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김시은, 부조리한 현실과 맞서는 '다음 소희'에게


'칸의 샛별' 된 김시은, 첫 장편 데뷔작서 탄탄한 연기력으로 '호평'

배우 김시은이 첫 장편 데뷔작 다음 소희로 국내 관객들과 만난다. 그는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주실지 궁금하다고 개봉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더팩트|박지윤 기자] "너는 아무것도 안 해도 소중한 존재다. 태어난 것만으로도 너무 귀하다".

잠시나마 소희가 됐었던 배우 김시은이 결코 없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어디선가 묵묵히 현실을 이겨내고 있을 '다음 소희'에게 짧지만 묵직한 응원을 보냈다.

8일 개봉하는 영화 '다음 소희'(감독 정주리)는 당찬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김시은 분)가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형사 유진(배두나 분)이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강렬한 이야기를 그린다. 피해자는 있지만 뚜렷한 가해자는 없는 비참한 우리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다음 소희'는 한국 영화 최초로 제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폐막작에 초청된 것을 시작으로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릴레이 수상을 이어가며 전세계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첫 장편 영화 주연작으로 칸영화제에서 화려한 데뷔 신고식을 치른 김시은은 이제 국내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난 그는 "관객분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주실지 너무 궁금하고 기대돼요"라며 개봉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김시은은 소희로 분해 캐릭터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세밀하게 그려내며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여줬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드라마 '런 온' '멘탈코치 제갈길' '십시일반' 등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고 있지만, 아직 대중들에게 익숙한 이름과 얼굴은 아니다. 그렇기에 김시은이 연기한 소희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는 밝은 미소를 띠며 취업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드러낸 당찬 여고생이 점차 생기를 잃으면서 메말라가는 과정을 섬세하고 세밀하게 그려내며 극의 전반부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작품은 소희의 이야기로 흘러가는 전반부와 형사 유진이 죽은 소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후반부로 구성됐다. 홀로 러닝타임의 절반을 끌고 가는 것이 배우로서 부담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시은은 그럴수록 캐릭터의 입장에 몰입했다. 그는 "소희를 잘 해내지 못하면 극 전체에 방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잘 해내야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어요. 그래서 소희의 입장에 집중하면서 전적으로 감독님을 믿고 따라갔어요"라고 전했다.

정 감독은 첫 만남부터 김시은을 소희로 받아들였다. 대사 한 줄 읽지 않고 편하게 대화를 나눈 게 전부였지만, 정 감독은 김시은에게 다음을 약속했다. 이에 그는 "제 생각에는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아직 그렇지 못하는 미성숙함이 티가 나서 닮아 보였던 거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다음 소희'는 2017년 대기업 통신회사의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고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대본을 받기 전까지 실제 사건을 알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김시은은 "저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할 거예요. 이 영화가 세상에 공개되면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더 찾아보지 않을까요"라고 작품에 임한 이유를 밝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는 소희가 존재하고 있을 것 같아서 너무 마음이 아파요. 한 명이라도 더 관심 가져주고,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후기를 찾아봤는데 영화를 보고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마음이 든다면 충분할 거 같아요."

김시은은 다음 소희를 통해 한 명이라도 더 관심 가져주고,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김시은은 해당 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를 찾아보지 않았다. 인물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면 유연하게 캐릭터의 감정을 연기하기 어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취재진들이 작성한 활자를 보며 사건을 접한 그는 "소희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어요. 당시에는 저를 위한 거줄 몰랐는데 많은 배려를 받았다는 걸 알게 됐죠"라고 회상했다.

춤추는 걸 좋아하는 고등학생 소희는 담임 선생님의 추천을 받고 콜센터로 현장 실습을 나간다. 그의 전공인 '애완동물 관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직무지만, '나 이제 사무직 여성이야'라며 부푼 기대를 안고 회사에 출근한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로는 트집과 폭언, 성희롱이 들려오고, 오직 실적에만 목숨 거는 회사는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계약서에 적힌 것보다 적은 월급을 준다.

그러던 중 팀장의 극단적 선택을 목격하는가 하면, '실습생이 도망갈까 봐'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인센티브 지급을 미루는 등 부조리한 현실은 소희의 입을 다물게 만든다. 연기한 입장에서 바라본 소희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누군가는 소희를 보면서 '일을 그만두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소희는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싸워보기도 했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나름대로 수많은 방법을 시도하면서 최선을 다했죠. 하지만 소희가 그만둬도 그 일은 반복됐을 거 같아요. 똑같은 주변 친구들의 상황도 보였을 거고요. 반복되는 삶을 생각하면서 자기가 더 이상 손을 쓸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을 한 거 같아요."

"저는 소희가 그날 죽으려고 결심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맥집에서 들어오는 빛을 바라봤고, 이게 구원이었을 것 같아요. 사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큰 위로가 되지 않았어요. 그 빛을 쫓아가다 보니까 저수지가 있었고 죽음을 택했다기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어 갔어요. 고립된 변화들 사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충분히 생각했거든요. 그냥 저수지에 빠져들어 갔다고 느꼈어요."

김시은은 다음 소희는 너무 소중하고 특별한 작품이라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그런가 하면 김시은은 극의 구조 특성상 배두나와 많은 연기 호흡을 맞추지 못한 것에 관해 아쉬움을 드러내는가 하면, 현장에서 자신을 향해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준 배두나를 롤모델로 꼽으며 존경심을 표했다.

"선배님은 존재만으로 큰 버팀목이 돼주셨어요. 선배님이 얼마나 이 영화에 애정이 있는지 느낄 수 있었죠. 저는 롤모델이 없었는데 이번에 선배님이 저의 롤모델이 되셨어요. 연기적인 것뿐 아니라 사람으로서 너무 좋은 분이세요. 저도 나중에 선배님처럼 부담스럽지 않고 든든하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소희가 마주했던 은은하게 비추는 저수지의 윤슬 같은 존재였죠."

칸영화제부터 부산국제영화제까지, 첫 장편 데뷔작으로 잊지 못할 경험과 추억을 쌓은 김시은이다. 막연하게 꾸던 꿈이 현실로 펼쳐졌지만, 들뜨거나 안주하지 않고 차분히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점차 색을 잃어가는 촘촘한 연기로 스크린을 장악하며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드러낸 만큼, 다음 작품에서 보여줄 김시은의 새로운 얼굴을 기대하게 됐다.

"'다음 소희'는 너무 소중한 작품이에요. 캐스팅됐을 때부터 촬영하고, 개봉을 앞둔 지금까지 다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 유독 특별한 작품이죠. 아직 논의 중인 작품은 없는데, 제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지 너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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