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용기 있는 외침[TF리뷰]


배두나X김시은, 나와서는 안 될 '다음 소희'를 위한 뜨거운 위로

오는 8일 개봉하는 다음 소희는 2017년 대기업 통신회사의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고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지금 어디선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세상 모든 소희에게 묵직한 위로를 건넨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더팩트|박지윤 기자] 수많은 소희를 지나쳐왔고 또 다른 소희를 마주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작품을 보고 난 후, 제목부터 모든 장면을 천천히 곱씹을수록 더 먹먹해진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지옥 같은 현실과 사회를 향한 용기 있는 목소리를 통해 어디선가 묵묵히 살아갈 소희에게 위로를 전한다.

오는 8일 스크린에 걸리는 '다음 소희'(감독 정주리)는 당찬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김시은 분)가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형사 유진(배두나 분)이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강렬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도희야'(2014)를 통해 신선한 연출력으로 묵직한 주제를 녹여내며 그해 신인 감독상을 휩쓸었던 정주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작품은 2017년 대기업 통신회사의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고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이에 정 감독은 콜센터의 환경과 이를 구성하는 요소, 일하고 있는 조건 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더욱 노력을 기울였다.

김시은은 소희 역을 맡아 첫 장편 데뷔작을 선보인다. 그는 점차 미소를 잃어가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하며 극을 안정적으로 이끈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다음 소희'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성됐다. 전반부는 소희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춤을 좋아하는 고등학생 소희는 담임 선생님의 추천을 받고 콜센터로 현장 실습을 나간다. 그의 전공인 '애완동물 관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직무지만 "나 이제 사무직 여성이야"라며 취업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기뻐했다.

이렇게 부푼 기대를 안고 회사에 출근했지만, 전화기 너머로는 트집과 폭언, 성희롱이 들려온다. 오직 실적에만 목숨 거는 회사는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계약서에 적힌 것보다 적은 월급을 준다. 이렇게 부조리한 현실을 마주하는 소희는 점차 미소를 잃어간다.

그러던 중 팀장의 극단적 선택을 목격한 소희는 감정을 지우고 미친 듯이 일하기 시작하며 결국 실적 1위를 달성한다. 하지만 회사는 '실습생이 도망갈까 봐'라는 같잖은 이유로 인센티브 지급을 미루고 소희는 새로 부임한 팀장과도 마찰을 빚게 된다. 열심히 일하면서 이 현실을 이겨내 보려고 하지만, 그 어떠한 것조차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결국 소희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을 때 형사 유진이 후반부를 연다. 소희의 죽음과 관련한 사건을 수사하는 유진은 천천히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기막힌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오직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열악한 환경으로 학생들을 보내는 학교부터 실습생의 노동을 착취하는 기업, 예산 삭감이 두려운 교육청까지 저마다의 변명을 내세우며 책임을 회피하기 바쁘다. 하지만 유진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소희의 다음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희야 이후 8년 만에 정주리 감독과 재회한 배두나는 형사 유진으로 분해 현대 사회의 그늘을 여실히 보여준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작품은 콜센터로 공간을 한정 짓지 않는다. 정 감독은 가상의 인물 유진을 통해 사회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의식을 전한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를 명확히 단정 지을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각자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현대 사회의 그늘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다음 소희'는 주인공 소희가 겪은 억울한 일에서 그치지 않고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였고,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무서움을 안긴다. 이와 동시에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세상 모든 소희에게 위로를 전한다.

배두나와 김시은의 열연은 다소 생소한 극의 구조를 단번에 납득시킨다. 김시은은 대중들에게 익숙한 마스크가 아니기에 더욱 몰입도를 높인다. 환한 미소로 기대와 설렘을 드러낸 당찬 여고생이 점차 메말라가는 과정을 섬세하고 세밀하게 그려냈다. 전반부를 홀로 이끌어감에 부족함이 없다.

'도희야' 이후 8년 만에 정주리 감독과 재회한 배두나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사건을 수사하다가 부당한 사회를 향해 시원하게 주먹을 날리면서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정 감독이 2017년에 발생한 사건을 2023년이 돼서야 스크린에 걸게 된 이유는 단순하지만 지극히 당연했다. '늦었지만 이제서야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직 이 사건을 모르는 대중들에게, 혹은 알고 있음에도 본인과는 관계가 없다고 단정 짓는 사람들에게 사회 전체의 일원으로 다시금 비참한 현실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15세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38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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