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가 밝고 젊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방송가에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다. 전통적으로 중장년층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트로트 팬층도 훨씬 넓고 깊고 다양해졌다. 덕분에 잊혔던 곡들이 리바이벌 돼 역주행 신화를 만들기도 한다. 누구나 무명시절은 있기 마련이고 터닝포인트도 있다. 수많은 히트곡을 낸 레전드 가수들 역시 인생을 바꾼, 또는 족적을 남긴 자신만의 인생곡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단 한 두 곡의 히트곡만을 낸 가수들이라면 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다. 가수 본인한테는 물론 가요계와 팬들이 인정하는 자타공인 트로트 인생곡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나이가 든다는 게 화가 나'는 가수 김충훈의 대표곡이다. TV조선 '미스트롯2' 토크콘서트 PART2에서 별사랑이 불러 주목을 받았고, 류은미 윤정아 등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명품 커버송으로 유튜브에 소개했다.
김충훈은 80년대 록 밴드 '세븐 돌핀스'에서 리드 보컬로 활동한 뮤지션이다. '나이가 든다는 게 화가 나'는 2009년 '오빠가 왔다'에 이어 근 10년여년 만에 선보인 곡이다. 록밴드 시절 특유의 미성 보컬과 잔잔한 중저음 매력을 트로트로 발산하며 꾸준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 곡은 우선 나이, 상처, 배신에 굴하지 않고 인생 후반기를 당당히 열고 개척해간다는 각오가 공감대로 다가선다. 혈기 왕성한 젊은날을 바쁘게 정신없이 살다 어느날 문득 나이 든 자신의 삶과 인생을 되돌아본다는 내용이다. 김충훈은 자신의 얘기를 중년들의 심정으로 풀어냈다.
'나이가 든다는게 화가나 지나간 시간들이 아쉬워/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세상에 떠다니는 나/ 늙어 간다는게 창피한 일도 아닌데/ 저 멀리 지는 석양과 닮아서 맘이 서글퍼/ 길을 잃어도 좋아 두렵지도 않을 나이야/ 이별 두번 한대도 웃어넘길 그럴 나이야'(김충훈의 '나이가 든다는 게 화가 나)
가사는 후배가수 진시몬이 썼다. 만화가 이현세의 넋두리 한 마디가 결정적 모티브로 작용했다고 한다. 진시몬과 호형호제하는 이현세 씨가 어느날 '시몬아, 요즘 나이 드는 게 왜 이리 화가 나냐?'라고 툭 던졌고 그 내용이 곧바로 가사로 탄생했다.
"지나가듯 툭 던진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생각이 났다고 해요. 저와 시몬이는 가요계 오랜 절친 선후배 사이라 수시로 음악적 교감을 해왔거든요. 어느날 저한테 딱 어울리는 곡을 찾았다며 직접 부른 가이드 곡을 들고 왔는데 그야말로 단번에 꽂혔어요."
진시몬은 이후 만화가 이현세를 찾아다니며 가사를 수정 보완한 뒤 신예 작곡가 김동철에게 맡겼고 지금의 노래가 탄생됐다. 슬로템포의 이 곡은 전국 가요강사들의 노래교실을 통해 급속히 입소문이 났다. 중장년들의 공감대가 히트 비결이 됐다.
"중년들이라면 신체적으로는 젊고 건강한데 쌓여가는 나이를 생각하면 많이 아쉽죠. 살다보면 숱한 희로애락을 경험하는데 아직 해야할 일들이 많으니 나이를 한탄할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지나온 날들에 대한 회한만 하고 있을 수는 없죠."
폭발적인 바람몰이는 아니지만 그는 이 곡을 통해 가수활동 40여년만에 비로소 확실한 존재감을 알렸다. 그에겐 자신만의 깊이있는 음악 세계가 먼저임을 부인하지 않지만, 아들이 유명 배우(김수현)란 사실이 알려진 뒤 대중적 주목을 더 크게 받았다.
김충훈의 원래 음악세계는 원래 언더클럽을 기반으로 한 록 발라드다. 유명 작사 작곡가(양인자 김희갑) 부부의 권유를 받아 2009년 솔로 앨범을 내기까지 주로 부산을 기반으로 록밴드 활동을 했다. 그는 연예계 대표적인 축구광이기도 하다. 33년간 연예인축구단 '회오리'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