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 뉴튼 존, 승리·희망 상징 된 팝스타의 족적[TF확대경]


유방암 투병 끝에 73세로 별세

70~80년대 전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로 군림한 올리비아 뉴튼 존이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공식 홈페이지 캡처

[더팩트 | 정병근 기자] 가장 성공한 뮤지컬 영화로 꼽히는 1978년작 '그리스'에서 샌디 올슨 역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배우이자 1981년 발표한 곡 'Physical(피지컬)'로 당시만 해도 최장 기록인 빌보드 핫100 10주 연속 1위를 차지한 싱어송라이터. 70~80년대 전 세계를 풍미한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John)이 향년 73세로 눈을 감았다.

남편 존 이스털링은 8일(현지시간) SNS에 올리비아 뉴튼 존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에 위치한 자택에서 암 투병 중 별세했다고 밝혔다. 존 이스털링은 "올리비아가 오늘 아침 캘리포니아에 있는 목장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원히 잠들었다"고 알렸다.

존 이스털링은 "올리비아는 30년간 유방암과 여정을 함께한 승리와 희망의 상징이었다"고 돌아봤는데, 실제로 올리비아 뉴튼 존은 오랫동안 암과 싸우면서도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다.

1948년생인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66년 'Let Me Be There(렛 미 비 데어)'로 영국에서 먼저 데뷔했고 70년대 미국에서 컨트리 음악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1974년 발표한 'I Honestly Love You(아이 어니스틀리 러브 유)'로 그래미 4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최우수 여성 팝 보컬리스트와 올해의 레코드 부문을 수상하며 인기와 명예를 다 얻었다.

꾸준히 히트곡을 만들어낸 그녀가 전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1978년 존 트라볼타와 호흡을 맞춘 영화 '그리스'다. 영화는 물론이고 사운드트랙까지 대성공을 거두면서 올리비아 뉴튼 존은 글로벌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뮤지컬 영화로 꼽히는 그리스로 글로벌 슈퍼스타로 발돋움했고 가수로서도 그래미 어줘즈에서 총 4차례 수상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올리비아 뉴튼 존 SNS

1981년 가수로서도 정점을 찍게 된다. 섹시한 콘셉트로 이미지를 확 바꾼 'Physical'은 빌보드 핫100에서 10주 연속 1위에 올랐다. 에어로빅 장면이 담긴 뮤직비디오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신드롬을 일으킨 'Physical'은 1982년 연말차트 1위를 비롯해 1980년대 결산차트에도 정상에 올랐다. 그의 음악 인생에서 화룡점정이라 할 만한 업적이다.

1984년 첫 번째 결혼 후 1986년 딸을 출산한 그는 44세이던 1992년 새 앨범을 발표한 직후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서 시련을 겪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기에 음악적으로 도약을 이뤄냈다. 1994년 발표한 'Gaia: One Woman's Journey(가이아: 원 우먼스 저니)'는 그가 처음으로 모든 곡 작곡 작사를 한 앨범이었다.

1995년 이혼의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오랜 투병을 이겨내고 건강을 회복한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98년 활동을 재개했고 배우와 가수로 꾸준히 활약했다.

특히 그는 환경 및 동물 권리 문제에도 힘썼다. 또 유방암 연구의 주요 후원자로 자선단체 '올리비아 뉴튼 존 파운데이션'을 결성했으며, 수백만 달러의 연구기금을 조성해 연구단체에 쾌척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 받아 2020년 대영제국 훈장 중 2등급인 '사령관 기사'로 선정돼 데임(DAME. 남성의 기사 작위와 동급) 작위를 받았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2008년 사업가 존 이스털링과 결혼해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2019년 암 재발로 세 번째 투병 생활을 했다. 존 이스털링이 그의 마지막을 지켰다.

kafka@tf.co.kr
[연예부 | ssent@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