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남지현'] 19년 차의 식지 않는 연기 열정


"30살 되면 아역과 성인 연기 딱 반반...남은 2년 알차게 보내고파"

배우 남지현은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정의감 넘치는 기자 오인경 역을 맡아 극의 한축을 담당했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금방이라도 '작은 아씨들' 속 오인경으로 변신해 리포팅할 것 같았다. 똑부러지는 말투와 조리 있는 화법으로 진중하게 말을 이어간 배우 남지현을 보며 평소에 얼마나 깊은 생각을 갖고 연기를 대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한 시간가량의 인터뷰는 그가 19년 동안 우직하게 한길을 걸어오며 쌓아온 단단함을 마주한 시간이었다.

남지현은 지난 9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극본 정서경, 연출 김희원)에서 돈에 영혼을 팔고 싶지 않은 둘째 오인경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작은 아씨들'은 시청률 11.1%(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을 기록, 자체 최고를 경신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11, 12회 방송을 앞두고 지난 4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남지현을 만났다. 5명의 취재진들이 자리 잡고 인터뷰를 준비하자 남지현은 '기자님들, 결말이 듣고 싶으신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취재진들은 잠시 시청자 모드로 돌아가 여러 질문을 쏟아냈고 남지현은 차분하게 답변하며 여러 현장과는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먼저 남지현은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고 명쾌하게 밝히며 "과정은 아직 스펙타클하게 남아있지만 세 자매는 결국 원하는 걸 이뤄요. 정란회도 다 밝혀지고요. 개인적으로 닫힌 결말로 끝난다고 생각해요"라고 설명했다.

남지현은 작은 아씨들은 판타지 블록버스터라고 정의하며 작품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tvN 제공

결말도 들었지만 여전히 궁금한 게 많이 남아있었다. 인경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준 하종호(강훈 분)는 빌런인지, 세상에서 돈이 가장 신성하다고 믿는 최도일(위하준 분)은 반전이 있는지 등 시청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주제를 꺼내 들었다. 이를 들은 남지현은 "종호가 빌런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지 전혀 몰랐어요. 그런게 하나도 없는 인물인데 시청자분들의 반응이 저희의 예측을 벗어났죠"라고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작품은 가난하지만 우애 있게 자란 세 자매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유하고 유력한 가문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오인경은 오로지 옳은 일을 위해 움직이는 기자로, 면직 위기 속에서도 박재상(엄기준 분)의 비리를 찾아내고 푸른 난초의 비밀을 파헤치며 정란회의 내막을 밝혀냈다. 총 12부작으로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빠른 호흡을 내세운 작품 속에서 남지현은 자신만의 진득한 속도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그려냈다.

"처음에는 '작은 아씨들'의 장르를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웠는데 12회까지 다 보고 나서 감독님께 '우리 작품은 판타지 블록버스터'라고 말했어요.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 블록버스터요. 그만큼 사건은 비현실적이지만 이를 겪어내는 인물들은 지극히 평범하죠. 비상한 능력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결점도 있잖아요.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들이 거대한 사건을 만났을 때의 모습이 드라마로 표현된 게 너무 매력 있었고 그래서 독보적인 색을 가진 작품이 된 거 같아요."

마찬가지로 오인경에게도 결핍과 결점이 존재했다. 정의감 넘치는 기자지만 가글 통에 술을 넣어 마셔야만 용기를 낼 수 있는 모순과 집요함이 만드는 선을 넘는 과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오인경을 '숨은 빌런'으로 부르면서 답답함과 비난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남지현은 "호불호가 갈릴 걸 예상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남지현은 작가님, 감독님 믿음 덕분에 두려움 없이 연기할 수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tvN 제공

"인경이는 눈에 보이는 걸 쫓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서 원하는 바를 이루는 인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초반에는 인경이가 무엇을 위해서 저렇게까지 하는지 시청자들이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대본을 보면 인경이가 입체적인 인물로 잘 이해가 됐는데 배우로서 이를 표현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어요. 고민과 걱정이 많았는데 작가님, 감독님이 믿음을 많이 주셔서 연기하는 게 두렵지 않았어요."

모든 걸 예상하면서 오로지 배역에 몰두한 남지현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오인경의 끈질긴 집요함을 마주했을 때였다. '현실에도 이렇게 삶을 끈질기게 사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은 남지현은 자문 수업을 해준 기자로부터 해결책을 얻었다.

"리포팅 수업을 해주신 사회부 기자님께 여쭤봤어요. 기자님이 '한 가지 사건을 파고들 때 취재하면서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다. 마지막 퍼즐을 맞춰서 세상에 공개하면 쾌감을 느낀다'고 하셨어요. 그 성취감에 기쁨을 느끼고 이에 중독된 사람들이 기자를 하는 것 같다고 하셨죠. 이를 듣고 인경이의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더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었고요. 호불호가 있더라도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고 인경이도 충분히 응원받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저는 인경이처럼 집요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를 꾸준히 하는 면은 분명히 있어요. 원하는 것이 뚜렷하게 생기면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제가 해야되는 건 꼭 하는 편이죠. 예를 들면 운동이에요. 주어진 환경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기는 하지만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어요. 생각해보니까 연기도 그렇게 했더라고요."

2004년 MBC 사랑한다 말해줘로 데뷔한 남지현은 올해로 데뷔 19년 차 배우가 됐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

오인경은 모든 시청자들에게 응원받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기존 남지현이 보여줬던 다른 캐릭터들과 뚜렷한 차별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흔들림 없이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이자 가족을 지키고 싶은 둘째인 인물의 복잡다단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낸 남지현은 마침내 용감한 행보의 마침표를 찍으며 시청자들의 마음도 돌렸다. 여기에는 남지현이 18년 동안 구축해온 묵직한 힘이 뒷받침됐다.

2004년 MBC '사랑한다 말해줘'로 데뷔한 남지현은 10년 동안 아역으로, 8년 동안 성인 역할로 대중들과 만났다. 올해로 데뷔 19년 차를 맞이한 그는 웬만한 중견 연기자보다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는 베테랑 배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지현은 "아직 힘이 넘쳐나요. 의욕이 불타오르는 상태"라며 눈을 반짝였고, 지금까지 걸어온 그 길 이상의 행보를 기대하게 했다.

"몰랐는데 긴 시간이 흘렀더라고요. 10년은 아역이었고 8년은 성인 역할이었어요. 8년이 더 짧은데 더 멀리 걸어온 거 같아요. 20대 초반일 때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멀리 와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 비슷한 거 같아요. 한 걸음 한 걸음 보폭을 키울 필요가 있는 거 같아요. 제가 30살이 되면 아역과 성인 기간이 딱 반반이 돼요. 남은 2년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요. 그리고 딱 반반이 됐을 때 제 모습이 궁금해요. 26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온전한 직업인으로 배우를 2년 동안 하다 보니 아직 힘이 넘쳐나요. 의욕이 불타오르는 상태죠. 모든 걸 도전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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