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 역사 산증인 송해, '원조 국민 MC' 찬란했던 인생사


황해도 출신…서하지통 딛고 34년 간 '전국노래자랑' 지킨 '송해 오빠'

송해가 2019년 1월 서울 종로구 낙원동 상록회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더팩트ㅣ이한림 기자] "전국~ 노래자랑!"

한국 방송계 역사의 산증인 송해가 하늘의 별이 됐다. 95세 고령의 나이에도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MC를 맡으며 기네스에도 등재된 그의 찬란했던 인생사가 주목을 받는다.

1927년생인 송해는 본업이 코미디언으로 알려졌지만,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1951년 6.25 한국전쟁 당시 피난 대열에 섞여 월남한 후 '창공악극단'이라는 이름의 순회 악단에서 가수로 데뷔한 경력이 있다. 20대 때 황해도 해주예술전문학교에서 성악과를 전공한 영향이다.

특히 창공악극단에서 특유의 쾌활한 성격으로 진행을 맡아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레 MC 경험을 쌓기도 했다. 이후 TV 방송이 시작한 후 코미디언으로 방송가를 누볐으며, 현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TBC동양방송에서 매일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를 진행해 17년 간 코미디언과 MC로 활약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송해에게도 아픔이 있었다. 1986년 당시 20살이던 아들이 서울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숨졌기 때문이다. 슬하에 1남 2녀를 둔 송해는 외아들을 잃은 아픔에 방송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후 그에게 다시 찾아온 행운이 '전국노래자랑'이다. 1980년 11월 첫 방송됐던 KBS1 '전국노래자랑' 측은 1988년 그해 나이 환갑이던 송해에게 MC 자리를 줬으며, 개편으로 인한 7개월 간 공백(1994년)을 제외하면 2022년까지 34년 간 송해를 '원조 국민 MC' '송해 오빠' '전국노래자랑 할아버지' '일요일의 남자'로 불리게 했다.

송해는 1988년부터 2022년까지 34년 간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아 단일 프로그램 연속 진행 최장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07년 12월 KBS1 전국노래자랑 서울 중랑구 편 예선 및 본선인 열릴 당시 송해(가운데)와 참가자들의 모습. /더팩트 DB

송해와 '전국노래자랑'은 국내는 물론 세계 방송가에서 수 많은 기록을 썼다. 세계 기네스에도 등재된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는 물론, 역대 한국 현역 방송인 역사상 가장 장수한 최연장자, 국내 단일 프로그램 연속 진행 최장수 기록 등이다.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KBS 연예대상 공로상,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한국방송대상 공로상,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수상 등도 그의 오랜 방송 인생을 더욱 빛나게 했다.

그러나 송해가 고령의 방송인인만큼 대중에게는 늘 그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 관심사였다. 올해만 해도 1월 건강 이상으로 입원, 3월에는 코로나19 확진 등 여러차례 건강 문제로 병원을 드나들기도 했다. 이후 다행히도 4월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전국노래자랑' 녹화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나, 5월 14일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했고 3일 뒤 제작진에게 "더 이상 진행을 맡는 게 어렵지 않겠나"며 하차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팬데믹 이후 2년 만에 '전국노래자랑' 야외 현장녹화가 열린 지난 6월 4일에도 송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시 송해 측은 "건강에 큰 이상은 아니며 나이가 있다보니 지방까지 장시간 이동이 부담스러워서 현장 녹화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후 나흘이 지난 8일 최고령 현역 방송인 송해는 자택에서 별세했다. 유족으로는 두 딸이 있으며, 아내인 고(故) 석옥이 여사는 지난 2018년 먼저 떠나보냈다. 송해는 아내의 영결식에서 "편안하게 하늘나라에 가서 아무 생각 다 내려놓고 그저 못한 일만 생각하면서 나 올 때까지 기다려요. 내가 가서 다 풀어줄게 안녕 잘 가오"라는 송사를 지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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