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영웅' 정성화, 스크린에 걸린 14년의 내공


14년간 안중근을 열연한 오리지널 캐스트의 여유와 품격

정성화가 영화 영웅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CJ ENM 제공

[더팩트|박지윤 기자] 단순히 보여지는 것이 아닌 답변 하나하나에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묻어나올 때 '멋짐'을 느낀다. 또한 이를 마주하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정성화와의 인터뷰는 14년간 이어진 오리지널 캐스트의 품격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정성화는 지난 21일 개봉한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작품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다.

개봉을 앞둔 지난 12일 오후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정성화를 만났다. 영화 홍보 일정과 지방 공연을 함께 소화하고 있는 그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어요. 좀 더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라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영웅'은 한국 영화 최초로 쌍천만 흥행 기록을 쓴 윤 감독이 '국제시장'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자,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는 국내 최초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다. 여기에 2009년 뮤지컬 '영웅' 초연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4년 동안 안중근 의사를 연기한 정성화가 영화 '영웅'에서 안중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뮤지컬 영웅의 초연부터 14년 간 안중근 의사를 연기해온 오리지널 캐스트 정성화가 영화 영웅의 안중근 역을 맡았다. /CJ ENM 제공

윤 감독은 영화 제작 단계부터 '안중근은 정성화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마음먹었지만, 정성화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캐스팅 소식이 반갑고 영광스러웠지만 부담감과 두려움도 상당했다. 평지만 달리던 아이에게 끝을 알 수 없는 오르막길을 가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14년간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뮤지컬 작품이 영화화될 때 시너지가 아닌 역효과가 날까 봐 걱정했어요. 하지만 저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영화 '영웅'은 저 혼자만 이끌어가는 게 아니잖아요. 감독님과 제작사 그리고 동료 배우들과 함께 한 땀 한 땀 잘 꿰어나갔어요."

작품은 코로나19 여파로 크랭크업 2년 만에 스크린에 걸렸다. 하지만 윤 감독은 그저 기다림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았고 '재촬영'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감독과 배우들에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마두식(조우진 분)을 잃고 부르는 넘버를 다시 찍었어요. 당시 체중 감량했던 게 돌아온 상태라 다시 살을 빼야 해서 쉽지 않았죠(웃음). 하지만 결과적으로 재촬영한 게 좋았어요. 편집의 부드러움이 코로나 블루때 완성된 느낌이랄까요. 제가 감독님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예전에 봤던 '영웅'과 언론 시사회때 본 '영웅'이 달랐어요."

정성화는 감독님과 제작사, 동료 배우들과 한 땀 한 땀 잘 꿰어나갔다고 소감을 전했다. /CJ ENM 제공

정성화는 14년간 무대 위에서 안중근으로서 관객들과 만난 배우다. 뮤지컬 '영웅' 초연 당시 하얼빈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돌아보면서 안중근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던 그는 인물의 영웅적인 부분이 아닌 삶 그 자체에 집중했다. 또한 원작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해 다시 펜을 잡은 정성화는 정제되지 않은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연습까지 하며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얼굴을 완성했다.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서 공포와 두려움을 체감했어요. 그동안 과업과 위업을 달성하기까지의 결과에만 집중했고 과정을 들여다보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안중근 의사 멋있다'는 느낌만 자아내고 싶지 않았어요. 이번에 연기하면서 '스스로 잘난체하는 것만큼 외로운 건 없다'라는 말이 저에게 하는 것 같더라고요. 안중근을 연기한다고 해서 뽐낼 생각하지 말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뮤지컬에서의 노래는 모든 것이 정제돼 있어요. 또 관객들에게 들리는 것처럼 저에게도 똑같이 들리는데 영화 현장은 달라요. 정제되지 않은 제 목소리를 들어야 했죠. 그렇다 보니까 노래를 하면 할수록 '내가 지금 못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조건 대사처럼 들려야 된다는 생각으로 세밀하게 연습했어요."

이러한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윤 감독은 정성화에게 '진실된 연기'만을 주문했다. 이날 직접 노래를 부르며 뮤지컬과 영화의 차이를 쉽게 설명해준 그는 "화면이 크니까 조금만 거짓된 연기를 하면 다 드러나더라"고 스크린을 통해 자신의 연기를 본 소감을 전했다.

"감정이 아닌 노래에 신경 쓰고 있는 게 적나라하게 보이더라고요. 나중에야 감독님의 뜻을 이해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노래를 신경 쓰지 않았어요. 노래 실력이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나문희 선생님의 노래를 보고 느꼈어요. 노래 자체가 훌륭하다고 볼 수 없지만 그 누구도 가창력을 논하지 않죠. 물론 고음이나 노래를 불러야 하는 구간은 잘 불러야 하지만 연기를 보여주는 구간과 노래를 불러야 하는 구간을 잘 나눠야 해요."

SBS 3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정성화는 뮤지컬 배우로 전향했고 여러 작품을 통해 독보적인 실력을 입증했다. /CJ ENM 제공

1994년 SBS 3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정성화는 2004년 뮤지컬 배우로 전향했고, '라디오스타' '레미제라블' '킹키부츠' 등 많은 작품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개그맨보다 배우로서 대중들과 만난 시간이 더 길었지만, 그의 태생은 여전히 코미디고 개그맨은 꼬리표가 아닌 훈장이었다. 정성화는 "가장 어려운 게 코미디 연기다. 지금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영화 '영웅' 개봉과 함께 뮤지컬 '영웅' 서울 공연의 막이 오르면서 같은 시기에 스크린과 무대에서 안중근으로 대중들과 만나고 있는 정성화다. 무대 위에서 하나의 캐릭터로 쌓아 올린 14년의 경험과 내공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낸 그는 작품의 흥행을 넘어 '뮤지컬 영화의 시장 확장'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뮤지컬 영화의 불모지였어요. 그래서 관객 여러분께 저희 작품을 잘 소개하고 싶고 우리 시장과 배우들이 움직였으면 좋겠어요. 참여하고 싶은 뮤지컬도 많고 배우 중에서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도 많죠. 할리우드에 기웃거릴 수 있는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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