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지난해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일곱 작품으로 대중들과 만난 배우가 있다. 그렇기에 그의 연기가 다소 익숙하고 뻔할 수 있었지만, 매번 새로운 얼굴을 꺼내며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그렇게 대중들에게 서서히 스며들며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난 서현우다.
2010년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으로 데뷔한 그는 2011년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로 스크린에 진출했고, 이후 조·단역으로 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다시 말해 서현우는 운 좋게 대중들로부터 '픽' 된 스타가 아닌, 우직하게 쌓아 올린 견고한 탑을 밟고 드디어 빛을 본 배우다. 이 가운데 최근 영화 '유령'(감독 이해영) 개봉을 기념해 진행된 서현우와의 인터뷰는 그의 노력과 저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품은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린다.
서현우는 통신과 암호 해독을 담당하는 천은호 계장 역을 맡았다. 그는 '유령'의 용의선상에 올라 바닷가 절벽 위 외딴 호텔에 갇혔지만 오로지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하나짱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펼치는 인물로, 반일도 친일도 아닌 그저 현생을 살기 바쁜 '경성시대의 집사'다.
밀실 추리극부터 여성 서사 중심의 액션까지 숨 막히는 긴장감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천계장으로 분한 서현우는 유머러스함으로 극을 환기시킨다. 이번 작품을 위해 24kg 증량을 감행한 그는 수염과 안경 등으로 외적인 변신을 꾀했고, 독특한 행동과 말투로 남다른 존재감을 발산했다.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구체적인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지만, '공감'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첫 번째로 연기를 하는 배우가, 두 번째로 이를 지켜보는 현장 스태프가, 세 번째로 완성본을 감상하는 관객들이 캐릭터에 공감해야 했다.
다소 괴짜스럽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명분의 크기가 독립운동가에 비해 작을 수 있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 진지함을 잃지 않은 서현우는 "FM 느낌을 내려고 했어요. 살은 쪘는데 수트핏은 타이트했죠. 몸이 옷을 빠져나가려고 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배 위에 손을 올리는 등 연극적인 접근을 했어요. 소품과 의상의 도움을 받으면서 현장에서 많이 만들어갔죠"라고 설명했다.
서현우에게 '유령'이 더욱 남다른 이유는 바로 배우 설경구, 이해영 감독과의 재회다. 설경구 주연의 '소원'(2013)에서 구급요원으로, 이해영 감독의 '독전'(2018)에서 형사로 짧게 등장했던 그는 '유령'으로 이들과 나란히 섰다. 특히 배우라는 꿈을 꾸기 전부터 좋아했던 영화배우와 가까이서 호흡을 맞춘 것에 관해 "걱정이 앞섰다"고 회상했다.
"'소원'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이를 기억하시는 게 너무 대단하신 거 같아요. 천계장이 무라야마 쥰지(설경구 분)에게 반말을 하잖아요. 너무 떨렸어요. 그런데 캐릭터로서 처음 대면했을 때 '드루와. 다 해봐'라는 느낌을 받아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현장에서 후배들과 스태프들을 잘 챙겨주시는 따뜻한 형님이세요."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의 연기 천재'. 후배 박소담은 선배 서현우를 이렇게 표현했다. 남자연기상을 받고 한예종 연극원을 졸업한 그는 엄청난 기대와 포부를 안고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걸었지만, 그가 마주한 세상은 생각했던 것만큼 달콤하지 않았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어린 친구들이 먼저 주목받는 것을 지켜보며 부러움과 자괴감도 들었다. 하지만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허무하게 놓치지 않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유연하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 탑을 쌓아 올렸다.
"각자의 시기와 인연이 있는 거 같아요. '연연해하지 말자. 내가 하는 작업에 집중하자'고 되뇌었어요. 시간이 되면 독립영화를 보러 가는데 숨은 고수들이 많아요.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트렌드는 시시각각 바뀌고, 시대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돼요. 제가 10년 전에 성공했던 연기를 고집하고 반복하면 결국 한계를 마주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지점에서 스스로를 제어하면서 조심하려고 해요."
"주변 사람들의 믿음도 큰 힘이 됐어요. 저 또한 연기를 하면서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신뢰가 저를 계속 움직이게 해줘요. 자양분이 되죠."
서현우는 '다작 배우'지만, 늘 전작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우며 한계 없는 자기 변주를 펼쳐왔다. 작품의 분위기부터 캐릭터의 성격이나 처한 상황 등에 따라 유연하게 준비하는 그는 "기존에 나와 있는 콘텐츠를 보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나 그림을 찾아보는 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제가 잘하는 것만 고집하지 않아요. 저도 사람인지라 편하게 해낼 수 있는 것과 타협하고 싶을 때도 있죠. 하지만 이를 피하다 보니 그동안 자연스럽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린 거 같아요. 물론 너무 못하겠는 건 두렵죠. 그 사이에서 절충을 잘해온 것 같아요."
이렇게 연기에 진심인 서현우가 꿈꾸는 미래는 어떨까. 그가 꺼낸 답변은 다소 의외였다. 연기적인 기술뿐 아니라 건강하게 배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이를 위해 지금의 시간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경험치를 축적하고 있다.
"먼 이야기인데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어요. 연기 지도만 하는 게 아니라 배우로서 살아가는 것에 관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곳이요. 한 작품을 끝내고 빠져나오는 과정이 중요하거든요. 역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게 교통사고 후유증처럼 켜켜이 쌓이거든요. 건강하게 배우 생활을 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저를 실험하고 있는 거죠."
"연기 자체에 신뢰를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새로움도 안겨드리고 싶어요.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려워요. 앞으로 역할에 임하면서 저에게 새로운 시도와 선택을 할 생각이에요. 콘텐츠 홍수 시대에 즐거움과 발견, 더한 이상을 심어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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