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이하늬'] 엄마가 되니 비로소 보이는 것


"운명처럼 다가온 '유령', 연기하는 맛 있었던 '박차경'"

이하늬가 영화 유령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그는 총독부 통신과 암호 전문 기록 담당 박차경을 연기했다. /CJ ENM 제공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10개월간 품었던 한 생명을 키우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마주하고 있는 엄마 이하늬와 이미지 변신을 꾀하며 대중들 앞에 서는 배우 이하늬는 49:51의 싸움을 하고 있다.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볼 때는 미처 몰랐던 고충을 몸소 느끼면서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이하늬를 만났다. 오랜만에 진행되는 대면 인터뷰에 설렘을 느끼며 수줍게 등장한 그는 배우이자 엄마로서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전했다. 배우로서 취재진들과 마주하는 자리였지만, 엄마가 된 후 달라진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꽃을 피워냈다.

이하늬는 지난 18일 개봉한 영화 '유령'(감독 이해영)에서 총독부 통신과 암호 전문 기록 담당 박차경 역을 맡아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작품은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린다.

'유령'은 이하늬의 재발견이었다. 그동안 영화 '극한직업', 드라마 '열혈사제' 등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다 하는 결의 캐릭터를 만나 뜨거운 에너지를 쏟아냈던 그가 슬픔을 두르고도 무너질 줄 모르는 '쿨톤' 캐릭터를 만나 새로운 얼굴을 꺼냈기 때문이다.

이하늬는 캐릭터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섬세하게 연기하고, 설경구와 굵직한 액션 합을 선보이며 남다른 활약을 펼쳤다. /CJ ENM 제공

또한 설경구와 굵직한 액션 합을 선보인 이하늬는 성별과 체급 차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비등한 에너지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렇게 여성 서사를 비중 있게 그려낸 작품의 중심에 서서 성공적인 연기 변신을 펼쳤다.

이하늬에게 '유령'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이 감독은 "백지에 이하늬라는 점을 찍으니 '유령'이 됐다"고 말하면서 처음부터 이하늬가 아닌 박차경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들은 이하늬는 "배우로서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운을 뗐다.

"배우가 작품을 선택하는 것 같지만, 작품이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아요. 이해영 감독님이 일하는 프라임타임 안에 제가 액션을 할 수 있는 나이인 것도 운명이에요. 그런 점에서 '유령'은 종과 횡이 만나서 작품을 하게 된 느낌이 강했어요."

박차경은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냉소적이지만 복잡다단한 내면을 가진 그는 슬픔이나 기쁨 등의 감정을 일차원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깊게 누르고 또 누른다. 이를 연기한 이하늬는 잔이 찰랑거릴 정도로 꽉 채워진 슬픔을 갖고 있지만 결코 쏟아내지 않으며 입체적으로 캐릭터를 그려냈다.

"슬픔을 삼키면서 연기하니까 비장이 끊어질 것 같더라고요. 어떤 장면에서든 차경이를 봤을 때 얼굴에서 복잡한 내면이 조금씩 드러나길 바랐어요. 어려운 포인트가 많았지만, 연기하는 맛은 분명했던 캐릭터였죠."

2021년 결혼한 이하늬는 지난해 딸을 출산했다. 그는 출산은 인간계와 신계가 동시에 이뤄낸 일이라고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CJ ENM 제공

2021년 5월 크랭크업한 '유령'은 코로나19로 개봉을 연기하다가 약 2년 만에 스크린에 걸렸고, 이하늬는 이 시간 동안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결혼과 임신, 출산을 겪은 그는 모든 과정을 '인간계와 신계가 동시에 이뤄낸 일'이라고 표현했다.

"제 온몸으로 창조의 영역을 느꼈어요. 누구나 임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더라고요. '엄마들의 세상은 이런 거구나'라는 경이로움을 느꼈고, 제가 엄마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어요."

국악인의 길을 걷다가 연예계에 데뷔한 이하늬의 유일한 무기는 성실함과 꾸준함이었다. 이 가운데 중요한 자산이었던 몸을 어떠한 보상도 없이 완전히 휘갈기며 그 이상의 값진 것을 얻었다. "'둘째를 낳아볼까'라는 미친 생각을 해요"라는 이하늬는 엄마가 되고 보니 보이는 것들을 열심히 설명하며 출산의 긍정적인 영향을 전파했다. 마치 출산 장려 홍보대사처럼 말이다.

"배우이자 인간 이하늬에게 출산은 너무나 중요한 자산이 됐어요. 한 존재를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는 게 너무 신기해요. 그동안 제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이나 몸이 해체되는 걸 겪어도 전혀 개의치 않게 되더라고요. 아이를 낳고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저 열심히 하는 배우였는데, 이제는 제 삶을 살아가면서 연기를 하고 싶어요."

출산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이하늬는 전체적으로 편안해졌고,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CJ ENM 제공

물론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건 아니다. 워킹맘의 고충을 마주한 이하늬는 "결국 제 감정을 컨트롤해야 해요. 일할 때는 감사한 마음으로 집중하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내가 이런 존재를 낳았다니 정말 경이롭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책임감이 강한 만큼, 죄책감도 컸는데 이제는 인간 이하늬에게 숨통을 주고 싶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인터뷰 날 기준으로 174일째 한 생명을 키우며 새로움의 연속을 경험하고 있는 이하늬는 아직 모든 게 서툰 '초보 엄마'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한층 넓어진 포용력까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렇기에 앞으로 엄마로서, 배우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그가 그려나갈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급변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편안해졌어요. 내려놓을 줄 알아야 어른이 된다고 하는데 나이와 상관없이 부모가 되면 어른이 되는 거 같아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제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이 무기력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하니까 공간이 확장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러한 변화가 앞으로 제 커리어에 영향을 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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