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더 싱그러워진 것 같아요." 인터뷰에 앞서 3년 만에 만난 신예은에게 인사를 건넸다. 실제로 그는 신인 때의 풋풋함과는 다른 해사함이 물씬 묻어났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신예은의 인터뷰 일정을 잡은 후, 당일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신예은을 처음 만난 건 3년 전인 2019년 tvN '사이코메트리 그녀석'(이하 '그녀석') 종영 인터뷰 때였다. 당시 갓 데뷔한 신예은의 해맑은 매력은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때문에 3년이라는 시간을 겪으며 신예은도 나도 조금은 더 성숙해지고 안정이 된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마주할지 궁금했고 기대됐다.
신예은은 그때를 '무(無)의 상태'였다고 표현했다. 뭐가 뭔지도 모른 채 바쁜 스케줄을 소화한 탓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단다. 그러나 한 사람이 지닌 본연의 매력은 숨길 수 없는 법이다. 뻔한 모습만을 보여줬다는 신예은이지만, 그때만의 솔직함이 있었고 오히려 흰 도화지 같은 매력이 빛이 나는 배우였다.
그리고 여유라는 색과 경험의 색을 더한 그는 이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줄 아는 배우가 됐다. 짧지 않은 시간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은 신예은에게서는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졌고, 이는 그의 싱그러운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신예은은 최근 종영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유미의 세포들 시즌2'(극본 송재정, 연출 이상엽, 이하 '유미의 세포들2')에서 대한국수 제주지사의 인턴 유다은 역을 맡아 사랑스러운 매력을 뽐냈다. 극 중 유다은은 유바비(박진영 분)를 짝사랑하는 사회초년생 인턴으로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음이 터지는 밝고 명랑한 매력의 인물이다.
다만 원작에서 유다은은 주인공인 김유미(김고은 분)과 유바비의 관계에 난입해 두 사람의 애정전선을 뒤흔드는 만큼 호감을 사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비록 드라마에서 결말이 각색됐을지라도 시청자들의 미움을 피하긴 힘든 인물이었다. 그동안 청춘 로코의 주인공을 주로 맡아왔던 신예은으로서는 충분히 부담될 법한 캐릭터인 셈이다.
정작 신예은은 오히려 그 점을 매력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항상 사랑받는 캐릭터만 하다 보니 인물 자체가 색달라서 끌렸다. 원작이 워낙 유명한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 캐릭터를 잘 소화한다면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다수의 사람에게 욕을 먹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다. 신예은은 이번에도 오히려 욕을 안 먹는 것이 더 싫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은이를 연기하면서 욕을 안 먹는다면 오히려 안 좋다고 생각하고 임했어요. 다은이에게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야 유미와 바비 등 다른 인물들이 더 사니까요. 시청자들이 봤을 때 '다은이가 나쁜 애인지 모르겠다'가 되면 제 역할을 못 한 게 된다는 부담과 두려움이 더 컸죠."
유다은에게는 미워할 수 없는 지점도 있었다. 감정에 뜨거운 청춘답게 쉽게 사랑에 빠지는 '금사빠'며 연애 경험이 없던 그는 자신의 마음에 충실했다. 신예은도 악의 없는 순수함에 집중했다. 그는 "다은이의 기본 바탕은 때 묻지 않은 순수라고 생각한다. 감독님 역시 다은이를 디테일한 면에서 나쁜 인물로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나쁜 행동이었지만, 악의를 가진 게 아닌 해맑은 마음에서 비롯된 감정이라 생각하며 최대한 접근하려 했다"고 전했다.
여기에 더해진 신예은의 환한 웃음은 이 감독과 신예은이 구상한 유다은을 완벽하게 형상화했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은 원작보다 드라마에서의 유다은을 크게 미워하지 못했다. 짜증과 귀여움을 동시에 유발하는 신예은표 해맑음 때문이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유다은 역을 신예은이 연기한다는 자체가 반칙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이에 신예은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모든 사람이 내게 손가락질하며 나쁘다고 해도 그 자체가 감사하고 행복했다. 다은이가 그만 등장했으면 한다는 반응도 그만큼 꼴 보기 싫을 정도로 연기를 했다는 의미니까 내심 뿌듯했었다. 그런데 이런 좋은 평가까지 뒤따르니까"라며 웃어 보였다.
