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강일홍 기자] 1980년대에 가요계에는 '작은고추' 3인방이 존재했다. 한국 록의 원조 신중현, 그룹사운드와 트로트를 평정한 조용필, 그리고 천재적 음악적 재능을 갖춘 김수철이다. 그가 속한 그룹 '작은거인'은 이후 김수철의 상징 단어가 됐다.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가수 김수철은 멀티엔터테이너다. 가수에서 기타리스트, 작사가, 작곡가, 편곡가, 밴드 리더, 음악 프로듀서, 방송인, 영화배우까지 호칭도 다양하다. 국악 음반 '서편제', '불림소리', '팔만대장경' 등을 작곡하며 국악의 현대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70년대 후반 그룹 '작은거인'으로 등장한 뒤 열정적인 사운드와 무대 매너로 대중을 열광시켰고, 솔로 가수 변신 후에도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그의 노래 '못다 핀 꽃 한송이', '내일', '젊은 그대' 등은 지금도 시대를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매김돼 있다.
김수철의 인생곡은 '못다 핀 꽃 한송이'다. 이 곡은 83년 첫 솔로 앨범 수록곡으로 그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노래가 됐다. 고음 발성이 가능한 마야 려욱 남경읍 등이 방송에서 커버곡으로 불러 시선을 끌었다.
'언제 가셨는데 안 오시나 한 잎 두고 가신 님아/ 가지 위에 눈물 적셔 놓고 이는 바람소리 남겨놓고 / 앙상한 가지 위에 그 잎새는 한 잎/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 외로움만 더해가네/ 밤새 새소리에 지쳐버린 한 잎마저 떨어지려나/ 먼 곳에 계셨어도 피우리라 못다 핀 꽃 한송이 피우리라'(김수철의 '못다 핀 꽃 한송이' 가사 1절)
김수철 본인이 작사 작곡 편곡에 이어 노래까지 올 플레이어로 소화한 노래다. 그가 광운대 4학년 재학중 만든 노래다. 가사에 담긴 내용대로 그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못다 핀 꽃 한송이'처럼 초지일관한 의지를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취향과 성격이 한가지 테마로 외길을 가는 스타일이에요. 상대가 친구든 선배이든 후배이든 상관없어요. 앞에서 못한 건 제가 하고, 제가 못한 건 제 뒤에 있는 후배가 하면 되거든요. 그렇게 해서 못다 핀 꽃 한송이를 피우는 거죠."
김수철은 자그마한 체구에서 내뿜는 폭발적인 가창력은 펄쩍 펄쩍 뛰는 퍼포먼스와 함께 팬들을 사로잡았다. 1979년 그룹 작은거인의 1집 앨범 '작은 거인의 넋두리'로 정식 데뷔한 뒤 그룹사운드 중심의 록을 하다 영화음악을 접하면서 방향을 튼다.
첫 영화음악은 영화 '고래사냥'으로, 그는 영화음악을 작곡하다 출연까지 하게 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안성기 형이 어느날 배창호 감독님과 최인호 작가님이랑 영화를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면서 "술자리에서 의기투합해 얼결에 영화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전야제 음악을 작곡하면서 또 한번 두각을 나타낸다. 이를 계기로 움직임에 의한 소리, 무용음악 등을 작곡하다 이듬해부터 7년간 국악 공부에 심취한 뒤 영화 '서편제' '불림소리' 등 국악 음반을 선보였다.
최근 그는 지난 20여년간 국민 히트송으로 자리잡은 KBS 로고송을 새롭게 편곡해 업그레이드 했다.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 KBS 측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원곡의 선율은 살리면서 클래식, 노래, 퓨전국악, 랩, 크로스오버 등 5개 장르로 로고송을 탈바꿈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