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가 밝고 젊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방송가에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다. 전통적으로 중장년층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트로트 팬층도 훨씬 넓고 깊고 다양해졌다. 덕분에 잊혔던 곡들이 리바이벌 돼 역주행 신화를 만들기도 한다. 누구나 무명시절은 있기 마련이고 터닝포인트도 있다. 수많은 히트곡을 낸 레전드 가수들 역시 인생을 바꾼, 또는 족적을 남긴 자신만의 인생곡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단 한 두 곡의 히트곡만을 낸 가수들이라면 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다. 가수 본인한테는 물론 가요계와 팬들이 인정하는 자타공인 트로트 인생곡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 ㅣ 강일홍 기자] 박주희는 시원시원하고 힘있는 가창력이 돋보이는 가수다. 트로트 가수이면서도 다소곳이 노래만 하는 정적인 스타일보다는 빠르고 신나는 춤과 노래를 소화하는 댄스 가수 이미지가 더 잘어울린다. 자연스럽게 데뷔 이후 아이돌 못지 않은 현란한 율동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인생곡 '자기야'는 그의 이런 이미지를 대중에 확실히 각인시킨 노래다. 2005년 음반을 내고 불과 6개월만에 전국을 강타한 이 곡은 말그대로 트로트 시장의 트렌드까지 바꿔놨다. 행사장에서 이른바 '먹히는 곡'으로 뜨면서 박상철의 '무조건', 장윤정의 '짠짜라' 등 빠른 곡들이 잇달아 발표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가요계에 발을 들인 건 2001년 '럭키'로 데뷔하면서다.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몰라 R&B 장르에 진출을 모색하던 중 우여곡절 끝에 가수 설운도에게 발탁돼 노래방 오디션을 받고 트로트로 전향했다. 아쉽게도 설운도 작사 작곡의 데뷔곡 '럭키'는 기대한만큼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
낭중지추, 실력은 언젠가 진가를 드러내게 돼 있다. 4년 뒤 또다른 가요계 선배를 만나면서 자신과 궁합이 맞는 노래와 인연을 맺는다. 우연히 행사장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본 태진아가 "주희 너한테는 같은 트로트라도 빠르고 신나는 곡이 잘 어울린다"며 새로운 곡을 추천했다.
이 곡이 바로 '자기야'다. 원래 이 곡은 2001년 태진아가 직접 부른 '사랑이란 그런 거야'였지만 박주희를 통해 전혀 다른 노래로 재탄생했다. 가사와 멜로디를 바꾸고 원작곡자인 프로듀서 이승수의 허락을 받아 태진아(작곡)와 이루(작사)의 이름을 올렸다. 이승수가 편곡했다.
'자기야 사랑인걸 정말 몰랐니 자기야 행복인걸 이젠 알겠니/ 자기를 만나서 사랑을 알았고 사랑을 하면서 철이 들었죠/ 나만의 사랑을 나만의 행복을 말로는 설명 할 수가 없잖아요/ 어쩜 좋아 자기가 좋아 멋진 그대 자기가 좋아/ 자기야 사랑인걸 정말 몰랐니 자기야 행복인걸 이젠 알겠니'(박주희 '자기야' 가사 1절)
박주희는 '자기야'가 뜨기 직전까지는 히트곡이 없어 행사장에 가면 으레 김현정의 '멍'같은 빠른 노래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곤했다. 그러다가 '자기야'가 바람을 타면서 어느 순간 객석에서 떼창이 나올만큼 일약 스타가수로 부상한다. 주최 측이 알아서 스케줄을 조절해줄만큼 행사 섭외가 봇물을 이뤘다.
"무명가수는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뜨고 나서야 인기란게 뭔지 실감이 났어요. 그 전까지는 늦을까봐 미리 가서 보통 1~2시간 기다리는게 예사였는데 그게 바뀐거죠. 하루에도 전국에 5~6개의 겹치기 출연이 시간대별로 몰리는게 예사였어요. 행사장에 도착하자마 무대에 올라가는 스타급 대접을 자주 받게 된거죠."
광주가 고향인 박주희는 조선대 법학과 출신이다. 원래는 부모님의 뜻을 따라 음악과는 전혀 상관 없는 법학을 전공하고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타고난 끼와 가수에 대한 꿈을 떨쳐내지 못해 대학 재학중 과내 음악 동아리에서 보컬로 활동했다. 대학 졸업 후엔 기획사 연습생 생활을 했다.
'자기야'는 박주희가 TV조선 '미스트롯2'에서 원곡가수로 직접 도전해 올 하트를 받은 곡이기도 하다. 20년차 히트곡이 있는 중견 가수가 직접 도전한다는 사실만으로 이슈가 됐다. 이 부분에 대해 박주희는 "노래의 명성도 되찾고 새로운 돌파구를 위해 큰 결심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