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강일홍 기자] "(윤 당선인을) 사전에도 사후에도 만난 적이 없다. 아무것도 바라는 거 없다. 검찰총장 시절 보여준 그 뚝심으로 오직 국민들을 위한 정치, 바른 나라 세워주면 그걸로 모두 만족이다."
김흥국은 뚝심의 사나이다. 20대 대통령 선거전에 앞서 "정치 색깔에 휘말리면 잃는 게 더 많다"며 주변에서 모두가 만류했지만 그는 정치판 행보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당선인)를 적극 지지했다.
17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가진 김흥국은 "(선거가) 다 끝난 마당에 새삼스럽게 (유세 당시 상황을) 말할 게 뭐 있느냐"면서도 "제가 유세 현장에서 만나본 지지자들은 기성 정치인들과 색깔이 다른 새로운 인물을 강력히 요구했고, 결국 이를 반영한 결과로 나타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흥국이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유세를 도운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축구를 매개로 돈독하게 연을 맺은 국민통합21 정몽준 전 대표의 대선 경선 및 유세를 도왔고 이후 정 전의원의 국회의원 선거를 지원했다. 대가는 혹독했다.
한때 '흥궈신' '예능 치트키'로 불리며 가요계뿐만 아니라 방송 예능가를 누볐던 그다. 블랙리스트로 낙인이 찍힌 이후 그는 활동이 뜸해졌고, 특히 지상파 방송 출연은 두드러지게 줄었다. 10여년 전엔 MBC 라디오 '2시 만세'에서 퇴출당한 뒤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김흥국은 "이제는 연예인들도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당당히 밝힐 수 있어야 한다"면서 "어느 편이 이기고 지고를 떠나 편가르지 않고 선후배가 다같이 사이좋게 방송활동을 할 수 있는 성숙한 여건이 조성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방송인으로서 그는 20여일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유세현장을 지켰다. 윤석열 후보 캠프 유세현장을 누비기 위해 3년째 진행중이던 불교방송 라디오 '김흥국의 백팔가요' 마이크를 자진해서 놨을 정도다. 대선이 끝난 지 일주일 만인 17일(목) 오후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만난 그의 속내를 직접 들어봤다.
<다음은 김흥국과 일문일답>
-한 달 가까이 유세현장을 누볐는데, 체력적으로도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정확히 22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전국을 뛰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강행군이었고, 솔직히 체력적으로 힘들 때는 중도 포기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 밤에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새벽 눈을 뜨면 다시 가게 되더라.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 의지로 참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스스로 자평한다. 전쟁터같은 유세현장을 끝까지 지켜 유권자들이 저에게 '연예인 야전사령관'이라는 칭호를 붙여준 게 가장 기분좋다.
-어떤 이유로 윤석열 당선인을 지지할 결심을 했나.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누구나 각자의 소신과 철학이 있겠지만 저 역시 저 나름의 방식대로 나라와 국민을 위해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마음은 있어도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눈치를 봐야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늘 아쉬움이 있었다. 나이도 있고 이번에까지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사전에 어떤 친분이나 인맥이 전혀 없었다고 들었다, 혹시 당선 후엔 만난 적이 있나.
사전에 윤 당선자와 전혀 소통 관계가 없었다. 유세 마지막날 시청 광장에서 얼굴을 마주친 게 처음이었고, 선거 다음날 유세단 관계자들과 단체로 잠깐 본 게 전부다.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어서 스치듯 대면한 셈인데, 저 스스로 대단한 걸 했다고 생각한 게 아니어서 그 자체만으로 만족할 뿐이다. 애초 바라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유세단에 합류하기 위해 진행 중이던 방송 고정프로그램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일 아닌가.
사실 연예인이 어느 편에 선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많이 잃을 각오를 해야한다. 코로나 이후 많은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연예인들은 방송이 곧 생업이기에 저 역시 결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저는 자원봉사, 재능기부의 심정으로 출발했다. 조금이라도 이해타산을 따졌다면 개인적 손해를 감수해가며 뛰어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과거에도 특정 정치인을 지지한 이후 연예인으로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나.
2002년 대선 당시 국민통합21 정몽준 전 대표를 도왔다. 그 후에 총선 지지도 했다. 축구로 만난 인연을 나몰라라 할 수 없어 순수한 마음으로 지지했다. 결과는 심한 후유증으로 남았다. 이런 쓰라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아내와 가족들이 많이 반대를 했다. 지금 후회는 없다. 설령 또 한번 불이익을 받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내 의지대로 한 탓에 마음은 편하다.
-유세장 현장은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강하게 밝혀야하는 곳 아닌가. 혹시 선거유세 중에 아쉬움은 없었나.
연예인들은 소신에 따라 자원봉사를 하는데 일부 정치인들은 그러지를 않았다. 유세현장에서조차 자신의 얼굴팔기에만 급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역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이 지루해하거나 말거나 자기를 알리기 위해 마이크를 독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분일초가 바쁘고 귀중한 시간에 대권 후보 지지를 핑계로 자기 피알(PR)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런 구태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떤 연예인들이 자발적 지지를 하겠는가.
-마지막으로 새 대통령에게 바람이 있다면 한마디 해달라.
대통령의 역할은 검찰총장 시절과 크게 다르겠지만 초심을 잃지 말고 뚝심 있게 소신 정치를 해주길 바란다. 또 대중문화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특별히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대통령도 시장도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도심 한복판에서 시민들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희망사항인데 기회가 주어진다면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청와대 앞마당에서 대통령과 미니 풋살축구(4대4)를 한번 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