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배우 김희선에게는 늘 '재발견'이 뒤따른다. "처음에는 '내가 이렇게 존재감이 없었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안 좋았다"고 솔직하게 말한 그는 언젠가부터 이 수식어를 즐기고 있다. 전작에서 핑크색 단발머리로 강렬한 변신을 펼친 김희선은 '블랙의 신부'로 최다 기록의 재발견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김희선은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의 신부'(극본 이근영, 연출 김정민)에서 복수를 위해 욕망의 레이스에 뛰어든 서혜승 역을 맡아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한국에만 있는 결혼정보회사라는 소재는 신선하지만,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 통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공존했다. 하지만 '블랙의 신부'는 공개 이틀 만에 월드 랭킹 8위, 국내 랭킹 2위를 차지하며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이에 김희선은 "너무 기쁜데 실감이 않나요. 인기를 체감할 수 있는 방법은 SNS 팔로워 수죠. 계속 늘어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결혼정보회사는 한국에만 있지만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건 당연한 거죠. 욕망이 무조건 거칠고 나쁜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욕심부릴 수 있는 마음이고, 이건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죠."
작품은 베일에 싸인 상류층 결혼 비즈니스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복수와 욕망의 스캔들을 그린다. 서혜승은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던 중 남편의 외도와 죽음을 겪는다. 이후 그는 해당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진유희(정유진 분)를 결혼정보회사에서 우연히 만나고, 복수를 위한 욕망의 레이스에 뛰어든다. 김희선은 배우 이전에 엄마이자 아내로서 때로는 공감을, 때로는 아픔을 느끼며 캐릭터에 더욱 몰입했다.
"저희 딸도 중학생이에요. 혜승이가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절은 제가 집에 있을 때를 많이 떠올렸어요. 혜승이가 남편과 화목한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스피디한 전개를 위해 편집하신 거 같아요. 처음에 혜승이가 남편이랑 그냥 살려고 하지만 결국은 자기의 삶을 위해 남편을 보내주는 거 같아요. 바람난 남편이랑 살면 아이에게는 정서적으로 불안함을 주고, 자신도 결국 행복하지 않을 거예요. 이런 혜승이를 연기하면서 너무 슬펐죠. 만약에 저라면 남편이 너무 밉지만 쿨하게 헤어질 거 같아요."
그런가 하면 김희선은 자신의 실제 성격과 너무나도 다른 인물을 연기하면서 답답한 지점도 많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서혜승은 매 순간 차분함을 유지하며 진유희를 상대했지만, 이를 연기한 김희선은 "저였다면 머리채 잡고 뺨 때렸죠"라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인간 김희선으로서 혜승이가 너무 답답했어요. 남편을 죽게 하고 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과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신기했죠. 물론 가장 높은 위치에서 끌어내리려는 혜승이의 큰 그림이 있었지만요. 이번에 연기하면서 '내 감정에 충실해서 욱하면 안 되겠다'라는 걸 배웠어요."
올해로 결혼 16년 차인 김희선은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결혼은 비즈니스입니다'를 꼽았다. '블랙의 신부'에서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 아닌 각자의 욕망과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김희선에게 '비즈니스'는 오로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여러 각도로 해석할 수 있는 단어였고, 그렇게 작품과는 다른 결로 이 대사를 받아들였다.
"비즈니스라고 해서 이익만 추구하는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혼해도 각자의 영역과 공통의 영역이 있고, 이를 존중하면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나만의 시간을 보내면, 가족과의 시간도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죠. 결혼해서 사는 모든 과정이 다 비즈니스랑 비슷한 거 같아요.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면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1993년 CF 모델로 데뷔한 김희선은 그해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이후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며 대체 불가한 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는 어느덧 데뷔 30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이 가운데 '블랙의 신부'로 첫 OTT 작품을 하게 된 김희선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촬영 현장을 비롯해 200여 개 국가의 시청자들과 동시에 만나는 감회를 솔직하게 전했다.
"그동안은 시간에 쫓겨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배우들에게 시간을 많이 할애해주셨어요. 극 중 가면 파티 신을 열흘 동안 찍었는데, 긴 시간 회의 끝에 촬영을 아예 접고 배우들에게 가면을 수정할 시간을 주셨죠. 제작사와 넷플릭스, 감독님이 배우들에게 양보해주신 거예요. 이게 시간이나 제작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중파나 지상파에서는 무리거든요. 정말 새로웠고 감사했어요."
"200여 개 국가에 동시 방영되는 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라떼는~'으로 말하자면 중국이나 일본 정도에만 방영됐잖아요. 시대가 변한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넷플릭스가 배우들에게 전 세계에 알릴 기회를 줬으니까 저도 열심히 발맞춰 따라가려고요."
김희선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모의 여배우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는 매 작품 자기 변주를 꾀하며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미모만 내세우는 한정적인 역할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다. 데뷔 30주년을 앞둔 배테랑이지만, 김희선은 지금껏 늘 그래왔듯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저는 해보지 않은 걸 시도하려고 해요. 의도적으로 전과 다른 걸 선택하려고 하죠. 예전에는 여배우가 결혼하면 한정적인 역할만 할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다양한 장르가 열려있고, 이는 저에게 너무 좋은 기회죠. 그래서 해보지 않은 역할을 계속해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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