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ㅣ 강일홍 기자] 박일준은 혼혈 가수다. 77년 '오!진아'로 데뷔해 '아가씨' 등의 히트곡으로 많은 팬을 거느렸다. 한때 예능프로그램에도 단골로 출연하며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그의 노래에 익숙한 50대 이상 중장년들한테는 여전히 친근한 가수다.
그가 히트시킨 여러 대표곡 중에서도 박일준이 꼽는 인생곡은 가수로 데뷔한 이후 처음 존재감을 각인시킨 '오!진아'다. 이 곡은 그가 18살부터 미8군 등 언더무대에서 그룹사운드 멤버로 활동하다 24살 솔로 데뷔해 발표한 노래다.
'오 내사랑 나의 진아 난 항시 널 생각하네/ 누가 뭐라고 해도 하루가 가면 갈수록/ 애타는 맘 더해만 가네/ 아 사랑은 정말 아 묘한 약이네(중략)/ 네가 보고프면 사진을 보며 보며/ 너에 예쁜 얼굴 종이위에 너에 눈동자 두터운 입술'(박일준의 '오진아' 가사 일부)
이 곡은 미국의 음악 그룹으로 백인임에도 흑인의 독특한 감각을 선보인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언체인 멜로디'(Unchained Melody)가 원곡이다. 당시 인기가수로 활동했던 고 김상범이 가사를 붙이고 신인가수 박일준이 불러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노래가 워낙 고음이라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르기는 어려운 곡이에요. 녹음 당시에도 원키(C) 대신 비플랫(B#)으로 녹음을 했고요. 행사 무대에서는 가끔 임팩트를 주기 위해 원키를 살려 부르기도 했는데 가성을 많이 활용해 부를 때가 많았죠."
그럼에도 그는 이 곡이 '가장 잘 맞는 노래'란 평가를 들었다. 밤무대 언더그라운드 시절부터 팝, 발라드, 소울 등 다양한 장르를 두루 섭렵한 그에게는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노래로 KBS 신인가요상을 수상했다.
1년 뒤 발표해 호평을 받은 '아가씨' 역시 번안곡이다. 영국 가수 탐 존스가 부른 '돈 파이릿'(Don't Fight It)이 원곡으로, 박일준이 '아가씨 오 나 좀 봐요/ 우물쭈물 하지 말고 대답 좀 해 봐요'로 시작하는 진명준의 가사로 바꿔 불렀다.
그는 1집 '오!진아' 이후 최근까지 20여 개의 음반을 발표하며 사랑을 받고 있지만, 방송 외도와 함께 사업 등의 이유로 한동안 팬 곁을 떠난 적도 있다. 91년 9집 '사랑은 3.14'을 끝으로 2005년 트로트 신곡 '왜왜왜'를 들고 나오기까지 14년간이나 가요계를 떠났다.
"원래는 '폭소대작전'이란 코미디프로그램에 3년간 출연한 게 음악과 멀어진 이유였어요. 이후 손을 댄 사업에 실패했고, 술로 시름을 달래는 악순환이 거듭된 거죠. 음악카페 형식의 술집을 운영했는데 동업자들한테 속아 모든 걸 잃고 나니 허망하더군요. "
힘든 시기를 술에 의지하다 강경변 등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도 했다. 한달 가까이 중환자실에 머물며 생존 확률 50%의 절망을 딛고 일어섰다. 그는 "사경을 헤매다 간신히 일어난 뒤 술과 매에 장사 없다는 말을 새삼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왜왜왜'를 발표하고 트로트로 전향한 그는 가수로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어려서부터 혼혈아로 살면서 겪은 수많은 사연과 함께 대중은 좌절과 절망을 딛고 일어선 그의 오뚝이 인생에 아낌없는 격려와 박수를 보냈다.
박일준은 얼마전 신곡 '인생은'(정기수 작곡)을 발표하고 포스트 코로나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지치면 한박자 쉬고 힘들면 두박자 쉬고 술 한잔 채우고'로 시작하는 이 노래에 대해 그는 "저 또한 나이를 먹으니 가슴에 뭉클하게 와닿는 곡"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