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가 밝고 젊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방송가에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다. 전통적으로 중장년층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트로트 팬층도 훨씬 넓고 깊고 다양해졌다. 덕분에 잊혔던 곡들이 리바이벌 돼 역주행 신화를 만들기도 한다. 누구나 무명시절은 있기 마련이고 터닝포인트도 있다. 수많은 히트곡을 낸 레전드 가수들 역시 인생을 바꾼, 또는 족적을 남긴 자신만의 인생곡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단 한 두 곡의 히트곡만을 낸 가수들이라면 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다. 가수 본인한테는 물론 가요계와 팬들이 인정하는 자타공인 트로트 인생곡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 ㅣ 강일홍 기자] 가수 박정식이 부른 '천년바위'는 깊이가 남다르다. 대중가요이면서도 가사가 매우 철학적이고 심오하다. 이 노래를 MBN '보이스트롯'에서 불러 심금을 울린 청학동 훈장 김봉곤의 초등학생 딸 김다현은 곡을 이해할 수 없어 마니산 정상에 올라 그 느낌을 깨우쳤다고 한다.
이 곡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리바이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오리지널 원곡 가수 박정식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당차고 색다른 느낌으로 깊은 존재감을 일깨운 김다현은 이듬해 TV조선 '미스트롯2'에서 최종 3위에 오를만큼 실력을 인정받는다.
'동녘 저편에 먼동이 트면 철새처럼 떠나리라/ 세상 어딘가 마음 줄 곳을 집시 되어 찾으리라/ 생은 무엇인가요 삶은 무엇인가요/ 부질없는 욕심으로 살아야만 하나/ 서산 저 너머 해가 기울면 접으리라 날개를/ 내가 숨 쉬고 내가 있는 곳 기쁨으로 밝히리라'(박정식의 '천년바위' 가사 1절)
박정식의 인생곡 '천년바위'(장욱조 작곡)는 전형적인 왈츠 장르(4분의 3박자)의 국악가요다. 원래 다른가수가 한 차례 불렀으나 반응이 없어 잊혔던 곡이다. 박정식이 다시 부르면서 가사 구성과 편곡을 달리했다. 무엇보다 판소리 느낌을 가미해 완전히 분위기를 바꿨다.
"오디션에 출전한 김다현이 '천년바위'를 선곡한 뒤 저한테 잠깐 레슨을 받은 적이 있어요. 서초동 녹음실에서 특별 레슨을 했는데 깜짝 놀랐죠. 초등 5학년 어린아이인데도 구음(口音)을 옥타브로 올리는걸 보고 비범하다고 생각했어요. 더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대로 척척 소화를 해냈다는 점이에요."
김다현의 울컥한 '천년바위' 감동에는 알고보면 원곡가수 박정식의 가르침이 숨어 있었던 셈이다. 박정식은 "노래는 음의 '고저'와 '청탁' '강약 등 6가지가 적절히 버무려져야 빛이 난다"면서 "다현 양은 어린 나이임에도 맛과 묘미를 제대로 살려냈다"고 칭찬했다.
박정식 역시 어려서부터 뛰어난 음감을 발휘했던 주인공이다. 초등학교 1학년때 학예회에서 '성주풀이'를 열창해 일찌감치 신동가수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는 민요를 좋아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음감을 타고났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나에겐 노래 아니면 삶의 의미가 없다.'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은 철이 들수록 강렬해졌다. 박정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해 가수의 꿈을 키운다. 81년 지인을 통해 만난 작곡가 겸 가수 장욱조와의 인연은 고달픈 여정이 됐지만 결국 가요계로 진출하는 통로로 이어졌다.
"처음엔 가수가 되고 싶다는 저를 극구 말리더라고요. 가수로 인정받는 길이 험난하고 힘들다는 게 첫번째 이유였는데 결국 제 고집과 집념에 손을 들고 수제자로 맞아주셨어요.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기회를 잡은 것이라서 사무실 허드렛일부터 뭐든 시키는 건 다했죠."
낮에는 작곡가 사무실에서 음악공부를 하고 밤엔 밤업소에서 돈벌이를 했다. 종로 2가에 있던 극장쇼에서 마이크를 잡고 처음 부른 노래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 당시 그는 조용필의 음악 스타일에 깊이 매료돼 그의 모창을 즐겨하던 때였다.
언더에서 긴 무명시절을 지낸 그는 이후 15년만인 96년에야 자신의 음반을 가진 정식 가수로 입문한다. 하지만 그는 곡을 받아든 뒤 한동안 음반을 내지 못했다. 돈이 없어 다른 가수 녹음 때 불과 20분만에 곁다리로 부탁을 해 녹음을 끝내야하는 설움을 겪었다.
어찌보면 비정상일만큼 짧은 녹음 시간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곡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제나 저제나 녹음 기회만을 엿보며 1년 이상 매일 연습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빛을 본 1집 타이틀곡 '천년바위'는 그에게 불후의 인생곡으로 우뚝 섰다.
박정식은 보기드문 노력파다. 한동안 판소리 공부에도 깊이 빠져든 그는 한풀이 하듯 '천년바위'에 모든 것을 쏟아냈다. 이후 수많은 동료가수들이 이 곡을 리메이크 또는 커버송으로 흉내내 불렀지만 원곡가수의 깊은 맛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평가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