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T의 세계①] 잘 만든 OST 하나, 열 작품 안 부럽다 


'전우치' 속 '궁중악사' 등 OST가 더 유명한 작품 수두룩 

장영규 음악감독은 영화 전우치(왼쪽)와 곡성 등 수많은 영화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면서 각 작품의 매력을 끌어 올렸다. /각 영화 포스터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riginal SoundTrack)의 약자인 OST. 잘 만든 OST는 영화나 드라마에 고유한 감성을 부여하는 일등 공신이 된다. 양질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요즘 영상 제작과 더불어 OST 제작의 수요도 급격히 늘고 있다. 대중을 사로잡은 인기 OST와 함께 최근 트렌드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원세나 기자] S#1. 궁궐. 낮.

왕: 감히 도사 놈이 주상을 능멸해. 여봐라 이놈을 잡아라.

궁중 무관들이 들이닥치는데, 전우치는 태평하게 한 잔 더 걸치고는, 손가락을 튕겨 음악을 바꾼다. 음악은 점점 흥겨워진다. 진땀 나는 궁중 악사들.

전우치: 도사 놈이라? 에... 도사는 무엇이냐? 도사는 바람을 다스리고 (바람이 분다) 마른하늘에 비를 내리고 (순식간에 장대비가 내린다) 땅을 접어 달리고 (술상을 향해 축지법으로 갔다가 돌아온다) 날카로운 검을 바람보다도 빨리 휘두르고 (검이 쉭-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고) 그 검을 꽃처럼 다룰 줄 아니 (검이 왕 얼굴 앞에서 꽃으로 변한다) 가련한 사람들을 돕는 게 바로 도사의 일이다.

2021학년도 6월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 국어영역에 출제된 문제의 지문이다. 작품은 최동훈 감독의 영화 '전우치' 중 한 장면. 당시 모의 평가를 치른 수험생들 사이에선 문제 풀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는 후기가 쏟아졌다. 지문을 읽을 때 영화 속 장면과 OST가 자동으로 재생되는 부작용을 겪었기 때문이다.

작품에 '찰떡같이' 묻어나는 OST는 본 작품 이상의 인기와 영향력을 얻는다. "(으)쓱(으)쓱(으)쓱(으)쓱! 도사란 무엇이냐~". '수능 금지곡'으로도 불리며 큰 사랑을 받은 영화 '전우치'의 OST '궁중악사'는 장영규 음악감독의 작품이다.

장영규 음악감독은 국악의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린 '범 내려온다'로 큰 화제를 모은 이날치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면서 영화 음악감독으로서도 꾸준히 활약해왔다. 그는 '복수는 나의 것'(2002), '타짜'(2006),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전우치'(2009), '도둑들'(2012), '곡성'(2016), '봉오동 전투'(2019) 등 걸출한 한국 영화의 음악을 맡아 영화의 매력을 높였다.

이날치밴드의 베이시스트로도 유명한 장영규 음악감독이 새로 참여하게 된 작품은 정재은 감독의 4번째 도시 아카이빙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다. /영화 포스터

특히 '얼굴 없는 미녀'(2004)로 제12회 춘사영화제 음악상, '곡성'으로 제37회 청룡영화상 음악상, '판소리 복서'(2019)로 제7회 들꽃영화제 음악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과 대중의 귀를 고루 사로잡았다.

장영규 음악감독이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고양이 주민들과 행복한 작별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고양이들의 아파트'의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영화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보다 차별화된 접근과 주제 의식으로 고양이를 통해 도시생태 문제를 모색하고 성찰해온 정재은 감독의 4번째 도시 아카이빙 프로젝트 다큐멘터리다.

작품은 사려 깊은 촬영과 연출을 통해 도시 생태계 속에서 더 이상 선택이 아닌 당위인 동물과 인간의 공존과 공생, 나아가 '동반'의 화두를 던진다. 살던 공간을 쉽게 바꾸지 않는 '정주성'을 지닌 고양이들을 안전하게 이주하려는 과정은 삶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사회의 모든 존재들을 다정하고 섬세하게 위로한다.

'고양이들의 아파트'에는 장영규 음악감독의 기여가 빛을 발한다. "익숙하지 않고 충돌하는 것끼리 부딪쳐 한 번 터지고, 깨지고 난 뒤 발생하는 어떤 것에서 나오는 매력이 있다"고 말하는 그는 이번 '고양이들의 아파트'에서 삶의 흔적을 지워가는 재건축 공간 속 고양이와 인간의 생태적 공생을 위한 아름다운 분투기를 뚜렷한 개성의 음악으로 표현하며 남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장영규 음악감독은 동물이 고통스럽게 표현되는 일에 주의하며 고양이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음악을 주문한 정재은 감독의 고난도 요청에 서사를 뛰어넘는 정서와 촉감의 음악으로 화답하며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채웠다.

뚜렷한 주제 의식에 유려한 영상, 거기에 장영규 음악감독의 섬세한 음악이 더 해져 어떤 웰메이드 다큐멘터리가 탄생했을지 영화와 음악 팬들의 기대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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