택하는 '진짜 배우'다.

8일 개봉한 영화 '다음 소희'(감독 정주리)는 당찬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김시은 분)가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형사 유진(배두나 분)이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강렬한 이야기를 그린다.

'다음 소희'는 2017년 대기업 통신회사의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고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이에 정 감독은 콜센터의 환경과 이를 구성하는 요소, 일하고 있는 조건 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배두나는 형사 유진으로 분해 소희의 죽음 이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이 가운데 유진은 가상의 인물로, 직업은 형사지만 당시 사건을 파헤쳤던 기자부터 현장 실습 문제에 관해 고민했던 모든 사람을 대변한다. 그렇기에 배두나는 실제 사건을 찾아보거나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명확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고정 관념을 피하고 오직 관객들의 입장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유진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서 부담이 되거나 어려운 장면은 없었어요. '이건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영화'라고 생각했죠. 당시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나 콜센터와 학교 등을 찾아가면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이는 유진의 반응 위주로 연구했어요. 제 리액션이 관객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작품은 소희가 겪는 부조리한 현실을 담은 전반부와 형사 유진이 죽은 소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후반부로 전개된다. 신선한 구조를 처음 접한 배두나는 '내 캐릭터는 한 장면만 나오나?'라는 '찐 반응'을 보이며 당황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특이한 구조가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그만큼 더 효과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극의 구조가 신선하죠. 한 명의 배우가 끌고 가다가 2부는 다른 배우가 열기 때문에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감독님을 지지했어요. 유진이로서 소희가 당했던 걸 비슷하게 겪으면서 답답함과 막막함, 모멸감을 느꼈어요. 소희가 걸어왔던 길을 유진이가 '다음 소희'가 돼서 걷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이 구조가 더 효과적이었죠."

도희야 이후 오랜만에 정 감독과 재회한 배두나는 한번 호흡을 맞췄던 감독님이 다시 불러주시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배두나는 '도희야'(2014) 이후 오랜만에 정 감독과 재회했다. '유진 역에는 상상 이상의 섬세함을 가진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필요했던 정 감독은 가장 먼저 배두나에게 시나리오를 건네며 변함없는 신뢰를 드러냈다. 이에 배두나는 "저는 정 감독님의 팬이에요"라고 화답했다.

"이 업계를 떠나신 줄 알았어요. 그 정도로 연락이 없으셨거든요(웃음). 그런데 시나리오를 썼는데 봐달라고 하셔서 너무 기뻤고, 다시 돌아와 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정말 좋은 감독님이거든요. 두 번째로 작품을 하는데 저에게 가장 먼저 보냈다고 하셔서 감동했어요. 저에게 정 감독은 동지에요. 여러 가지 느낌이 있는데 '감독님의 팬'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거 같아요."

"한번 호흡을 맞췄던 감독님이 다시 불러주시면 '나의 연기 스타일을 좋아하셨구나. 현장에서 좋은 배우로 느껴주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뻐요.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그렇게 배두나는 정 감독과 함께 목소리를 높여도 결코 바뀌지 않는 부조리한 현실을 그려내며 사회 고발의 메시지를 작품에 녹여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많은 경험과 경력을 쌓은 한 사람으로서, 자신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은 배두나의 진심이 '다음 소희'와 맞닿았다. 아직은 본인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한 번씩 더 들여다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저는 '좋은 어른이 되어야지'는 아니에요. 사실 제가 어른이라는 자각도 별로 없어요. 하지만 저보다 젊은 사람들이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본적으로 아이들은 보호받고 행복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배두나는 소희와 유진이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모든 걸 느껴주셨으면 좋겠다고 관람을 독려했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그동안 배두나는 SF와 드라마, 사회 고발적인 것 등 장르에 한계를 두지 않고 필모그래피를 구축해왔다. 특히 지난해 넷플릭스 '레벨 문' 촬영으로 해외에 체류하며 '브로커' 개봉 홍보 활동을 함께하지 못했던 그는 '다음 소희'로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들어가는 예산부터 장르까지 극과 극을 내달리는 작품들이지만, 이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기에 가능한 행보다.

여기에는 오로지 배우로서 성공을 좇는 것이 아닌,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배두나의 바람이 담겨 있다. 그는 "제 필모그래피를 볼 때 열심히 살았다는 느낌을 받아요. 제가 후세에 남겨도 창피하지 않을 작품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들고, 스스로 예뻐해 줄 수 있는 동기가 돼요. 차곡차곡 잘 걸어왔다고 자부하는 편이에요"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그런 점에서 '다음 소희'는 배두나의 N 번째 작품이다. 이는 그동안 그 어떠한 작품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일관된 태도였다. 홍보를 위해 그럴듯한 말로 '다음 소희'를 소개할 수 있었지만, 그는 관객들에게 감상 가이드라인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출연 배우로서 아는 체하는 게 아닌, 관객들이 캐릭터의 심리를 보다 더 능동적으로 들여다봐 주길 바라는 진심을 전했다.

"예전에 '괴물' 개봉했을 때 '제10번째 영화'라고 당차게 얘기한 적이 있어요. 늘 작업할 때 열심히 하고, 가면 놓아주는 스타일이죠.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제가 깊이 생각하면 상처받을 수 있더라고요. 떠나보내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보내줘야 해요."

"연기는 개인의 취향이잖아요. 저는 배우가 명확하게 캐릭터를 설명하는 걸 선호하지 않아요. 관객들이 더 들여다봐 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소희와 유진이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모든 걸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걸 느껴달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어떠한 것도 관객들에게 미리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아무 정보 없이 가서 보는 게 가장 좋은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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