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이서영'] 걸그룹 잔상 지워준 '뮤지컬 배우'


걸그룹 멤버에서 뮤지컬 배우로, '말리의 어제보다 특별한 오늘'로

걸그룹 헬로비너스로 활동했던 이서영은 2019년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시즌8을 시작으로 최근 말리의 어제보다 특별한 오늘까지 다양한 작품 무대에 오르며 뮤지컬 배우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얼반웍스 제공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정병근 기자] 비록 조금 느리지만 정성껏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니 어느새 꽤 선명한 그만의 길이 생겼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이 시점이 기대된다. 무대에서 즐거워하는 내 모습이 상상이 된다"는 이서영은 어쩌면 8년 전 걸그룹 헬로비너스로 데뷔할 때도 지금을 그려봤을지 모른다. 알찬 하루가 모이면 꿈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서영은 예술중학교와 예술고등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지만 어릴 때부터 품어온 가수의 꿈을 좇았고 2014년 11월 헬로비너스의 신곡 활동부터 새 멤버로 합류했다. 5년여의 활동 끝에 2019년 5월 팀이 해체됐고 이서영은 뮤지컬 배우로 새 출발, '사랑은 비를 타고 시즌8'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일곱 작품의 무대에 섰다. 이서영이 걸어온 길을 요약하면 이랬다.

그리고 인터뷰 당일. 헐렁한 청바지와 적당히 구겨진 운동화에 흰 티셔츠를 툭 걸친, 화장기 없는 이서영의 모습이 좀 의외였다. 화려한 의상에 짙은 화장을 하고 무대에 섰던 헬로비너스 시절의 잔상이 남아있던 탓이다. 편안한 복장에 더해 노력으로 점철되는 지난날과 그래서 더 소중한 현재를 털털하면서도 진중하게 말하는 모습이 걸그룹의 잔상을 모두 지워줬다.

이서영은 데뷔할 때부터 남들보다 더 연습에 충실해야 했다. 부모님을 설득해 겨우 오디션을 볼 수 있는 허락을 받은 이서영은 첫 오디션에서 합격했고 불과 3개월 뒤에 헬로비너스 멤버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것도 팀의 메인 보컬이었다. 새로운 발성을 익히고 팀에 녹아들기 위한 방법은 연습실에서 사는 거였다. 그때부터 '연습실 요정'으로 불렸다.

"성악을 오래 하다 보니 가요나 팝송은 부를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발성이 달라진다고 선생님께서 듣는 것도 자제하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오디션에서 덜컥 합격하고 연습생 시작이 데뷔 시작이었어요. 부족한 걸 아니까 그걸 채워야 했고 그러려면 계속 공부를 해야 했어요. 팀 해체 즈음에도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니까 열심히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이서영은 최근 막을 내린 넥스트 투 노멀에서 나탈리 역을 맡아 박칼린, 남경주 등 쟁쟁한 선배들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매 순간 행복하고 특별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얼반웍스 제공

이서영은 연습 중에 틈틈이 뮤지컬 준비를 했다. 솔로로 활동을 하게 되면 뭘 하고 싶냐는 물음에 늘 고민 없이 뮤지컬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애정이 컸기 때문이다. 헬로비너스 막바지에는 뮤지컬 오디션을 찾아 수차례 도전하기도 했다. 여러 번 고배를 들었지만 좌절하지 않았고 더 연습에 매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찾아 왔다. '사랑은 비를 타고 시즌8'이다.

'사랑은 비를 타고 시즌8'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서영은 시즌9에도 캐스팅됐고 이후 '달을 품은 슈퍼맨', '위대한 캐츠비', '원더티켓'을 거치면서 뮤지컬 배우로 입지를 다졌다. 올해는 '넥스트 투 노멀'에서 나탈리 역으로 박칼린, 남경주 등 쟁쟁한 선배들과 호흡을 맞췄다. 더불어 '말리의 어제보다 특별한 오늘'에서 타이틀롤 서말리 역으로 또 한 번 도전을 시작했다.

"'넥스트 투 노멀' 국내 공연을 또 언제 하게 될지 그때도 제가 다시 서게 될지 모르잖아요. 오디션을 한다고 했을 때 정말 최선을 다했고 감사하게도 어마어마한 선배님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매 순간 행복하고 특별했어요. 기회가 된다면 또 나탈리로 꼭 무대에 서고 싶어요."

지난달 31일 '넥스트 투 노멀' 마지막 공연을 마친 이서영은 7월 9일 시작한 '말리의 어제보다 특별한 오늘'에 임하고 있다. 아역스타로 사랑을 독차지했던 18살 말리가 불의의 사고로 가족과 함께 도망치듯 영국으로 이민을 간 뒤 애착 인형 더기의 시점에서 11살의 말리를 바라보며 겪는 성장통을 다룬 작품이다.

이서영은 현재 말리의 어제보다 특별한 오늘에서 서말리 역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그는 제 안에서 말리를 찾고 말리 안에서 저를 찾으면서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얼반웍스 제공

DIMP(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창작뮤지컬상을 수상한 '말리의 어제보다 특별한 오늘'은 이서영에게 또 한 번 큰 도전이자 유의미한 작품이다. 그는 총 100분의 러닝타임 중 97분간 무대에 선다. 임소라와 더블 캐스팅으로 40회 차 중 20회 차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3분 빼고 다 나오니까 제가 과연 잘 이끌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소라 언니가 처음 말리 캐릭터를 만드셨고 전 거기에 저 생각을 입혔어요. 제 안에서 말리를 찾고 말리 안에서 저를 찾으면서 만들어가고 있어요. 처음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참 소중하고 작품에 제 생각이나 의견이 반영되고 캐릭터 안에 저를 투영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또 한 번 큰 도전을 시작한 이서영은 여전히 연습실에 산다. 쉼없는 하루하루가 모여 지나온 8년에 지칠 법도 했지만 이서영은 "해냈을 때의 쾌감이랑 희열이 너무 좋아서 힘들었던 게 다 잊힌다"고 말했다. 그때의 감정에 서서히 물들 듯 이서영의 얼굴에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가 번졌다.

"나만 느린 거 같고 걱정이 많은데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거라 그 과정이 즐거워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조금씩 느끼는 거 같아요.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고 배울 거니까 앞으로가,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기대돼요. 무대에서 재미있게 노는 모습이 상상이 돼요. 감사한 마음으로 이렇게 계속 해나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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