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ㅣ 강일홍 기자] 트로트 가수 정정아는 아버지의 영향을 유독 많이 받은 가수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 작곡가 정종택이다. 약사 출신 주현미를 메들리 음반 '쌍쌍파티'로 일약 스타로 만들고, '비내리는 영동교'로 정식 데뷔시켰다. 주현미가 중학교 2학년 때 음악레슨을 받은 스승이다.
"대학 진학 후에도 저는 가수할 마음은 별로 없었어요. 아버지 사무실에 수많은 가수지망생들이 드나들어도 저와는 관계 없는 일로 생각했거든요. 아버지의 꿈이 원래 가수였는데 할아버지 반대로 무산돼 작곡가로 전업했고, 당신이 못다 이룬 꿈을 저한테 떠민 셈이죠."
정정아가 가수의 길을 선택한 데는 자신의 의지보다는 아버지의 뜻이 더 크게 반영된 결과다. 아버지의 집중 레슨을 거친 그는 2001년 MBC 주최 제2회 향토가요제에서 '못잊을 완도항'으로 금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는다.
이후에도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곡가 사무실에서 조교처럼 다른 가수 지망생들의 음악수업 등을 보조하며 음악공부에 매진한 뒤 '정정아의 떳다 디스코 메들리'로 가요계의 문을 두드린다. 2003년 데뷔 당시 부른 '코흘리개'도 아버지가 직접 작곡했다.
가수로서 정정아의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준 노래는 댄스가 가미된 경쾌한 리듬의 '오라지'(2006년, 리피타이저 작곡)다. 이 곡은 이전까지 그가 부르던 정통트로트 스타일을 벗어난 빠르고 신나는 세미트로트여서 마침 중흥기를 맞은 성인가요 트렌드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오라지 오라지 오라지 내게로 가까이 오라지/ 가진 건 없어도 그냥 오라지 그러면 정도 주지/ 하지만 너는 왜 모르니 애타는 내 맘을 모르니/ 언제 어디서나 너만 좋으면 그러면 사랑 주지/ 그래 모두 마찬가지 인생이기에 정답은 없어(중략)/ 누가 뭐라 한다 해도 끝까지 지켜줄 거야'(정정아 '오라지' 가사 1절)
이 곡이 바람을 타기 시작하자 무엇보다 행사장에서부터 빠르게 반응이 왔다. 덕분에 데뷔 5년만에 그는 전국의 행사장을 누비는 인기가수로 발돋움한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비주얼 중심의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건 규모가 작은 영세한 소속사 역량의 한계 때문이었다고 한다.
"요즘엔 세미트로트가 대세잖아요. 리듬을 타면서 가볍게 어깨를 들썩이는 장르죠. 가사를 음미하며 잔잔하게 이어지는 기존 정통트로트와는 분위기부터 달라요. 그런데도 노래에 대한 관심만큼 TV 출연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게 가장 아쉽죠."
대중 히트곡을 내야하는 가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만을 고수할 수 없다. 그 역시 6번이나 녹음을 반복할만큼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원래 저는 꼬불꼬불 라면같은 창법이 익숙한데, 국수같은 스탠더드를 만들다보니 적응하는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2009년 그는 잔잔하고 이국적인 발라드 풍의 '꽃비 여인'으로 스타일 변신을 시도했다. 작곡가 김정호가 곡을 쓴 이 곡은 '꽃나비 사랑'(이상번) '꽃을 든 남자'(최석준)과 함께 꽃 시리즈 노래로, 지금도 팬들한테는 귀에 익은 노래로 각광을 받고 있다.
활달하고 화통한 성격임에도 평소엔 워낙 차분하고 조용해 '천상 여자'란 소릴 듣지만 무대에 오르면 분위기가 180도 바뀌는 열정 가수다. 동료가수들 중엔 유지나 서주경 등과 절친이다. 3년전 발표한 정통트로트 '당신 때문에'도 잔잔한 반응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