'싱크로율 200% 유다은'의 탄생에는 신예은의 고민과 노력이 들어가 있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처음으로 스타일링 제안을 하기도 했다. "조금 욕심을 냈다"며 수줍게 고백한 그는 PPT까지 직접 만들어 스타일리스트들과 아이디어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또한 열정적인 사회 초년생을 연기하기 위해 본래 목소리보다 톤을 높였고, 터벅터벅 걷는 대신 다은이만의 걸음걸이를 연구했다. 외적인 모습에서의 싱크로율은 "타고난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신예은의 '유미의 세포들2' 출연은 그동안 그를 기다려온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기도 했다. 단막극을 제외하곤 지난 2020년 11월에 종영한 '경우의 수' 이후 1년 반 만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근황을 묻자 그는 "쉬는 것을 도전했다"고 답했다.
"데뷔 후에 한 달 이상을 쉬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쉰다는 것 자체가 어렵고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쉼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느꼈어요. 너무 달리다 보니 제가 저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됐죠. 물론 더 뛰라면 달릴 수는 있었어요. 하지만 헥헥거리면서 뛸 바에는 잠시 벤치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면서 여유를 갖고 싶었어요. 그러면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고요. 덕분에 후회 없이 잘 쉬었죠.(웃음)"
그리고 쉼을 통해 확실히 한층 더 성숙해진 신예은이었다. 스스로도 여유가 생겼고 마음이 건강해졌단다.
신예은은 "원래는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비교적 넓은 그릇의 사람이 됐다. 물론 앞만 보고 달리는 것도 좋지만, 그러다 보면 내가 놓치는 부분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데뷔한 지 얼마 안 돼 아는 게 없다 보니 놓치는 게 더 많을 것 같았다. 스스로 점점 성장하고 나아가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가는 것보다 나를 더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고 앞으로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1년 차의 신예은은 기계적인 사람이었던 반면 5년 차인 그는 '진짜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무조건 옳은 대답만 해야 하고, 어떤 순간에도 계속 웃어야 하며, 정해진 모습만을 보여줘야 한다고 정의했던 것들을 모두 비워냈다. 사람은 다양한 모습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부족한 점을 보이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어렵다고,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했어요. 예전에는 어려운 장면 앞에서 혼자 끙끙 앓으며 고민했다면, 지금은 감독님에게 물어보거나 상대배우와 상의하는 편이에요. 데뷔 초에는 생각이 너무 많았죠. 빠른 시간에 기회를 잡다 보니 무조건 잘되고 싶었고 잘 보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불안과 걱정, 고민도 많아졌고요. 그때 들은 말이 '배우로서가 아니라 네가 잘되고 싶었던 게 아니냐'는 이야기였어요. 아차 싶더라고요. 연기가 좋아서 시작했는데, 왜 그 외의 것들을 바라고 원하고 있는지 의문이었죠. 그때부터 오로지 연기만 보고 나아가자고 다짐했어요. 확실히 더 솔직한 저를 보여줄 수 있게 된 지금이 너무 편해요."
데뷔 1년 차의 신예은은 '믿음'과 '신뢰'를 주로 이야기했었다. 그렇다면 5년 차인 현재 신예은의 주된 키워드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신예은은 "편안함"을 추가했다. 그는 "믿음과 신뢰는 지금도 여전히 가져가야 하는 부분"이라며 "다만 지금은 조금 더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시청자들과의 관계에서 편안했으면 해요. 누구 하나 힘을 주면 그건 편한 관계가 아닌 것 같아요. 연기하는 저도 저를 보는 시청자도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거리를 두게 되죠. 저는 계속 편안한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느끼는 편안함과 여기서 비롯되는 연기가 시청자들에게까지 편안하게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신인 때는 부담감이 커서 하고 싶어도 힘들었죠(웃음). 하지만 데뷔 4주년을 넘어선 제가 아직도 신인의 부담감이 있다고 하는 건 너무 핑계죠. 이제는 스스로 자리 잡고 혼자만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걸 잘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부담을 내려놓고 '편안한 배우'로 각인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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