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원세나 기자]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며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tvN 토일드라마 '슈룹'(극본 박바라, 연출 김형식)은 이 자막을 통해 작품이 허구라는 사실을 분명히 적시하고 시작한다. 하지만 지난달 15일 첫 방송 이후 지난 6일 8회차가 방송되며 반환점을 돈 작품은 여전히 고증 오류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선시대 왕실교육을 소재로 다룬 '슈룹'은 자식들을 위해 기품 따위는 버린, 사고뭉치 왕자들을 지키기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 전쟁에 뛰어드는 중전 임화령(김혜수 분)의 파란만장 궁중 분투기를 그린 드라마다.
방송 전 '슈룹'은 그간 늘 봐왔던 왕이 아닌 중전들의 암투는 또 어떤 긴장감과 흥미를 선사하게 될지 기대를 모았고,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이 내세운 왕실 교육법과 엄마들의 교육열이라는 새로운 소재가 기대 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조선판 '스카이캐슬'이라는 수식어까지 생겨나는 등 퓨전 사극 '슈룹'이 다루는 색다른 세계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가 이어지는 가운데 특히 배우 김혜수가 '장희빈' 이후 20년 만에 돌아오는 사극 드라마라는 점에서 캐스팅 단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작품은 첫 회 시청률 7.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시작으로 꾸준히 상승해 8회 11.8%를 기록하며 호응을 얻었고, "역시 김혜수"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렇게 시청률과 화제성 두 영역에서 좋은 기세를 이어가고 있는 '슈룹'은 그러나 고증 논란만은 피해 가지 못했다.
'슈룹'은 가상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가상의 세계관 속 이야기라는 설정으로 작품이 역사적 사실과 무관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조선의 배경을 가져다 쓰기에 고증이 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가 이어졌다.
논란은 방송 첫 주부터 일어났다. 중국 색의 오류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시청자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2회 방송에서 황귀인(옥자연 분)이 아들 의성군(강찬희 분)에게 이야기하는 장면 중 사자성어 '물귀원주'가 자막으로 등장했는데, 자막 속 한자가 중국식 간체자라는 지적이 일었다.
여기에 중전이 임금의 침전을 찾는 장면에서는 '태화전'이라는 현판이 등장해 논란을 키웠다. 태화전은 청나라 시절 중국 자금성 정전의 이름으로 쓰인 바 있다. 논란이 일자 제작진은 "'태화'라는 말은 신라시대, 고려시대 학당 등 유교문화권에서 좋은 뜻으로 널리 사용됐으며, 물귀원주 자막은 실수"라고 해명하고 자막을 간체자에서 우리식 한자로 수정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논란은 꾸준히 이어졌다. 5회 방송에서 중전 임화령이 영의정(김의성 분) 앞에서 자신을 "본궁"이라고 지칭하는 장면이 나와 입방아에 올랐다. 이를 본 한 시청자는 "'본궁'은 중국의 고전 복장극에서나 쓰이는 단어다. 국어사전에도 없고, 보통 국내 사극에서는 신첩, 소첩, 소인 등의 표현을 쓴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이 밖에도 체통 없이 거침없이 뛰어다니는 중전, 아들을 왕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후궁에서 바로 대비가 된 설정, 폐비가 된 중전을 왕후라 부르는가 하면 서자가 중전 소생의 대군에게 중전을 "너희 엄마"라고 표현하고, "세자 새끼"라고 발언하는 등 오류가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아들만 5명을 낳았음에도 중전의 입지가 흔들린다는 설정도 억지스럽다는 반응이다. 적서차별이 분명하게 존재했던 조선시대에 대군들이 다른 왕자들과 같은 곳에서 교육받고, 같이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의견도 상당하다. 한마디로 '한국 사극'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끊이지 않는 논란에 일부 시청자들은 '퓨전 사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다. 조선이란 시대적 배경만 가져왔을 뿐 사건이나 인물을 모두 창조한 허구적 상상이기 때문에 고정적인 역사 고증의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과하다는 주장이다.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이은 문화공정으로 최근 시청자들은 한국 드라마에 은근히 녹아든 듯한 '중국풍'에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한다. 거부감이 클뿐더러 불편한 심경들을 도드라지게 느낀다. 따라서 퓨전 사극의 고증 정도에 대한 논박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앞서 지난해 SBS 사극 '조선구마사'가 중국을 연상케 하는 소품, 복장 등의 역사 왜곡으로 논란이 일자 방송 2회 만에 종영을 맞은 바 있다. 이후 SBS는 안효섭, 김유정 주연의 '홍천기'를 판타지 장르로 해 가상의 왕국인 '단왕조'로 삼았고, tvN '환혼'은 영혼을 바꾸는 환혼술을 둘러싼 판타지 사극으로 '역사에도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대호국'을 배경으로 정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자신의 칼럼 또는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퓨전사극의 한계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역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조선시대의 일상과 언어, 신분 체계, 복식 등 팩트는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드라마의 역사 왜곡 여부에 대한 시청자 시각이 예민해진 만큼 제작진이 장르적 표현의 범위를 더욱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존 인물과 사건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퓨전 사극'이라고 해도 이야기를 전개하는 표현방식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슈룹'이 고증의 의무와 창작의 자유 사이에서 얼마나 조화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한 시점이다.
[연예부 | 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